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아이'의 류현경이 또 하나의 인생작을 추가했다. 싱글맘 영채 역의 그는 현실적이면서도 공감가는 연기로 모두의 마음을 움직인다.
류현경은 영화 '아이'의 개봉을 앞두고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참여하고, 완성작을 만난 소감을 말했다. 그가 연기한 영채는 업소에서 일을 해 홀로 아이를 키우며 생계까지 책임지는 인물이다. 류현경은 "시나리오 받았을 때 굴곡이 많은 시간과 세월을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21.02.10 jyyang@newspim.com |
"영채가 어떤 시간들을 보내왔을까, 먼저 생각했어요. 아이를 두고 장을 혼자 보러 가야했을 시간들, 변호사가 지금의 처지를 물었을 때 이 질문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채에게 했을까. 그런 걸 쭉 적어놨죠. 그래서 영채는 마음이 더 불안하고 말과 행동이 꼬불꼬불하게 나오는 사람인 것 같아요. 많이 잃고, 매일 상실하는 사람이라고도 적어뒀더라고요. 기억, 소중한 마음, 관계, 가족, 사랑에 대한 상실감이 가득한 인물이라고 해석했어요. 저는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만 다 보여드리지 않아도 다들 영채의 정서들을 잘 느꼈으면 했죠."
영채는 아이까지 있는 어른이지만, 매 순간 어른답지 못한 아이같은 면이 도드라진다. 류현경은 영채를 "결핍이 많은 친구"라고 설명하며, 아영 역시도 결핍이 있었지만 영채에겐 귀인같은 존재가 됐음을 곱씹었다. 특별히, 영채가 아영을 만나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표현하는 게 류현경에게는 중요했다고도 했다.
"영채가 아영을 대하는 걸 보면서 결핍과 마음에 공백이 있는 사람 같았어요. 영화적으로 제가 연민에 젖어있고 싶지는 않았죠. 그저 아영을 만나고 함께 지내면서 영채가 좀 변해가는 모습에 집중했어요. 진작에 아영같은 귀인을 만났으면 영채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매일 상실감을 느끼는 건, 직업과 상관없이 누구나 한번쯤 그런 때를 보낼 때가 있다고도 생각해요. 배우도 누군가에겐 환영받는 직업이 아닐 수도 있는 거고요. 여러 가지 편견에 마주하는 삶을 산다거나, 마음이 풍요롭지 않은 채로 사는 영채의 모습이 저의 한 때와 겹쳐 보일 때도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접근해 나갔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21.02.10 jyyang@newspim.com |
류현경은 스스로 마음이 영채같았던 때가 있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영화와 함께 성장했다고도 얘기했다. 그만큼 '아이'는 그에게 특별한 작품이 됐고, 그 이유엔 김향기의 역할도 컸다. 류현경은 "김향기씨의 오랜 팬이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저의 삶이 김향기를 만나면서 좀 풍요로워졌어요. 하하. 예전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편이었고 많이 질책하는 타입이었죠. 내 마음에 공백이 있는 것조차 제 탓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바뀌었어요. 왜 그랬지.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사람들과 잘 관계를 유지하고 작업도 잘 하고 있는데. 지나고 보니 잘 살아왔구나 생각이 든 게 얼마 안됐어요. 그때부턴 스스로 많이 칭찬해주려고 해요. 영채가 아영을 만나면서 삶이 좀 평화로워지고 자신을 사랑하길 바란 것처럼, 저도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긴 대본 연습과 리허설 과정 거치면서 염혜란 선배님, 향기씨, 감독님과 교감한 모든 시간이 감사해요. 그게 이 영화에 고스란히 투영돼서 행복했죠."
영채의 어떤 면에서 비슷한 면을 보게 됐다고 해도, 업소 여성에 싱글맘이라는 배경이 역을 수락하기에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다행히 류현경은 그런 점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뿐더러, 자신을 영화에 알맞게 잘 써준 김현탁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21.02.10 jyyang@newspim.com |
"감독님이랑 다들 서로 너무 친해져서요. 고생했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좀 쑥쓰럽더라고요. 무대 인사할 때 저 왜 캐스팅하셨냐고 좀 물어보려고요. 하하. 시사회 끝나고 손편지를 써주셨는데 그 이유는 안써있었어요. 그래도 다른 궁금증들이 많이 해소됐고 감사한 맘이 들었죠. 배우가 대표작이 있으면 좋긴 할텐데, 저는 각각의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전국노래자랑'도 있고 '오피스'의 류현경을 첫 번째로 떠올리시는 분도 있죠. 평생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어떤 작품에 캐스팅 돼서 누가 되지 않게 잘 쓰였으면 하는 다짐을 했었어요. 그 덕인지 잘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아이'가 사회적인 문제들을 가볍지 않게 다루는 영화인 만큼, 민감한 소재나 수위조절에 관한 우려도 없지 않았을 터였다. 류현경은 "신기하게도 감독님의 시나리오 자체가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이 잘 표현돼있었다"면서 김 감독을 재차 칭찬했다. 그런 뜻에 비추어, 류현경은 이 영화가 단순히 불행한 이들을 동정하는 영화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로 비춰졌으면 하는 마음도 드러냈다.
"많은 분들이 여성이 쓴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대요. 감독님은 정말 편견이 없으신 분이셨죠. 요즘 아동에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많이 나오기도 한데, 모두가 아이를 키우거나 결혼을 하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 막막하고 두려움이 생기잖아요. 그걸 불안과 분노로 표출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 설렘과 희망으로 잘 바꿔나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고요. 조금 조심스럽지만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갖길 바라고, 긍정적으로 살게 되길 바라죠. 이 영화를 찍으면서, 보면서도 '나는 정말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이 사는 거구나 함께 가는 거구나. 그런 맘이 느낄 수 있는 감사한 영화가 될 것 같아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