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은 가벼워야지" 성능·가격 중심 노트북 시장에 반기
1.25kg→980g 만들기 위해 스티커도 떼고 그룹사와 협업
[편집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산업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에게는 분명한 위기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펼쳐진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업들은 어려울 때마다 기적을 일으켜왔습니다. 영토는 좁고 자원은 빈약한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가 되겠다는 기업들의 열정과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기회의 문 앞에 선 우리 기업들. 매주 일요일마다 기업들의 뼛속 깊이 새겨진 '1등 DNA' 사례를 연재하며 이들의 새로운 도약을 응원합니다.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기존 글로벌 제조사들은 무게가 1순위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 시장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라든지, 본인이 직접 휴대하는 사용씬이 많았기 때문에 무게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안지상 LG전자 마케팅팀 선임)
LG전자 소셜매거진 LiVE LG에 올 초 게시된 'LG그램(gram)'을 주제로 한 동영상 속 한 대목이다. 이 영상은 LG전자가 어떻게 시장의 대세를 벗어나 노트북 '무게'에 집중하게 됐는지 설명한다.
국내 PC시장은 글로벌 PC시장과는 그 특징이 판이하게 다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국의 레노버와 미국의 HP가 1·2위를 다투고 LG전자나 삼성전자와 같은 국내 PC제조사는 순위권 밖이다. 반면, 한국시장의 별명은 '외산 PC의 무덤'이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도합 60%에 달하는 것과 달리 글로벌 브랜드는 힘을 쓰지 못해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아예 가격이 저렴하거나, 비싸더라도 고기능인 노트북이 인기를 끈다. 하지만 '휴대성'을 가장 높은 가치로 둔다면 국내 PC제조사를 따라올 브랜드가 없다. 그중에서도 처음 휴대성이라는 수요를 발견해 브랜드화 시킨 주인공이 바로 LG전자다.
◆성능 낮은 '넷북'과 무거운 '노트북' 사이 새 시장 발굴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2014년 출시된 13형 그램의 광고 이미지 [자료=LG전자] 2021.09.16 nanana@newspim.com |
실제로 LG그램이 출시되기 전인 2010년대 초반 대학 캠퍼스에는 노트북이 무거워서 아예 사물함에 보관하다 필요할 때 꺼내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니면 '넷북'이라 불리는, 약 11인치 정도 크기에 무게는 900g 수준이지만 성능은 지금의 스마트폰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니노트북을 썼다.
당시 넷북의 성능은 정말 끔찍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번에 인터넷 창 여러 개를 띄울 수 없었던 것은 기본이고, 문서작업을 하다가 잠깐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려고 해도 인내심을 시험당했다. 배터리 용량은 더 참담해서, 충전기를 놓고 왔다면 그날 조별과제는 1시간 안에 끝내야 했다. 좀 쓸 만한 성능과 배터리 용량을 원한다면 어깨를 포기해야하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작업하고 싶다면 성능은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양극단의 선택지 사이에서 대학생과 회사원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2014년, LG전자에서 노트북 성능에 무게는 넷북 수준으로 낮춘 노트북 브랜드 '그램(gram)'을 선보였다. 당시 메인 모델이었던 13인치 그램의 무게는 980g이었다. 그램이 출시되기 전만 해도 노트북 중 가장 가벼운 제품의 무게가 1.25kg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LG전자 관계자는 "1kg의 벽을 깨는 것은 어느 한 부품의 무게를 확 줄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며 "수백가지 부품의 무게를 단 1g씩이라도 줄여야 목표무게인 980g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당시 LG전자는 노트북의 감량 목표를 맞추기 위해 팀 구성원들에게 전자저울을 지급해 일일이 부품의 무게를 재도록 했다.
◆스티커도 무겁다…레이저빔으로 정보 전달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올 초 LG전자는 1190g의 16인치 노트북인 'LG그램 16'으로 세계 기네스 협회로부터 '세계 최경량 16형 노트북' 인증을 받았다. LG그램 모델인 마마무가 기네스 인증을 알리는 모습 [사진=LG전자] 2021.09.16 nanana@newspim.com |
'가벼운 느낌'을 내기 위한 LG전자의 노력은 전방위적으로 이어졌다. 브랜드명 자체도 '그램'이라는 직관적인 단어를 골랐고, '블랙보다 화이트가 훨씬 가벼워 보인다'는 내부의견을 수용해 한동안 하얀색의 제품색상을 고수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쟁사의 노트북과는 달리 LG그램의 뒷면에는 모델명, 사양 등을 알리는 스티커가 없다. 대신 그램은 이 같은 내용을 레이저 빔으로 새겨넣었다. "스티커 무게 0.2g까지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그룹 차원의 협업도 눈에 띈다. 베젤(테두리)의 폭이 좁으면서도 디스플레이를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게 하기 위해 LG디스플레이와 머리를 맞댔고, 배터리 무게를 낮추면서도 배터리 지속시간을 늘리는 데는 LG화학이 힘을 보탰다.
그 결과 2014년 이후 매년 크기는 14인치, 15.6인치로 키우면서도 무게는 980g을 유지했고, 올해는 1190g의 16인치 노트북인 'LG그램 16'으로 세계 기네스 협회로부터 '세계 최경량 16형 노트북' 인증까지 받았다.
◆코로나19로 확장된 '가벼운 노트북' 수요
LG전자 그램 블랙 라벨 [제공=LG전자] |
한동안 정체돼 있던 PC시장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원격강의가 일상화되면서 반등했다. 정보기술(IT) 시장분석업체인 한국IDC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노트북 판매량은 21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65만대)보다 1.3배 늘어났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백신이 전세계적으로 보급되기 시작, 사람들이 점점 외출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노트북의 휴대성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 소비자전문지 컨슈머리포트가 지난 7월 실시한 크기별 노트북 평가에서는 LG그램이 14·15·16·17인치 부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초경량 노트북 시장에 대한 글로벌 PC제조사들의 도전도 거세지는 상황이다. 한국레노버는 올 초 탄소섬유 소재를 적용해 무게를 1kg 미만으로 줄인 제품을 출시하며 LG그램을 경쟁상대로 지목하기도 했다. HP코리아도 비슷한 시기 1kg 미만 노트북을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초경량 노트북 시장을 개척한 LG전자가 또 다른 전기(轉機)를 맞은 셈이다.
LG전자 역시 올해 투인원(2in1) 노트북 '그램 360' 라인업에 '옵시디안 블랙(14형)'과 '쿼츠 실버(16형)' 등 다양한 색상과 사이즈의 모델을 추가하는 등 초경량 노트북 시장의 선두주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자 노력 중이다.
김선형 LG전자 한국영업본부 HE마케팅담당은 "고객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코로나19 이후 성장하고 있는 노트북 시장에서 주도권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nanan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