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상장 당시 'JY주식'이라며 뭉칫돈 몰려
주식시장 자기실현적 예언..'오너 프리미엄'으로 봐야
밉다고 꽤씸죄 적용하긴 곤란..경영정상화 도모할 시기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지난주 주식시장에선 우선주 열풍이 뜨거웠다. 종목명 뒤에 '우'자만 붙으면 불문곡직 무조건 '사자'가 붙었다. 실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졌다.
합리적인 듯싶은 주식시장이지만 한 번 광풍(狂風)이 불면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5~6년 전 주식시장에선 이른바 '이재용 테마주'가 뜨거웠다. "진짜 이재용 주식시장을 찾아라"라는 타이틀의 기사와 증권사 리포트가 쏟아지던 때다.
어떤 기업을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전체를 지배할 것인지,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어떤 주식이 수혜주가 될 것인지, 너도나도 점쟁이 마냥 예측을 내놨다. 자본시장에선 여러 계열사 이름이 오르내렸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0.06.08 mironj19@newspim.com |
그중 제일모직이 지배구조의 정점을 차지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했다. 당시 이 부회장 지분이 가장 높은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오너 프리미엄'이다.
쏠림이 심화되면서 제일모직 주가가 상승했다. 제일모직 주가가 뛸수록 지주사가 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졌다.
이유는 우리 자본시장법이 합병비율 결정에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사의 현재 주가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했다. 주식시장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합병에 반대하던 이들은 삼성그룹이 이런 상황을 충분히 즐겼다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말일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괘씸죄'로 사법 처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삼성은 합병 발표 전까지 제일모직이 지주사가 될 것이란 주장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었다. 일부러 소문을 흘리고 주가를 부양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물론 합병 과정에서 회계 조작이 있었다면, 또는 허위 공시가 있었으면 관련한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될 것이다. 이는 법원에서 다툴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이 '인민재판'으로 끌고 가는 것은 지금의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양사의 순자산가치를 대입해 합병비율을 재조정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자본시장법이 이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
제일모직 주가를 뻥튀기 시킨 건 당시 자본시장이지, 이재용 부회장이 아니다.
당시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 됐는지도 의문이다. 그해 1분기 말 기준 삼성물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7배였는데 GS건설(0.61배), 현대건설(0.81배), 대림산업 (0.50배) 등 건설사 대부분이 업황 불황으로 PBR이 1에 미치지 못했다.
5년 전 합병 당시 삼성이 허둥지둥 당황했던 것은 사실이다. '관리의 삼성' 답지 못 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훗날 고백했다.
엘리엇에게 의표를 찔린 삼성은 부랴부랴 KCC를 찾아 백기사를 요청했고 국민연금을 만나 찬성을 사정했다. 글로벌 1등을 외치던 삼성으로선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그렇다고 정상적 경영 범위를 넘어선 불법이 있었다고 판단하긴 어려운 구석이다.
삼성 서초사옥 /김학선 기자 yooksa@ |
양사 합병이 일단락되고 몇 년이 지나 엘리엇 측 소송대리를 담당한 법무법인 관계자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수감돼 있던 때였다. 그에게 엘리엇이 삼성을 향한 공격을 다시 감행할 가능성이 있는지 물었다.
"원체 엘리엇은 민사소송을 즐기지 형사법적 접근은 하지 않는다. 그 동안 여러 글로벌 회사와 경영권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법적 수단을 활용했지만 형사법적 수단으로 경영진을 공격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경영진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시기에는 공격을 감행하지 않는다." 그의 대답이다.
오는 26일 대검찰청 산하 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공소제기 여부를 심의한다. 재계에서는 수사심의위 결정과 무관하게 검찰이 삼성 경영진을 기소할 것이라고 본다.
1년 7개월간 수사한 검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여당과의 갈등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로선 이재용 기소로 돌파구를 찾고 싶을 수 있다. 삼성으로선 해외 투기적 자본보다도 한국의 검찰이 더욱 지긋지긋하다 느낄 듯싶다. 삼성의 경영 정상화를 도모할 때라는 시장의 목소리가 높다.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