신한·국민·우리·하나 등 은행 채용비리건…특혜정황 22건 포착→재판
채용절차 대대적 손질후 시스템 개선 기대감
[편집자] '야금(冶金)'은 돌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입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금융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첫단부터 끝단까지 주목받는 건 몸집이 큰 사안뿐입니다. 야금 기술자가 돌에서 금과 은을 추출하듯 뉴스의 홍수에 휩쓸려 잊혀질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사고를 되짚어보는 [한국금융의 뒷얘기 야금야금] 코너를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최근 선보였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후 개선된 건 있는지 등 한국금융의 다사다난한 뒷얘기를 매주 금요일 만나보세요.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 직장인 A씨는 학생시절 은행원 취업에 전력했다. 하지만 합격선은 멀기만 했다. 낙방할 때마다 A씨는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 자책했다. 시간이 흐른 후 기사를 보던 A씨의 눈 안에 두 단어가 가득 들어왔다. 바로 '은행권 채용비리'. '임원 자녀가 학점이 낮아 서류심사 통과 대상이 아니었고, 실무면접에서 최하위권 등급을 받았음에도 최종 합격했다고?' A씨는 허탈했고 분노했다.
◆ 국감이 쏘아올린 '뜨거운 공'…줄줄이 검사
은행권은 지난해 한창 채용비리 이슈로 들썩였다. "2017년 감사원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적발한 것이 발단이었어요. 그해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은행권으로 이슈가 넘어왔죠." 은행권 관계자는 이렇게 기억했다.
국감 이후 금감원은 전 은행에 채용시스템 자체점검을 지시했다. 은행들은 채용 증빙서류를 징구하지 않고, 연필로 면접평가표를 작성하는 등 미비점이 있었음에도 부정한 채용사례가 전무했다고 보고했다. 결국 금감원은 채용비리 부문검사를 결정했고, 2017년 12월과 2018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은행 11곳에 검사를 나갔다. 금감원이 채용비리만을 목적으로 검사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검사결과는 작년 1월 말 발표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5개 은행에서 총 22건의 채용비리 정황이 포착됐다. 건수는 하나은행이 13건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은행과 대구은행 각 3건, 부산은행 2건, 광주은행 1건 순이었다. 이들은 사외이사·임직원·거래처의 자녀·지인, 특정대학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해 면접점수를 조정하고, 임원이 자녀의 면접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채용과정에서 문제를 저질렀다.
금감원은 이후 신한금융에 추가 검사를 나갔다. 제보가 잇따라 접수됐기 때문이다. "전 은행에 실시한 검사 대상기간은 2015년 이후였는데, 신한금융은 이전 시기에 채용비리가 있었다고 제보가 들어왔어요. 신빙성 있어서 검사를 나갔죠." 금감원 관계자가 전했다. 그 결과, 신한금융에서도 특혜채용 정황이 총 22건 발견됐다. 신한은행의 경우 전 고위관료 조카, 임직원 자녀 등이 기준에 미흡했음에도 통과시켰다.
◆ 재판 진행중…'CEO 연임' 앞두고 관심
금감원은 법률위반 소지가 있는 채용비리 정황을 검찰에 이첩했다. 검찰이 은행권 채용비리로 기소한 곳은 7개 시중은행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부산·대구·광주) 등이다. 이후 금감원은 2018~2019년 검사를 받은 은행들에 순차적으로 경영유의나 제도개선 조치를 내렸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제재 수준이 낮았던 이유에 대해 "업무방해는 금융관련 법령상 근거가 없어서 금감원이 지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공이 넘어간 후에는 은행별로 재판이 진행됐다. 수위와 경과는 은행마다 차이가 난다. 대구은행은 1, 2심에서 실형을 받아 수감됐던 박인규 전 행장이 올해 10월 만기 출소했다. 우리은행은 이광구 전 행장이 1, 2심에서 실형을 받아 수감중이며, 상고했다. CEO가 기소 대상에서 빠진 KB국민은행과 광주은행은 1심에서 전·현직 임직원들이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부산은행도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으며, 오는 22일 항소심을 앞두고 있다.
올해 특히 주목을 받은 곳이 현직 CEO가 기소된 데다, 이들의 연임 이슈가 있던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다. 신한금융은 조용병 회장(전 신한은행장), 하나금융은 함영주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이 각각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연임 후 유고 상황이 발생하면 기업이 경영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금감원은 올초 함영주 부회장의 3연임을 앞둔 하나금융에 이러한 우려를 전달했다. 함 부회장은 결국 3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최근 금감원은 조용병 회장 연임 가능성이 커지자 신한금융에도 동일한 우려를 전했다. 다만 신한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는 "법적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다. 컨틴전시 플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확인했다"며 조 회장을 차기회장 단독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연임이 확정되는 내년 3월 26일 정기 주주총회 전까지 리스크는 남아있다. 내년 1월 22일 1심 선고가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검찰은 조 회장에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2019.12.19 milpark@newspim.com |
◆ 채용절차 대대적 손질…"재발 가능성 희박"
재판과 무관하게 은행권은 채용절차를 대대적으로 손봤다.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해 지난해 6월 '채용절차 모범규준'도 내놨다. 모범규준은 은행이 내규 형태로 반영한 자율 규제다. 은행연합회에 소속된 19개 은행들이 정규 신입직원 공개채용을 할 때 적용된다. "모범규준이 강제사항은 아니에요. 하지만 당시 은행들이 지키겠다고 대대적으로 약속했으니 당연히 지켜야겠죠. 금감원도 눈 여겨볼거구요." 은행권 관계자가 말했다.
모범규준 골자는 ▲임직원 추천제 폐지 ▲성별·연령·출신학교·출신지 등 지원자 역량과 무관한 요소로 인한 차별 금지 ▲선발기준과 관련없는 개인정보 점수화하지 않고 면접관에 비공개 ▲필기시험(선택사항이나 대부분 도입) ▲채용과정에 외부인사 참여 ▲내부 감사, 내부통제 부서가 채용절차 점검 ▲평가자가 제출한 점수 사후 수정 불가 ▲부정입사자 채용취소나 면직, 일정기간 응시자격 제한 ▲부정채용 임직원 징계 ▲직접적 피해 입은 지원자 구제 등이다.
은행들은 모범규준을 큰 틀로 잡고 각각 변화를 꾀했다. 예컨대 신한은행은 필기시험의 과목을 모집 분야별로 달리 진행하고, 면접시험의 면접관은 실무 전문가를 위촉했다. 또 필기시험 전 과정의 운영은 외부기관에 맡기며, 면접에 블라인드 방식을 도입해 직무역량만 평가한다. 채용 과정에 외부기관 참여를 높이면서 '부정행위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채용 전 과정 외부기관 위탁' 등 강도높은 대책을 적용하기도 했다.
사태 발발 2년이 흘렀다. 아직까진 합격점을 받은 모습이다. 채용비리 신고센터 제보 건수도 전년보다 확연히 줄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용절차 모범규준'이 매우 잘 돼 있다"며 "은행들이 이대로만 잘 지키면 과거 정도의 사건은 당분간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범규준 기준은 타이트한 편이에요. 잘 지켜지는 지는 검사에 나갈 때마다 확인해왔고, 앞으로도 확인하려고 합니다. 은행들이 지킬 것이라 믿고 있어요."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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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규준이 적용되는 은행은 산업, 농협, 신한, 우리, SC제일, KEB하나, 기업, 국민, 한국씨티, 수출입, 수협, 대구, 부산, 광주, 제주, 전북, 경남,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 19곳이다. 모범규준은 소수인원을 뽑을 때도 적용해야 하나, 특정 경력이나 자격이 있는 자를 뽑을 때에는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부정입사자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지원자에게는 피해가 발생한 다음 단계에 응시할 기회를 부여한다. 예컨대 선발전형이 서류, 필기, 면접 순인 은행의 필기시험에서 피해를 입은 지원자라면, 면접 응시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만 이전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해 아직까진 피해자 구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milpar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