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통 "北, 지난달 민간차원서 '韓 코로나 진단키트' 등 요청"
"북중국경 봉쇄로 불발, 개성공단 통한 전달은 거부"
北 '확진자 0'명 입장 견지 불구…평안북도 발병설 또 제기
[서울=뉴스핌] 노민호 김준희 기자 = 북한이 지난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비공식적 루트'로 한국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북중국경 봉쇄에 '불발'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민간단체에서는 이에 개성공단을 통해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전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북한 측에 제시했으나 거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에 소재한 코로나19 진단시약 긴급사용 승인 기업인 ㈜씨젠을 방문해 천종윤 씨젠 대표로부커 시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뉴스핌 DB] |
◆ 소식통 "北, 개성공단 통한 지원물품 전달 아이디어에 난색"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참여해온 한 여권 관계자는 최근 뉴스핌에 "지난 달 초중순 경 북한 민간 차원에서 유엔개발계획(UNDP) 등 북측과 긴밀히 접촉해온 사람들에게 코로나19 물품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다"며 "(북한 민간은) 북한 정권과 연줄을 맺고 있고 민간단체 차원의 일을 해온 이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이들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한국의 진단키트와 방호복, 마스크 등을 지원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며 "중국 단둥(丹東) 지역에 몰래 갖다 주면 북한으로 가지고 가서 인민들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당시 중국과 북한은 국경이 막혀 있던 상황"이라며 "이에 요청을 받은 국내 한 민간단체는 '남북 간 공식 루트는 개성공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제의했으나, 북측은 '안 되겠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개성공단을 통하려면 북한 정권 차원에서 '한국의 지원을 받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공식 지원은 안 받겠다'는 게 상부의 생각"이라며 "이러니 지원을 요청한 북한의 민간 측에서도 '개성공단을 통해서는 안되겠다'고 한 것이고 '김정은 정권을 설득할 자신도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체제 특성상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민간단체는 없다. 다만 민간단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국제기구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국내 민간단체들에 지원을 요청한 북한의 민간 측도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때에 따라서는 각 부서 간 경쟁적으로 명목상 민간단체를 만들어서 일종의 실적 쌓기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워낙 많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12일 북한 조선중앙TV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보도 일부.[사진=조선중앙TV 캡처] |
◆ 北, "확진자 없다" 입장 견지…소식통 "평안북도 중심 확진자 늘고 있어"
북한은 지난 1월 28일부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국가비상방역체계'를 가동 중이다. 북중 국경을 봉쇄하고 무역을 차단하는 등 열악한 보건·의료 체계를 감안해 '밀봉' 정책을 펼치고 있다.
북한은 그러면서 '자국 내 감염자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주의 예방의학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다.
하지만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 체계와 그간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 방역용품 부족 현상 등에 근거해 '발병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여권 관계자는 "북중 간 밀무역이 진행되는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며 "단 북한에서는 공식적인 확진자 집계를 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지난 3일 전염병 예방사업에 필요한 우리 식의 보호복 대량생산했다고 보도했다.[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
◆ 방호복·마스크 자체생산 '문제없다'는 北…진단키트 얘기는 없어
북한은 각종 선전매체를 통해 대북제재 국면 속에서 자력갱생을 기본으로 한 '정면돌파전' 정신으로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3일 '조선의 오늘'은 영하 30도에서도 몸 전체와 호흡기관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는 '코로나19 방호복'을 대량생산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 매체를 통해 자체적으로 진단키트를 생산하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북한이 '의학적 감시 대상자'라며 대규모의 인원을 자택 또는 별도의 시설에 격리시키는 행보를 볼 때 "진단키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관련 기술이 없음을 예상해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은 그간 입국자와 접촉한 사람들 등을 의학적 감시 대상자로 분류해 40일 이상 장기 격리해왔다. 격리자 규모는 한때 1만명 까지 육박했으며 현재는 전국적으로 2280명이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5일(현지시간) 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당국자들이 지난 몇 주 사이에 개인적인 국제사회 연락책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FT에 "북한은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보유하고 있고 사용법도 알고 있지만 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국제단체들에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러시아 외무부 공보실은 "북한 측의 요청에 따라 평양에 코로나19 신속진단키트 1500개를 전달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통일부 청사 내부 [사진=뉴스핌 DB] |
◆ 국내 민간단체 대북지원 소식은 아직…통일부 "요건 갖춰야"
한편 국내 민간단체의 코로나19 방역물품 관련 대북지원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일부 민간단체가 통일부에 문의는 해왔으나 요건을 갖춘 신청 단체가 없어 속도를 못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는 ▲북측과 합의서 체결 여부 ▲재원 마련 ▲구체적 물자 확보 및 수송 계획 ▲분배 투명성 확보 등을 민간단체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26일 기자들과 만나 "남북협력기금이 가지고 있는 공공성, 대북지원 과정에서의 투명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기준이 높다기 보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요건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요건을 다 따지지 않으면 반대로 (남북협력기금 지원이) 악용되거나 오용된 사례도 있다"며 "양자간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