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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지난주 금요일인 26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기업 비아콤CBS(NASDAQ: VIAC)과 미디어 기업 디스커버리(NASDAQ: DISCA) 주가가 역대 최대인 27% 급락했다.
미국 경기 개선의 척도로 간주되는 2개 종목에서 시가총액이 총합 350억달러가 증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술주 바이두(NASDAQ: BIDU)와 텐센트 뮤직(NYSE: TME)도 급락했고, 이보다 소형주인 GSX 테크듀(NYSE: GSX)는 42% 폭락하며 더욱 난폭한 변동성을 보였다.
트레이더들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곤란한 상황에 처한 대형 펀드가 자산을 현금화하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전체 증시의 조정이 시작된 것이냐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 사실로 파악된 변동성 원인
지금까지 파악된 사실은 골드만삭스(NYSE: GS)와 모간스탠리(NYSE: MS) 등 투자은행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는 것이다.
주식을 일시에 대거 매도하는 이 같은 블록 거래(block trade)는 주식시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통상 장 마감 후 비밀리에 협상과 거래가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블록딜의 경우 일부 거래가 10억달러를 넘는 등 규모가 이례적이었던 데다 또 일부 거래는 장중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 통상적 거래 행위에 트레이더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
블록딜이 통상적 거래 행위이기는 하지만, 시가보다 낮은 주가에 매도자가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대규모 거래가 이뤄졌다는 점이 트레이더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해 충격적인 악재가 발생하고 있는데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는 공포가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블록딜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중국 대형 테크주라는 이유만으로 알리바바(HKG: 9988, NYSE: BABA)가 바이두를 따라 홍콩증시 오전장 급락세를 연출했다. 사태 진상을 파악하기 전 발을 빼려는 트레이더들의 패닉 매도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시장 전반의 매도가 아니라 특정 펀드의 문제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알리바바 주가는 반등하며 장을 마감했다.
◆ 이번 사태를 촉발한 헤지펀드는?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전례 없는 매도세 뒤에는 빌 황이라는 개인 트레이더가 운영하는 패밀리 오피스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있다고 보도했다.
패밀리 오피스는 개인 트레이더가 부유한 가족의 자산을 운영하는 펀드로, 외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지 않아 규제 및 감시의 눈길을 덜 받으며 자유롭게 더욱 큰 리스크 투자에 뛰어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아케고스의 경우 월가 대형 증권사들과 '스왑거래'라 불리는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막대한 추가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하면 아키고스의 투자 포지션이 아케고스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포함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키고스는 증권 당국에 투자 현황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빌 황도 논란이 될 만한 행보를 보여온 인물이다. 빌 황은 '헤지펀드의 전설'로 통하는 타이거 매니지먼트의 줄리안 로버트슨의 가르침을 받은 '새끼 호랑이' 중 한 명으로 로버트슨의 투자를 기반으로 뉴욕에서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세웠다.
아시아 시장에 주력하는 빌 황의 타이거 아시아는 찬란한 수익을 내다가 2012년 일부 중국 은행 주식 내부자 거래 혐의를 인정하고 6000만달러 이상의 민형사 손해배상에 합의한 후 펀드를 접었다.
하지만 빌 황의 투자 커리어는 계속 이어졌다.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해 상당수 유명 헤지펀드들보다 훨씬 큰 규모의 자산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 아케고스, 뭐가 잘못 됐나
블룸버그 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일부 거래 포지션이 막대한 손실에 직면하자 빌 황이 돈을 빌려준 투자은행들의 압박에 못 이겨 200억달러 이상의 주식을 매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아케고스가 10% 가량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의 주가가 연이어 하락하자, 프라임 브로커 역할을 해온 투자은행들이 담보 확대를 요구하고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주식 매각 권리는 행사했다는 설명이다.
아케고스와 관계를 맺은 투자은행들 중 일부가 매각 권리를 행사하자 아케고스 베팅의 손실을 우려한 다른 투자은행들의 권리 행사가 줄줄이 이어져 아케고스가 블록딜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타격 입은 종목은?
지금까지 ▲비아콤CBS ▲디스커버리 ▲바이두 ▲텐센트 뮤직 ▲GSX 테크듀 ▲아이치이(NASDAQ: IQ) ▲브이아이피숍 홀딩스(NYSE: VIPS) ▲파페치(NYSE: FTCH) 등을 포함한 9개 종목이 아케고스의 블록딜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 중 일부 종목은 블록딜 이전부터 매도 압력을 받아 왔다.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아이치이는 상당수 아이치이 사용자가 로봇이라 주장하는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크레디트스위스가 경쟁 심화를 이유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한 후 주가가 급락세를 이어왔다.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도 TV 스트리밍 시장으로의 진출 능력과 관련해 월가로부터 회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 지난 26일 웰스파고는 양 종목의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 '시장조정 촉발' 우려
전 세계 트레이더들은 추가 블록딜이 발생할지, 또한 아케고스의 블록딜 여파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대될 지를 극도의 경계 속에 주시하고 있다.
이날 아시아 시장은 아케고스 일개 헤지펀드의 문제로 일축하며 지난주 금요일 뉴욕증시의 사상최고 종가를 따라 상승하며 마감했다.
하지만 논란의 과거를 지닌 창립자가 세운 패밀리 오피스에 왜 그토록 많은 대형 은행들이 돈을 빌려줬는지에 대해 시장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 노무라홀딩스는 29일 미국 고객사와의 거래와 관련해 거액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무라 측은 세부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나, 소식통은 미상의 고객사가 아케고스라고 전했다.
크레디트스위스도 마진콜에 응하지 않은 한 미국 헤지펀드의 포지션 청산으로 1분기 실적에 상당한 소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제 문제는 다른 헤지펀드들의 연쇄 블록딜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 헤지펀드들이 중국 대형 테크주 등 아케고스 투자 바스켓과 비슷한 종목들에 투자하고 있고, 미국 경제가 반등하면서 중국 증시로 유입됐던 투기 자본들이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사태가 저가매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씨티그룹은 고객 노트에서 예상치 못했던 혼란을 틈타 바이두와 텐센트 뮤직, 브이아이피숍 등 저가매수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빌 황 아케고스캐피털 공동 경영자 [사진= 블룸버그통신] |
g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