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경기 침체 속에 미국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회사채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에 나서기로 하면서 발행과 매입 열기가 뜨겁게 달아 올랐다.
하지만 연준의 전방위 자산 매입에 기댄 채권시장의 훈풍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 항공업계의 채권 발행 불발이 시장 전반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월가 [사진=블룸버그] |
11일(현지시각) 시장조사 업체 크레딧 플로우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3월23일 연준이 회사채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액이 575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7주간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에 해당한다. 보잉과 제너럴 모터스(GM) 등 투자등급과 투기등급 기업들이 만기를 앞둔 기존 채권의 차관과 함께 매출 급감에 자금 확보를 위해 일제히 회사채 시장에 뛰어든 결과다.
경기 침체와 디폴트 상승을 포함한 리스크에도 투자자들의 회사채 매입 열기가 뜨겁다. 고수익률에 대한 수요가 작지 않은 데다 연준의 자산 매입에 기댄 '사자'로 풀이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핸스 미켈슨 신용 헤드는 CNBC와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주요 기업의 매출액이 상당 기간 큰 폭으로 줄어들 여지가 높고, 이 때문에 운전자금을 금융시장에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주 들어서만 월트 디즈니가 110억달러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고, 페이팔도 40억달러 물량을 쏟아내는 등 기업들이 채권시장에서 총 257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투자자들의 시선은 연준에 집중됐다. 앞서 정책자들이 250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을 5월 초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
하지만 이달 들어 연준은 이와 관련해 어떤 새로운 발언이나 방침을 내놓지 않고 있어 투자자들이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문디 파이오니어의 존 던싱 이사는 "회사채를 매입한 투자자들이 연준만 바라보고 있다"며 "발표한대로 회사채 매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커다란 실망감이 시장을 강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회사채 시장이 이미 이른바 연준 효과를 가격에 적극 반영했고, 정책자들이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후폭풍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주로 예정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연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자리에서 회사채 매입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과 계획 이행 발표가 나와야 한다는 것.
경제 활동 재개의 성공 여부도 채권시장에 결정적인 변수로 꼽힌다.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의 마이클 크룩 미국 투자 전략 헤드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비즈니스 재개가 매끄럽지 않거나 속도가 더딜 경우 투자 심리를 크게 냉각시킬 것"이라며 "앞으로 1~2개월 사이 국채 및 회사채 수익률이 가파르게 치솟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연준의 전방위 양적완화(QE) 효과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동성 공급에 대한 기대가 '사자'를 부추겼지만 경제 펀더멘털과 회사채 시장의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미국 투자 매체 배런스는 최근 항공업체의 회사채 발행 불발이 보다 근본적인 리스크를 반영하는 단면이라고 주장했다.
지난주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 계획을 취소했다. 업체는 360대의 항공기를 담보로 앞세워 투자 자금을 모집할 예정이었지만 투자자들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1분기 워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항공주 보유 지분 전량 매각에 이어 또 한 차례 복병이라는 지적이다.
이 밖에 시카고 외각의 웨스틴 롬바드 요크타운 센터 호텔 역시 매출 급감 속에 회사채 신규 발행에 난항을 겪는 등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모습이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