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배당 20% 이하로 축소할 것으로 봐
IR 창구들 외국계 항의, 주주들에게 서신 보내
오는 4일 KB금융 실적 발표 이후 '배당 공시' 예정
[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주요 금융지주들이 금융당국의 '배당 20% 축소 권고'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은행 업계에선 이번주 실적발표에서 배당 규제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더욱 커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 시중은행의 투자자관리(IR) 부서에는 예년과 달리 투자자들의 배당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주들은 "작년 실적도 좋다는데, 배당을 일괄적으로 20%로 묶는다는 게 납득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정례 회의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은행 및 은행지주 자본관리 권고안'을 의결했다. 권고안은 국내 은행지주회사 및 은행이 순이익의 20% 이내에서 배당을 실시하라는 것이 골자다. 이는 올해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금융위를 거쳐 배당 지침이 공식 권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통적인 고배당주로 꼽히는 은행주에서 '배당 축소' 결정은 금융지주에 큰 타격이다. 배당이 줄어들면 주주들의 매도 움직임이 커지고 주가가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금융을 제외한 대다수 금융지주에선 외국인 주주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어 이같은 국내 소식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은 일제히 감소세를 보였다. 신한지주는 2019년 1월말 외국인 투자자가 67.2%에서 올해 2월 1일 58.3%로 줄었다. 3년 만에 8.9%포인트(p) 감소하며 4대 금융지주 중 가장 큰 하락폭을 나타냈다. 같은 기간 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70.2%에서 67.2%로 3.0%p 감소했다. 우리금융지주는 27.5%에서 25.0%로, KB금융은 68.6%에서 66.3%로 줄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주들은 일단 20% 배당을 수용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당국이 은행의 향후 건전성을 '스트레스테스트' 방식 결과를 통해 이례적일 만큼 자세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지주사의 배당성향은 우리금융지주 27.0%, KB금융지주 26.0%, 신한지주는 25.97%, 하나금융지주 25.7%였다. 권고대로라면 4대 금융지주의 배당성향이 5~7%p 줄어드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의 구체적인 발표 이전부터 내부에서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고 관련부서에서는 주주들에게 서신을 보내는 등 꾸준히 소통 작업을 해왔다"며 "이미 권고안을 고려해 구체적인 윤곽은 다 잡아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증권사의 연구원들은 이미 금융지주들이 2020년 배당성향을 20% 이하로 낮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금융주 이탈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배당 축소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시장에서는 이미 배당축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배당 축소에 이어 이익공유제 참여 요구까지 이어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격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배당 축소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추가 여력 확보 차원으로 설득할 수 있지만, 정치권에서 논의하는 이익공유제는 설득하기 어렵다는 게 은행의 입장이다.
여당에서는 코로나19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업종이 은행권이라며 은행이 이익공유제에 동참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가계대출이 늘어나며 돈을 벌었으니 곳간을 풀라는 것이다.
오는 4~5일에 금융지주는 지난해 잠정 실적을 발표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지난해 역대 최대의 호실적을 거둔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4일 KB금융은 2020년 4분기 실적 발표 후 진행하는 컨퍼런스콜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배당에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을 할지가 관건이다. 이날 실적 발표 이후 KB금융은 배당 공시를 할 예정이다. 이때 당국의 권고 여부를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KB금융이 먼저 배당을 결정하는 것에 따라 다른 금융지주들도 이를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각 사의 사정에 맞게 배당을 결정하는 게 맞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당국 이슈이다 보니 타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지주의 실적 발표 후에는 배당에 따른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구 연구원은 "오히려 은행 실적이 발표되면서 배당 축소 여부가 결정되고 나면 악재 기반영으로 인해 주가가 반등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정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자본관리 권고안이 6월말까지 적용되는 한시적인 규제인만큼 올해도 중간배당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2021년 총 배당성향은 25~26%로 정상화를 기대한다"며 "하반기에는 자사주매입을 포함 보다 적극적인 주주친화정책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