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독일 BND와 암호장비 회사 크립토 AG 공동 운영
한국, 일본, 이란, 이라크 등 120개국이 거래 대상
獨은 1990년대 철수..CIA는 2018년까지 운영
[뉴욕=뉴스핌]김근철 특파원=지난 50여년 동안 전세계 정부를 상대로 암호장비를 판매해온 스위스 회사가 사실은 미 중앙정보국(CIA) 소유하고 운영했던 회사 였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회사의 장비를 구매했던 고객은 한국 및 일본 등 전세계 120개국에 달했으며 CIA는 이를 통해 해당 정부의 비밀 첩보를 손쉽게 빼내간 것으로 파악됐다.
WP는 이날 2차 대전 이후 암호 장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유지해온 스위스 회사 '크립토AG'는 CIA가 과거 서독의 정보기관 BND(연방 정보부)와 함께 소유했던 회사였다고 폭로했다.
신문은 독일의 방송사 ZDF와 함께 최근 기밀 CIA 작전 관련 자료 등을 입수, 전모를 파악하게 됐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크립토 AG는 2차 대전 당시 미군과 첫 계약을 맺으며 암호 장비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고 미국의 CIA와 국가안보국(NSA), BND가 이 회사를 사실상 공동 소유하고 경영해왔다.
2차 세계 대전이후 크립토 AG 장비를 구매한 해외 정부들은 이를 통해 자국의 첩보요원 및 외교관, 군의 비밀 연락을 유지해왔다. CIA와 BND는 수백만 달러짜리 장비를 각국 정부에 판매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각국의 기밀정보를 쉽게 해제, 취득할 수 있었던 셈이다.
미국 중앙정보국 본관 로비.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과거 크립토의 장비를 구매하고 사용했던 해외 정부는 120개 국에 달하며 이중 주요 고객에는 한국을 비롯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인도, 파키스탄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국은 지난 1981년 당시 이회사의 10권에 드는 고객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WP는 CIA가 이를 통해 지난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미국인 인질 사태 당시 이슬람율법학자들을 감시할 수 있었고, 포틀랜드 전쟁 당시엔 아르헨티나군의 정보를 빼내 영국에 넘겨주는가 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재자들의 암살 과정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 첩보 작전 명칭은 당초 '유의어사전'을 의미하는 '시소러스(Thesaurus)'라는 암호명이 붙었다가 나중에 '루비콘'으로 변경됐으며 CIA 보고서는 이를 가장 담대한 작전이자 '세기의 첩보 쿠데타'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WP는 다만 이 작전의 한계는 '냉전 시대' 주요 첩보 활동 대상이었던 소련과 중국 정부는 크립토의 서방 연계 가능성을 의심, 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던 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CIA는 다른 나라들이 모스크바와 베이징 당국과 연락하는 것을 추적, 상당량의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크립토 AG 본사 건물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신문은 이밖에 지난 1992년 이란에서 크립토의 판매사원이 체포되는 등 노출 위험도 있었으나 CIA 배후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도 밝혔다.
한편 BND는 1990년대 초에 이 작전의 발각 위험이 너무 크다고 보고 작전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미국의 CIA와 NSA는 독일이 갖고 있던 지분을 사들여 계속 운영해오다가 2018년이 돼서야 물러섰다.
WP는 최근 온라인 암호기술 등의 확산으로 크립토AG의 위상도 크게 떨어졌다고 전했다.
kckim10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