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양섭 기자 = 해마다 증시 수급을 꼬이게 만드는 '대주주 양도세 회피' 시기가 또 다가오고 있다. 12월 말로 기준을 맞추면 되지만, 연례 행사가 되다 보니 투자자들은 "11월에 미리, 10월에, 9월에.." 이런식으로 시기가 조금씩 앞당겨졌다.
작년엔 '3억원 기준'이 정치적 이슈로까지 번졌다. 실제로 연말로 다가갈수록 회피 물량이 증시 수급을 움직이는 주요 이슈로 부상하기도 했다. 당시 뚜렷한 이유 없이 하락한 날 '남기락'이라는 단어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됐는데, 이는 '3억원 기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름을 빗댄 표현이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압박까지 거세지자 정부는 결국 이 기준을 철회했다. 어떤 과세 체계가 특정 시기에 증시 수급을 좌우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제도의 합리성에 상당한 의심을 가져야 했던건 아닐까. 연말에 나타난 수급 왜곡은 수년간 반복돼왔는데, 제도 개선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3억 기준은 결국 철회됐지만, 기존 대주주 기준인 10억원은 유지됐다. 올해도 10억원 기준이 유지되면서 수급 왜곡 현상은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주주 양도세 제도는 증시 수급 왜곡을 야기시킨다는 점을 빼더라도 논리적으로 여러가지 허점이 있다. 소수종목에 집중투자 하는 경우와 여러종목에 분산투자 하는 경우의 과세 체계가 달라진다는 점,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에는 없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이라는 점, '10억'이라는 숫자가 도출될 만한 논리적 배경이 부족한 점 등이다.
특히 가족들의 투자액을 합산한다는 점은 '현대판 연좌제'라는 비아냥을 비롯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현행 소득세법은 부모·조부모·외조부모·자녀·친손자·외손자 등 직계존비속과 경영지배 관계 법인 등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주식을 모두 합산해 양도세를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연말에 가족들이 모여 "어떤 종목 얼마나 갖고 있냐", "니가 팔아라, 난 들고 갈란다", "전 절대로 못팝니다. 아버지가 파세요" 등의 대화를 나눌 가능성도 있겠다.
삼성전자를 보유한 개인투자자 수가 500만명이라고 한다. 국민 10명중 1명 정도가 삼성전자 주주라는 얘기다. 가족들 여럿이 합산한 삼성전자 보유액이 10억원을 넘었는데, 본인이 혹시 몰랐다면 골치아픈 일이 발생한다. 그 다음해 주식을 팔고 차익이 생겼다면, 양도세 미신고 고지를 받게 될 것이다. 당초 정부 역시 논란이 많았던 이 같은 합산 제도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지만, '3억원 기준'이 무너지면서 마치 딜을 하듯 그대로 남겨뒀다. 한 발 물러섰으니, 다른 하나는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2023년부터 주식 양도세는 대주주 구분 없이 모든 투자자가 내는 것(5천만원 공제)이어서 수급 왜곡 이슈가 생길 가능성은 낮아졌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있다. 양도세는 과세당국이 계산해 주지 않는다. 잘 못 신고하면, 그 패널티는 신고의무자 부담이 된다. 모든 개인투자자들이 양도세 신고를 위해 꼼꼼하게 행정작업을 해야 한다는 상상을 해보면, 상당히 큰 사회적비용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주식투자 인구 수는 약 800만명으로 추산된다. 800만명 중 상당수가 '선입선출'이 뭔지부터 공부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질 수도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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