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강동원이 영화 '반도'로 숱한 부담감을 떨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부산행'의 흥행을 뒤로하고, 코로나19 시대 첫 대작으로 흥행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지난 1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강동원과 만났다. 영화 홍보 일정이 거의 마무리돼가는 시점이라 긴장한 기색은 거의 없었다.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면서도, 이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면서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이 컸는데 한편으론 맘이 놓이는 지점도 있어요. 경쟁작이 없어서요. 사실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거든요. 극장가가 너무 침체돼 있어서 안타까워요.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는데 또 오셔도 조금 걱정이고요. 무사히 보고 가셔야 할텐데. 다행히 극장에서 2차 감염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하니 안전한 편인 것 같아요. 마스크 쓰고 극장 안에선 말도 안하니까요. 안전하게 보고가셨으면 좋겠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반도'에 출연한 배우 강동원 [사진=NEW] 2020.07.15 jyyang@newspim.com |
강동원의 복귀작 '반도'는 '부산행(2016)'의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을 확장한 영화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현재 한국이 상대적으로 코로나19를 모범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지점도 있다. 강동원은 "우리 작품이 코로나19 이후로 첫 월드와이드 개봉 영화다"라고 말하며 믿을 수 없어 했다.
"월드와이드 첫 개봉 영화라는 점을 본의 아니게 강조하게 되네요. 해외에서도 주시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나라에서는 '반도'에 맞춰서 극장 문을 다시 여는 곳도 있다고 들었죠.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 모로 낯선 경험이에요. 시나리오 읽기 전엔 '부산행' 후속작이라 부담스러웠죠. '왜 나한테 하자고 그러시지' 했어요. 그때 같이 한 배우들이 있으니까요. 시나리오 읽고 나니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느꼈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감독님의 비전이나 생각이 확고해서 든든하기도 했어요. 배우로서는 '조금이라도, 여러 측면에서 일보 전진한 작품을 만들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긴 했죠."
영화 속 강동원은 재난이 닥친 한반도에서 홍콩으로 탈출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군인 출신 한정석 역을 연기했다. 막무가내로 공격하는 좀비떼에 맞서고, 총격 액션, 카체이싱 등 쉽지 않은 신을 소화해냈다. 동시에 재난에 맞닥뜨린 존재로서 감정 연기도 곁들여야했다.
"좀비들과 액션합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어요. 서로 막 치는 게 아니라 머리로 들이밀거든요. 그분들은 또 자기방어가 안돼요. 신경을 많이 써야했죠. 다른 건 침이 많이 튀는 거. 하하. 촬영 직전에 피 만든 걸 입에 넣고 찍는데 막 입에서 흐르니까 썩 위생적이지는 않죠. 코로나19 전에 찍어서 다행이에요. 비말 수준이 아니라 그냥 액이 얼굴에 막 떨어지거든요. 카체이싱신이 다른 배우들이 도드라져요. 몸빵은 제가 다 했죠. 하하. 어떤 장면이든 중심인 배우가 돋보일 수 있게 해야 하니까 이레가 운전할 때는 제가 뒤에서 더 오도방정을 떨었죠. 몸을 못가누고 해야 이레가 더 멋있게 보이잖아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반도'에 출연한 배우 강동원 [사진=NEW] 2020.07.15 jyyang@newspim.com |
강동원의 말처럼, '반도'에서 정석은 인류를 구원할 영웅이나 의협심이 강한 인물은 아니다. 한 마디로 '누가봐도 주인공' 같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극중에서는 민정(이정현), 준이(이레) 등 여성 캐릭터들이 오히려 의연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동원은 이 지점을 바로 이 영화의 훌륭한 점으로 꼽았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정석이 흔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기도 했단 거예요. 서로 동등하게 싸워나가게 설정돼서 좋았어요. 이 시나리오가 남다른 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특히 애들이 어른을 구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에요. 보통은 어른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나오죠. 바로 이 점이 '부산행'과는 좀 다른점이 될 거예요. 정석은 극을 끌고가는 리더라기보다 남을 받쳐주는 캐릭터예요. 한 명의 주인공이 이끄는 영화가 아니에요. 전문용어로 '야마가 없다'고 하죠. 하하. 제 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이레와 이정현 선배가 더 돋보였으면 했어요. 어떻게 하면 둘이 더 멋지게 보일지 감독님께 얘길 한 적도 있었죠."
'부산행'의 세계관을 전국으로 확장시키면서, 영화 속 한반도는 말 그대로 폐허 그 자체다. 좀비들이 출현하고,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행동을 주저없이 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구현해낸 연 감독의 시나리오에 강동원은 무척이나 끌렸다고 털어놨다.
"'반도'가 남다른 또 하나의 이유죠. 인간이 최악의 상황에 처하고 멸망의 위기에 처한 그 이후를 그리잖아요. 심지어 그곳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이라 무척 끌렸어요. 정석은 탈출했다가 돌아왔지만 그들은 폐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라 더 절망적이죠. 그래서 놀라기도 해요.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하는데, 이 대사가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아닌가 해요. 그 장면에서 더 클로즈업이 들어왔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하하. 개인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콜로세움인 쇼핑몰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요. 시나리오 볼 때부터 비주얼라이징을 하는 편인데, 인간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잖아요. 기존 한국영화에서도 전혀 볼 수 없었던 신이기도 하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반도'에 출연한 배우 강동원 [사진=NEW] 2020.07.15 jyyang@newspim.com |
죽음의 공포로 가득찬 포스트 아포칼립스 설정을 받아들이더라도, 보는 입장에선 '반도' 속 631부대 여러 인물들을 보면서 처참한 심경이 들 수밖에 없다. 강동원은 "기본적으로 마음씨가 착해야 한다"면서 그들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석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 나름대로 생각을 얘기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성을 유지하도록 해야죠. 저는 자신있어요. '반도' 세계관 안에서도 마음 맞는 동지들 모아서 잘 살아갔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들개였다면 들개 집단을 만들었을 거예요. 631 부대에 맞서는 거죠. 나서는 건 싫어하지만 답답하면 행동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워낙 실용적인 걸 고려하는 편이긴 해도 마음은 따뜻한 것 같아요. 머리는 좀 차가울 수 있죠. 하지만 가슴은 뜨거운 남자예요. 하하."
'반도'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만큼, 그의 차기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차기작은 물론이고 스스로 기획, 연출에도 관심이 있음을 공공연히 드러낸 바 있었다. '반도'가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음에도 갈 수 없게 된 상황은 아쉽지만, 배우 강동원으로서는 일단 연기와 작품활동에 충실할 계획이다.
"요즘에 많이 느끼는 건데, 이제 정말 좀 어른이구나 싶어요. 언젠가부터 그런 느낌이죠. 예전엔 오히려 어른이 되기 싫어서 피했던 것 같아요. 너무 책임질 게 많아지는 걸 회피하고 싶었나봐요. 자연스럽게 이제는 거울을 봐도 어른같아요. 더이상 거부하기엔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책임질 게 많으면 좀 피곤하겠지만 완전히 그럴 때가 온 것 같아요. 진짜 성인 남자의 연기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에요. 여러 가지로 준비도 하고 있고 많은 변화가 있을 듯 해요. 많은 일들이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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