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전면적인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은 낮아"
상속세만 10조원대...연부연납제도 활용 가능성
삼성생명법 통과 시 물산→생명→전자 지배구조 '위협'
[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하면서 삼성 지배구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관심이 쏠린다. 증권가에서는 당장 전면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여당에서 추진 중인 '삼성생명법'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故)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 계열사의 지분가치는 약 18조2250억원(23일 종가기준)이다.
올해 6월 30일 기준 이 회장은 ▲삼성전자 보통주 2억4927만3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900주(0.08%) ▲삼성생명 4151만9천180주(20.76%) ▲삼성물산 542만5733주(2.88%) ▲삼성SDS 9701주(0.01%) 등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 로이터=뉴스핌] 이영기 기자=지난 2012년 1월 12일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라스베거스 CES참석 후 입국하며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0.10.25 007@newspim.com |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에 따르면 상속 규모가 30억원을 초과할 경우 최고세율(50%)이 적용된다. 또 고인이 최대주주이거나 특수관계인이면 주식 평가액에 20%의 할증이 붙는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S 등 4개 계열사의 최대주주 혹은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므로 최대주주 할증 대상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 보유 중인 주식평가액의 60%를 상속세로 내야 한다. 자진 신고에 따른 공제 3%를 적용하면 유족이 내야할 상속세 규모는 10조원대로 추정된다. 상속세 부담액이 천문학적인 규모인 만큼 삼성그룹이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할 것으로 유력시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그룹이 당장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특별검사팀의 재판부 기피신청으로 9개월간 멈췄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이 이날부터 재개되는 상황 속에서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돌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별도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불법·편법적인 방식으로 합병해 경영권을 승계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은경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지금 당장 전면적인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이는 적어도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처리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가능한 일들"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이재용 부회장이 4세 경영 포기를 공언하면서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낮아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 5월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통해 "경영권 승계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삼성그룹이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세대 간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지배력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분할·합병 등 지배구조 개편의 실행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상속 후에도 현재의 그룹 지배구조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료=메리츠증권 보고서] |
다만 장기적으로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변수로 꼽힌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이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전체 자산에서 특정 회사의 주식을 3%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데, 보유 주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현 시가를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해당 개정안의 영향을 받는 곳이 사실상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두 곳뿐이어서 '삼성생명법'으로 불린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1979~1980년 삼성전자의 지분을 주당 800~1100원 사이에서 취득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매각기한인 5년 이내에 삼성전자의 지분 약 20조원을 처분해야 한다. 삼성화재 역시 보유중인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정리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8.51%(5억4441만8000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화재는 삼성전자의 지분 1.49%(8880만2052주)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분을 매각하게 되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가 불가피 해진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지녔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5.01%)과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8.51%)을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구조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지분 17.48%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크기 때문에 매입자금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매각하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은경완 연구원은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전자 지분 매입 재원 마련을 위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매각 이슈가 재차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오너 입장에선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현재 사회 분위기상 제약 요인이 많은 시나리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상속세 규모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예단하긴 어렵다"며 "향후 이건희 회장의 유언장 유무 내지 내용에 따라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삼성그룹주는 대체로 상승세를 보였다. 이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그룹 계열사가 향후 배당을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에 이날 삼성물산은 전장 대비 13.46%(1만4000원) 상승한 11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SDS와 삼성생명은 각각 5.51%, 3.80% 올랐으며 삼성전자도 0.33% 뛰었다.
saewkim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