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올해 영화계는 어느 때보다 '여성 영화'가 득세했다. 지난 9월 개봉한 '디바'부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내가 죽던 날' '애비규환'에 이어 넷플릭스 '콜'까지. 이제는 여성서사 자체가 영화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 소재부터 장르까지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흥행도 선방
연초부터 코로나19로 영화계가 잔뜩 위축된 가운데, 가을부터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고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했다. 특히 여름 극장가 유일한 여성 주연 영화였던 '오케이 마담' 이후 '디바'와 '내가 죽던 날' '애비규환'은 감독도 여성이다. 제작진 역시도 대부분 여성 스태프들이 함께 모여 영화를 만들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2020.09.16 jyyang@newspim.com |
특히 '디바'부터 이어진 여성 주연 영화의 공세 가운데 눈에 띄는 건 소재와 장르의 다양화다. '디바'에서는 스포츠 중에서도 대중에게 익숙지 않은 다이빙 소재를 택했다. 신민아, 이유영은 극 중 국가대표 다이빙팀 선수 역을 맡아 내내 수영복을 입고 물 속에서 열연했다. 다이빙 자체가 주는 이미지와 맞물려, 그간 다루지 않았던 동성 친구간의 치밀한 심리 묘사도 이 영화를 빛나게 했다.
지난 8월 개봉했던 '오케이 마담'에서는 그동안 주로 남성이 맡았던 북한의 특수공작원 출신 영웅 역을 엄정화가 맡았다. 영화 전반에 깔린 코미디 무드와 함께 몸을 날리는 기내액션이 남성 배우들의 액션과는 다른 쾌감을 안겼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고아성, 이솜, 박혜수는 대기업 고졸 여사원들이 회사의 내부 비리를 파헤치는 내용을 그리며 작은 존재들의 주체적인 힘에 주목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2020.11.06 jyyang@newspim.com |
'내가 죽던 날'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성이 서로의 내면에 깊이 공감하고, 연대하고, 손을 잡아주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건의 주인공도 여자, 파헤치는 이도 여자, 비밀을 간직한 인물도 여자였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는 역시 여성인 박지완 감독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먹먹함이 담긴 영화를 완성했다. 혼전임신과 결혼, 이혼, 재혼가정에 대해 재기발랄한 메시지를 전하는 '애비규환'의 주역도 여성배우 정수정, 장혜진, 여성감독 최하나다.
특히 '오케이마담'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흥행에도 성공하며 여성서사의 힘을 증명했다. '오케이마담'은 지난 8월 중순 코로나19 2차 확산으로 어려운 시기 122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0월 극장개봉해 148만명의 관객을 넘어섰다. '내가 죽던 날'과 '애비규환'도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임에도 개봉 1주차 17만, 2만여 관객을 모으며 선방 중이다.
◆ 코로나19로 개봉 연기된 대형 영화들…오히려 '여성영화' 힘 받았나
업계에 따르면 유난히 올해 여성감독, 여성 배우들이 참여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이미 몇해 전부터 영화계가 움직여왔다는 증거라고. 한 업계 종사자는 "이 시기에 이렇게 여성 영화들이 많이 나올 줄 몰랐다"면서도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가 쓰이는 것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디바'의 신민아도 인터뷰 당시 "영화계에 이렇게 훌륭한 여성 영화인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때아닌 여성영화의 득세가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투자를 받은 대형 영화들이 주춤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올 추석 명절시즌 개봉을 예정했던 240억 예산의 대작 영화 '승리호'가 극장 개봉을 포기하면서 극장가에 공백이 생겼다. 바로 그 자리를 중·소규모의 영화들이 채웠고, 그 중 다수가 여성서사 영화였다는 추정이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20.10.13 jyyang@newspim.com |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여름 극장가를 100억원대 이상이 투입된 대형 영화 '반도' '강철비2: 정상회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차례로 개봉됐지만, 그 이후로는 개봉이 뚝 끊겼다. 손익분기점을 어찌저찌 넘기더라도, 생각한 만큼 수익을 극대화하기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전년대비 극장을 찾은 관객수와 매출이 70%가까이 동반 하락하면서 코로나19 발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같은 여성 영화가 이뤄낸 것들은 분명히 있다. 배우 이정은은 "아무래도 여성 감독이 쓰면 같은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전형적인 여성을 넘어 여러 겹의 캐릭터를 쓰게 된다"면서 다양한 여성 주·조연들이 활약할 수 있게 될 거라 기대했다. 특히나 올해의 한 시기를 통째로 장악하면서, 업계에서는 더욱 다양한 영화들이 주류로 올라설 발판이 마련됐단 얘기도 나온다. 투자부터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여성 영화들이 어려움을 뚫고 얻은, 작지만 아주 귀중한 성과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넷플릭스]2020.11.20 jyyang@newspim.com |
이같은 극장가의 흐름을 이제는 넷플릭스에서도 이어간다. 오는 27일 전격 공개되는 '콜'에는 박신혜, 전종서, 김성령, 이엘이 출연하며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의 탄생을 예고했다. 이 영화는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충현 감독은 "한국 영화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장르적으로 굉장히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밝혔다. 확실히, 영화계에 또 하나의 새로운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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