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사회 서울시

속보

더보기

[오승주의 수선전도] 풍운의 역사 품은 아픈 손가락 '용산'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청군· 일본군·미군 주둔지 아픔겪은 풍운의 땅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 영구 점령' 꿈꾼 일제의 전초기지
국가공원으로 돌아오는 용산...이젠 아픔 없어야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사연없는 사람없고 사연없는 땅이 어디 있으랴만 서울 용산(龍山)의 사연은 가슴속 멍울처럼 단단하다. 외세의 역사가 핏방울로 맺힌 한국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116년만의 귀환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허락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었던 '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개방된다. 정부가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장교숙소 5단지에 대한 재단장을 끝내고 다음달 1일부터 상시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904년 일본군이 주둔한 이후 116년 만에 국민 누구나가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장소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 중심에 자리잡은 우리땅이지만 한세기가 훌쩍 넘는 동안 허락을 받아야만 드나들 수 있었던 금단의 땅 용산기지가 110년 세월을 넘어 돌아온다.

용산이라는 지명의 역사는 길다. 고려시대에 이미 용산이라는 이름이 나올만큼 한반도에서 중요한 지리적 의미를 가진다.

최사추 등이 왕에게 "신들이 노원역·해촌·용산 등지로 나아가 산수를 살펴보니 도읍을 세우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이 산의 형태와 물의 기세에 있어 부합하였습니다. 청하건대 주간(主幹)의 중심이 되는 대맥(大脈)에서 임좌병향(壬坐丙向·서북쪽을 등지고 동남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지형을 따라 도읍을 건설하십시오."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고려사절요 권6)

고려 숙종 6년(1101년) 10월. 개경의 수명이 쇠약해져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천도론이 일었다. 물색된 장소는 개경 남쪽 한양. 한양을 남경이라고 이름 붙이고 남경개창도감이라는 궁궐건설기관까지 설립해 숙종9년 5월(1104년) 남경이궁이 완성된다.(고려사절요 권7)

궁궐의 위치는 현재 경복궁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3년(1394년) 음력 9월 9일자 기사에는 '남경행궁의 영역이 좁아 그 남쪽을 경복궁 영역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 점에 비춰보면 경복궁 북측, 지금의 청와대 위치로 추측되고 있다.

용산은 궁궐자리로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그 이름이 고려사에도 나올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고려사 지리지(고려사 권56, 지, 권제10)에 따르면 용산은 양광도 광주목의 과주에 속했다. 고려 충렬왕 10년(1284년)에 주(州)의 용산처를 승격시켜 부원현(富原縣)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 용산은 세곡의 집산지였다. 전국에서 거둬들인 쌀과 공물 등 조세가 바다를 타고 한강으로 들어온 뒤 집결되는 장소였다.

세종실록지리지 경도 한성부에는 용산에 대해 '숭례문 밖 서남쪽 9리에 있다. 배로 실어 온 세곡을 거둬들이는 곳'으로 설명돼 있다.

물품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세곡선이 도착하면 물건을 지고 나를 인력이 필수적이다. 도성에서 9리(3.5km) 떨어진 용산에는 양반과 권세가들이 모여 살던 성 안과 달리 '먹고 살기' 위한 서민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많다 보면 사건사고는 필연적이다.

성종5년(1474년) 음력 3월25일자 조선왕조실록 기사. 세곡을 관리하는 관청의 수장인 호조판서 이극증이 용산의 들끓는 도둑들에 대한 대책을 왕에게 보고한다.

"충청좌도와 경상도의 전세를 용산강에 정박하는데, 용산은 거민(居民·거주민)이 매우 많아 세곡을 뭍에 내릴 때 무뢰한 무리들이 틈을 엿보아 도둑질을 합니다. 청컨대 금후로는 조선(漕船)을 노량으로 옮겨 정박하게 하고, 금도군(禁盜軍)을 정하게 하소서."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

세곡을 노린 도둑이 많으니 경찰력을 강화해 도둑을 잡고, 사람들이 덜 거주하는 노량진으로 세곡 하역장소를 옮기자는 의견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수선전도에 나타난 용의 모습을 닮은 용산. 2020.07.23 fair77@newspim.com

도둑도 도둑이지만, 용산은 날이 갈수록 세곡선 집하장으로 결점이 드러난다. 모래톱이 쌓여 세곡선이 정박하기 힘들게 된다. 여의도와 밤섬 등에서 보듯 한강 하류는 모래가 퇴적돼 만들어진 하천 내 모래섬이 있다.

성종 8년(1477년) 음력 11월28일. 용산포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뤄진다. 호조에서 아뢴다. "지금 용산의 강어귀가 모래로 차서 막혀 경상도 전세의 조운이 불편하니 청컨대 내년부터 경중의 여러 관사에 바치는 전세를 두모포(豆毛浦)에 정박시켜 수송하여 들이게 하소서."

용산포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조운선 정박을 동쪽으로 옮긴 두모포(현재 서울 성동구 옥수동 동호대교 북단)로 하자는 말이다.

8년이 흐른 성종16년(1485년) 음력 4월13일에는 모래를 파내는 논의도 고려된다. 모래톱이 쌓이는 원인과 해결책이 제시되지만, 결국 '들인 공에 비해 남는 것이 적다'는 이유로 유야무야되면서 용산의 세곡 집하장으로 위세는 약화된다.

이극증이 의논하기를 "전에는 용산강의 남변에 돌산이 수중으로 쑥 들어가 있으므로, 강물의 흐름이 이것에 부딪쳐서 수세가 북쪽으로 흘렀는데 뒤에 거민(居民)들이 돌을 떠서 사용하여 물이 격세가 없어지고 남변으로 직류해 내려가니, 이로 말미암아 북변의 물이 얕아지고 모래가 메워져 이에 이르렀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남변으로 쑥 들어간 산의 돌을 떠낸 곳에 큰 돌을 실어다가 보충하여 강물의 흐름을 예전과 같이 격세를 이루게 하고, 이어서 북변의 모래가 메워진 곳을 파내어 물길을 인도하면, 자연히 물이 북쪽으로 향하고 모래가 다시 메워지지 못할 것입니다."

정창손·윤필상·홍응·윤호가 의논하기를 "전자에 신중린이 진언하여 용산강의 모래가 메워진 곳을 파도록 청하였으므로, 대신에게 명하여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공역의 어려움으로 시행하지 못하였으니 지금도 파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툭하면 외국군대 주둔지

용산에 누적된 모래톱은 앞으로 다가올 용산의 비운을 점쳤던 것일까. 조정의 갑론을박이 펼쳐진 성종 시기에서 100여년이 흐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용산은 '왜군의 캠프'로 바뀐다.

한양 도성에서 9리(3.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강을 끼고 있어 물품 수송이 편리하다. 게다가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군대 주둔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선조26년(1593년) 음력 2월23일 전라감사 권율의 장계다. "신이 주둔한 곳은 용산과 거리가 15리도 안 되는데, 흉악한 적들이 보복할 계책으로 한강 이남의 진들을 불러 모아 합세하여 다시 침범하려 한다는 소문이 경성에서 도망해온 사람들에 의해 여러번 발설되었습니다. 지금 용산에 진을 친 곳이 12개소라고 합니다."

용산에 진을 친 일본군은 적어도 2만명이었다. 이틀 뒤인 2월25일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의 보고다. "15일에 충청수사 정걸이 수군을 이끌고 곧바로 용산창 아래에 다달아 왜적을 향하여 포를 쏘았는데, 강변에 진을 친 왜병이 2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한 용산은 현재 미군기지가 위치한 장소는 아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원효로 일대, 가토 기요마사 부대는 갈월동 부근에 주둔했다.(용산기지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김천수, 발간 용산구청, 2017년 12월)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부터 러일전쟁 후 일본이 건설하고 미군까지 이어진 현재 용산기지가 위치한 수선전도에 표시된 둔지방의 모습.2020.07.23 fair77@newspim.com

현재 미군기지가 들어선 '용산기지'는 엄밀히 말하면 조선시대 용산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둔지방 또는 둔지미로 불렸다.

서울역사편찬원에 따르면 조선시대 용산은 현재 마포구 일부를 아우르는 터였다. 용산방으로 분류됐다. 조선 영조 때 성 밖에 설치한 한성부 서부 9방 중의 하나다. 용산방은 도성 서쪽 무악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약현과 만리현을 지나서 서쪽 한강변을 향하여 꾸불꾸불 나아간 모양이 마치 용이 몸을 틀어 나아간 것 같고, 한강변 용산구와 마포구 경계에서는 용이 머리를 든 것 같아 용처럼 생긴 모양이라 용산이라 부른 데서 방 이름이 유래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마포동, 이촌동, 토정동 일대와 공덕동, 신공덕동, 염리동, 대현동, 서계동, 청파 1·2·3가, 원효로 1·2·3·4가, 문배동, 용문동, 신계동, 신창동, 산천동, 청암동, 도화동, 효창동, 도원동 일부에 해당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청일전쟁 때 만리창에 상륙한 일본군의 모습. 용산 일대에는 조선말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한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다. <자료=서울역사박물관> 2020.07.23 fair77@newspim.com

미군기지가 들어선 곳은 용산방이 아니라 둔지방이다. 조선 영조 때 성 밖에 설치한 한성부 남부 11방 중 하나다. 용산방과는 행정구역부터 다른 셈이다. 중앙에 둔지산이 자리 잡은데서 유래했다. 둔지산에는 둔전을 일구면서 이곳을 수비하는 둔병이 있어서 둔지뫼・둔지매・둔지미, 한자로 둔지산으로 불렀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이태원동·동빙고동 일대와 후암동·동자동·서빙고동·용산동4가 일부에 해당한다.

용산기지에 외국 군대가 처음 진을 친 것은 임오군란(고종13년·1882년) 때다.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은 급여와 보급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구식군대인 무위영과 장어영 군졸들은 13달간 봉급미를 받지 못하는 등 불만이 높았다. 그러던 중 겨우 한달치 급여를 받게 됐지만 쌀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모래가 절반 넘게 섞여 있었다. 격분한 구식 군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사달을 벌인 군졸들은 당시 권력에서 물러나 있던 대원군을 찾아 애원했다.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망갔고, 대원군이 다시 전권을 잡았지만 명성황후 일파의 청원을 받아들인 청나라가 군대를 조선에 파견, 대원군을 중국 텐진으로 납치했다.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곳이 둔지미다. 이후 용산기지 풍운의 역사가 시작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러일전쟁 이후 용산 일대에 새로 조성된 일본군 군영지를 이태원 방향에서 담아낸 전경사진. <자료=서울역사박물관>.2020.07.23 fair77@newspim.com

◆지금 용산은 '그 용산'이 아니다

1904년 러일전쟁은 조선왕조의 몰락이 본격화한 계기다. 누구도 이길수 없을 것이라던 러시아와 전쟁을 일본은 승리했다.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의 지배권을 열강들에게 인정받은 일본은 둔지미 땅에 일본군 주둔지를 세운다.

일본군은 '조선 영구 주둔'을 위해 도시지역과 철도 중심지 성격을 가진 용산과 평양, 의주 세 곳을 군용지로 확정한다. 1904년 8월15일 한일의정서 제4조에 의거해 용산에서만 991만7355㎡(300만평)에 대한 토지수용을 조선 정부에 일방 통고한다.(용산 둔지미의 공간적 역사와 삶의 지속, 오문선, 향토서울 87호, 2014년 6월)

1905년 7월 26일 본격 군사기지 공사가 이뤄진다. 병력과 군수품 이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1906년 6월 서울역 앞에서 동자동, 갈월동, 남영동을 거쳐 용산역을 지나 한강으로 통하는 대로를 완성한다. 현재 용산을 가로지르는 큰 길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한 대륙침략로였다. 일제의 용산기지 공사는 1913년 11월 각종 건물들이 완공되면서 끝난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명이 강제 지주를 당하며 삶의 터전을 잃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일제강점기 일본이 제작한 서울 용산일대의 지도인 용산시가도. 일본군 병영과 대륙침탈을 위해 확장한 철도 등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자료=서울역사박물관> 2020.07.23 fair77@newspim.com

둔지미 일대가 용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이 과정에서 비롯된다.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에 따르면 일본군은 둔지미 일대를 '신용산'으로 불렀는데, 나중에 '신'자가 빠지면서 일대가 '용산'으로 둔갑했다.

해방 이후에도 용산기지는 여전히 군사기지였다. 1945년 9월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오키나와 주둔 제24군단 예하 7사단 병력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며 미군이 용산에 주둔한다. 이후 1949년 7월까지 미군은 군사고문단 482명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지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이 다시 한국에 투입됐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7년 7월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기지에 정식으로 창설됐다.

미군기지는 2003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를 포함한 미군기지를 모두 평택, 오산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합의가 이뤄졌다. 2005년 국가공원 조성을 발표한 이후 최근 반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부지 내 장교숙소 5단지 개방행사가 열렸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공원모습. 2020.07.21 mironj19@newspim.com

러일전쟁 이후 '영구적 지배'를 꿈꾸며 군 주둔지를 만들었던 일본의 야욕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일본에 이어 눌러앉은 미군기지도 이제 공원으로 탈바꿈해 2029년을 목표로 한국인의 품으로 돌아온다.

왜군과 청나라 군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받은 상처만큼 용산땅도 깊은 생채기를 안고 있다. 이제는 용산의 아픔이 역사 속 기억 너머로 사라져야 할 때다.

fair77@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북한'인가 '조선'인가 호칭 논쟁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최슬아 숭실대 교수는 29일 "북한이라는 호명이 상대방을 한반도의 일부처럼 위치시킨다면 조선이라는 호명은 하나의 독립된 행위자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북한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은 어떤 온정적인 제안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불안을 낮추고 관계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윤종빈)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평화 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북한인가 조선인가' 주제로 특별학술회의를 열었다. 통일부는 관련 논의를 공론화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회의를 후원했다. 사회를 맡은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호칭은 기본적으로 식별 기능을 갖지만 정치적 호칭이 되는 순간 이데올로기를 담게 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식 명칭으로 부르며 남쪽을 외국으로 재정의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한'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며 토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며 도어스태핑을 갖고 최근 북한 '핵시설'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김성경 "호칭은 분단 산물…'조선' 관계 전환 출발점" 김성경 서강대 교수는 "북한이라는 호명은 비공식적·약칭적 표현이지만 분단 80년 동안 누적된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서 "북한을 계속 북한이라고 부르는 한 우리 안에 북한이 계속 갇힐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북한을) 조선, 북조선으로 부르는 경향이 좀 있었다"며 "남과 북의 국가 정체성이 이미 상당히 공고화돼 있는 현 상황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 맺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북한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평화공존이나 통일에 더 도움이 된다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통일은 남북이 서로를 인정 존중하고 그 맥락 안에서 관계를 맺고 남북 주민이 통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 권은민 "국호 사용, 국가 승인 아냐…정치가 먼저, 법은 따라간다" 권은민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DPRK'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꼭 국가 승인이나 정부 승인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면서 "국가 승인은 정치적 행위이고 국가 의사 표시다. 그렇게 부르더라도 국가 승인과는 무관하다라고 선언을 하면 정리가 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관계는 법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다"면서 "과거에도 정치가 큰 틀을 규정하고 법과 제도가 따라가는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 기본합의서 제1조는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돼 있다"면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국호 사용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취지의 기존 합의를 계승하는 것"이라면서 "당사자 표기는 상대방이 원하는 공식 국호를 불러주고 그것이 국가 승인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된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군수공업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 산하 중요 군수공장을 방문했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 권총으로 사격하는 모습.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03.12 yjlee@newspim.com ◆ 이동기 "독일도 경멸적 호칭 쓰다 공식 국호 전환…출발은 이름" 이동기 강원대 교수는 "서독은 동독을 경멸적 표현으로 불렀지만 긴장이 격화되면서 더 큰 평화 정치에 대한 구상이 폭발했다"면서 "국제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평화 화해 논의가 공존에 대한 요구나 필요를 폭발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독일 정치권에서는 헤르베르트 베너 전독문제부(통일부) 장관이 가장 먼저 동독 공식 국호를 사용했다"며 "당시에는 언론의 융단 폭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줬다. 국제법적으로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인내만으로도 부족하다"면서 "결국 원칙 고수와 실용주의가 결합하는 모든 출발은 국호의 제대로 된 호명이고,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근본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호칭 변경, 굴복 아닌 공존 가능성 넓히는 정치적 전략" 패널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조선 호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김태경 성공회대 교수는 "젊은 세대에는 '둘의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이라며 "우리가 조선을 일종의 주권 국가로서 인정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에 대한 자기 인정과 그들에 대한 인정이 같이 결합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주희 국립부경대 교수는 "핵심은 인정과 통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라면서 "실질적으로 가는 데 있어서는 담론과 제도, 정치 차원에서의 접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호칭을 바꾸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적대를 줄이고 공존의 가능성을 넓히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hyun9@newspim.com 2026-04-29 18:04
사진
제이알發 쇼크에 리츠업계 초긴장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1호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자산 가치 하락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장 리츠 가운데 사실상 첫 디폴트 사례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개별 리츠의 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며, 전체 시장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관련 시장에 대한 긴급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필요 시 유동성 지원과 함께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무너진 해외 부동산 가치…유동성 위기 예견됐나 30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제이알투자운용의 기업회생 절차 돌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내 대형 독립계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제이알투자운용이 2020년 국내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안착시킨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다. 벨기에 브뤼셀 중심부에 위치한 파이낸스타워와 미국 뉴욕 맨해튼의 498세븐스애비뉴 등 대형 상업용 오피스 빌딩을 기초 자산으로 편입해 운용해 왔다. 그러나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가치가 떨어지면서, 단기사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지난 27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전일 매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으나 해외 자산의 감정평가서 수신 지연 등을 이유로 한 달 만인 2월 이를 자진 철회했다. 핵심 자산인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감정평가액이 급락하면서 현지 대주단과 약정한 담보인정비율을 초과했다. 임대료 등으로 발생한 현금 흐름을 대출 상환에 우선 충당하도록 묶어두는 캐시트랩(Cash Trap, 현금 동결)이 발동되더니 기업회생으로 이어졌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차입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헤지(환율 고정 상품) 정산금 명목으로 약 1000억원의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시급하다"며 "캐시트랩 해소를 위해서는 약 7830만유로(한화 약 1354억원)의 현지 차입금 상환을 위한 추가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제히 꺾인 리츠주…시스템 리스크 확산은 기우? 이 같은 악재에 상장 리츠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거래 동향을 살펴보면 이날 리츠 종목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큰 폭으로 미끄러진 것을 비롯해 한화리츠, 삼성FN리츠, SK리츠, 코람코라이프인프라리츠 등이 급락세를 면치 못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뚜렷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리츠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됐다. 한국리츠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 상장된 25개 리츠의 시가총액은 9조7778억원을 기록했다. 리츠 시장은 지난해 1월 8조103억원 수준에서 같은 해 9월 9조2048억원을 돌파했고 5개월 만인 지난 2월에는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몸집을 불려왔다. 그동안 일반 주식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외됐지만, 최근 코스피 강세장 속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로 주목받은 결과다. 법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 덕분에 확실한 현금 흐름을 선호하는 투자 자금이 대거 몰린 것도 호재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이 전체 금융 시장으로 퍼질 것이란 예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장 리츠 22개사 중 해외 자산을 보유한 비중은 14.3%이지만, 전체 자산 기준으로 환산하면 해외 자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 리츠의 총투자 자산 대비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파이가 극히 작아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자산 구성 및 투자 유형별 포트폴리오 비중을 보면 주택이 44.0%로 가장 컸다. 오피스는 35.3%에 머물렀으며 리테일 6.4%, 물류 6.4%, 혼합형 3.6%, 기타 3.2%, 호텔 1.1% 순으로 나타나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해외 오피스 리스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제이알리츠의 최근 기준 발행 잔액이 약 4000억원으로 전체 크레딧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일반 크레딧물과 달리 리츠가 발행한 회사채는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굴러가는 국내 크레딧 시장 심리에 타격을 주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이벤트가 단기사채 미상환으로 불거진 만큼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이 회사채 시장으로 파급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최근 풍부한 단기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어음 금리가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어 과거의 신용 위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국토부 방화벽 구축 총력전…상장리츠, 자산 다각화 과제로 다만 해외 부동산 자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리츠 종목들은 당분간 위축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상장 리츠는 KB스타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 디앤디플랫폼리츠, 이지스레지던스리츠 등이다. 이 중 해외 자산 구성 비중이 100%인 곳이 3개사, 50% 이상이 2개사, 50% 미만이 3개사로 파악됐다. 대표적으로 디앤디플랫폼리츠는 일본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에 간접 투자 중이며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미국 소재 임대주택 및 대학 기숙사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외 자산의 장부 가치 비중이 각 리츠 총자산의 5~30% 수준에 그쳐 전반적인 쏠림 현상은 없다"면서도 "해외 자산을 보유한 개별 리츠의 경우 현지 대출 약정 위반에 따른 현금 흐름 통제와 국내 채무 차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동시에 겪을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한파도 부담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주요 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7% 떨어졌다. 고점을 찍었던 2022년과 15%나 증발했다. 런던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30% 넘게 폭락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방화벽 구축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김이탁 제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 한국부동산원,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를 긴급 소집해 점검 회의를 열었다. 리츠 시장 전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응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부실화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전일 합동 검사에 착수했으며, 불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며 "시장 안정을 위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최대주주가 되는 앵커리츠를 공급하고, 변동성이 통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채권 및 자금 시장 안정 프로그램 규모를 즉각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태 수습을 넘어 리츠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장 리츠의 주가를 궤도에 올려놓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된 상태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자금 조달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우량 자산 편입과 리츠 간 합병을 통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자산관리회사 역시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운용 현황과 배당 전략 등을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불신을 거둬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4-30 06:0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