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국, '신규 항공사 진출' 등 독과점 확보방안 요구
사업자 확보에도 합병 불허한 EU, 추가조치 가능성
공정위 "슬롯 조정 없이 시정조치 끝나지 않을 것"
국내 점유율 하락 불가피…대한항공, 규모 축소 우려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건부 합병'을 승인받으면서 통합 항공사 출범의 한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경쟁당국을 설득하는 작업은 더욱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역내 항공사 간 결합을 불허한 EU가 복병이다. 대한항공이 양사 합병에 따른 점유율을 낮출 방안을 직접 마련해야 해서다. 일각에서는 슬롯(특정 시간대에 공항을 이용할 권리)과 운수권을 반납하라는 공정위 방침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글로벌 경쟁당국의 합병심사 수위 대비 오히려 낮은 수준의 조치라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통합 항공사로 도약하기 위해 슬롯 반납이 불가피해진 대한항공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중국 등 7개국에 독과점 해소방안 제출해야…'시간 벌기' EU·영국·일본은 신고 미뤄
31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기업결합을 심사 중인 국가에 합병에 따른 독과점 해소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현재 양사의 합병을 들여다보고 있는 곳은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 EU, 중국, 일본, 영국, 싱가폴, 호주 등 7개국이다.
이들 국가 모두 기업결합을 신청하는 기업이 합병으로 발생하는 경쟁제한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가져오도록 요구하고 있다. 양사가 합병하면 해당 국가를 오가는 노선에서 독과점이 발생하는 국가들이다. 인천~뉴욕·LA·시애틀, 인천~바르셀로나, 인천~장자제, 인천~시드니, 부산~나고야 등이 대표적이다.
독과점 해소방안은 결합 항공사 외에 해당 노선에 진출할 다른 항공사를 확보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합병을 원하는 항공사가 경영 판단에 따라 취항 여부를 결정하는 다른 항공사를 설득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시장이 얼어붙은 현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항공이 EU, 영국, 일본에 아직 기업결합을 정식 신고조차 하지 않은 이유 역시 이런 어려움에 부딪힌 결과로 풀이된다. 상당수 국가는 기업결합 신고 시점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서까지 항공사가 이렇다 할 독과점 완화방안을 가져오지 못하면 불허 결정을 내린다.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신고 시점을 미루고 있다는 의미다.
어렵게 문제 노선에 진출할 항공사를 찾더라도 까다로운 심사가 기다리고 있다. 공정위는 특히 최근 EU의 항공사 기업결합 심사를 감안할 때 대한항공이 해당 경쟁당국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사실상 합병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스페인 1위 항공그룹인 IAG(International Airlines Group)가 최근 3위 항공사 에어유로파를 합병하겠다고 한 신고에 대해 EU는 불허 결정을 내렸다. IAG는 EU 방침에 따라 합병에 따른 시정 점유율을 낮출 수 있도록 신규 사업자 2곳을 확보했음에도 경쟁당국을 설득하지 못했다.
◆ '신규사업자' 확보한 스페인항공사 합병도 불허한 EU 험난…공정위 "구조적조치 미이행 가능성 없다"
글로벌 경쟁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고려하면 슬롯·운수권 반납 이행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공정위는 보고 있다. 공정위가 합병의 조건으로 내건 슬롯·운수권 반납은 해당 노선에 진출할 사업자가 나타나야만 이행이 가능하다. 일괄적으로 슬롯·운수권을 거둬들이면 공급이 축소해 소비자 피해로 귀결될 수 있어서다.
업계 등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슬롯·운수권 반납을 결정할 노선에 진출할 사업자가 없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는 해당 구조적 조치 기한을 5~10년으로 길게 잡았지만 해당 기간 동안에도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독과점 체제가 공고해지게 된다.
구조적 조치가 이행되기 전까지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부과되는 운임인상 제한, 공급 축소 금지, 서비스 축소 금지 등 행태적 조치 역시 기한이 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높은 점유율을 활용해 운임을 끌어올릴 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 양사 합병을 심사 중인 7개국 모두 기업결합 승인의 조건으로 신규 사업자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우리 경쟁당국이 내린 구조적 조치가 이행되지 않을 가능성은 없을 거라는 분석이다. 독과점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는 글로벌 경쟁당국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공정위가 문제삼은 노선보다 더 많은 노선에서 조치가 필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부가 내리는 시정조치는 일정 기한이 지나면 끝나게 돼 있지만 외국의 심사상황을 볼 때 슬롯·운수권 조정 없이 끝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공정위가) 문제삼은 곳과 각국의 판단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오히려 우리가 문제 없다고 한 노선에 대한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큰 만큼 이런 점을 감안해 우리 조치에도 반영하기 위한 절차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종도=뉴스핌] 정일구 기자 =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여객기들이 멈춰 서있다. 2020.04.22 mironj19@newspim.com |
◆ 상대국에서 운수권 받으면 외항사 진입 가능, 점유율 하락 불가피…대한항공 "공정위와 협의할 것"
다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독과점이 발생하는 노선에서 국내 점유율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양국의 협정으로 부여하는 운수권의 경우 우리나라가 소유한 운수권은 국내 항공사에만 부여할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갖고 있던 운수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운수권은 노선이 다니는 양국이 부여하고 있는 만큼 상대국에서 운수권을 받아 운항하면 문제가 없다. 국내 운수권을 외항사가 가져갈 수는 없지만 외항사는 자국에서 운수권을 받아 해당 노선을 확대할 수 있다. 항공 비자유화구역인 EU 등이 대표적이다.
운수권이 필요 없는 미국 등 항공 자유화구역에서는 항공사 국적에 관계 없이 부족한 슬롯을 반납받아 운항할 수 있다. 국내 항공사들이 운항할 여력이 없거나 외항사가 취항을 원하는 노선은 해외로 점유율이 넘어간다는 의미다.
슬롯 점유율을 근거로 독과점 우려가 적다고 판단했던 대한항공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인천공항 기준 양사의 여객 슬롯 점유율이 약 40% 후반대로 50%가 안돼 문제가 없다고 강조해왔다. 조건부 승인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왔다. 반면 공정위는 노선별로 시장을 판단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외국 경쟁당국도 과거 항공결합에서 해당 기준을 채택했다"며 "하나의 원칙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양사 통합을 계기로 글로벌 7위 항공사로 거듭나고자 했던 대한항공은 난감한 분위기다. EU 등 주요 경쟁당국의 심사를 넘어서기 위해 슬롯·운수권 반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합병 시너지를 기대했던 대한항공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역시 "이제 대한항공의 시간"이라며 공을 넘겼다. 슬롯·운수권 반납 없는 합병을 전제로 구조조정 가능성도 배제했지만 통합 이후 현재 양사 규모 대비 항공기를 포함한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어서 직원들의 불안도 커질 전망이다.
공정위는 이르면 내년 1월 말 양사 합병건을 전원회의서 심의할 예정이다. 해외 심사 등을 고려할 때 추가 심의 가능성이 높다. 연내 합병절차 마무리가 사실상 어려워지자 대한항공은 31일로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지분 취득 날짜를 내년 3월 말로 미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심사보고서를 송달 받으면 구체적인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정리해 공정위와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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