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에 EU 59조, 미국 62조 규모
한국 '반도체특별법' 투자 대신 규제 완화
"향후 다른 반도체 기업과 격차 벌어질 것"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반도체 기업에 대한 대대적 지원책을 꺼내드는 등 반도체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위한 특단의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해외와 달리 국내 반도체 관련 법안은 사실상 누더기법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업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430억유로(한화 약 58조9000억원) 이상의 공공·민간 투자를 동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내놨다. 오는 2030년까지 유럽에서 반도체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는 목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 2라인 전경 [제공=삼성전자] |
이를 위해 EU 집행위원회는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에 대응하고 미국과 아시아 중심의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는 'EU 반도체칩법'을 제안했다. 이 법은 현재 9%에 불과한 유럽 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최대 20%까지 끌어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보다 한 발 빨리 움직인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예산은 60조원을 넘어선다. 미 상원은 지난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 520억달러(62조2000억원)를 투자하는 '미국혁신경쟁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비슷한 법안(미국 경쟁법안)을 추진 중인 하원과 조율을 거쳐 올해 1분기 중 최종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지원에 힘입어 파운드리 시장 1위인 TSMC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인텔 등이 미국 내 공급망 투자에 나선 상황이다.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200억달러(한화 약 24조원)를 들여 2개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2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 등이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총력을 기울고 있으나 정작 국내에서는 눈에 띄는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 업계 안팎에서는 불만이 제기된다.
정부는 일명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국내 반도체 기업을 지원할 방침이지만, 이 법안은 직접적인 투자가 아닌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과는 전략 방향성부터 다른 셈이다.
더욱이 법안 초안이 마련될 당시 반도체 업계가 요구했던 핵심 사항들마저 대거 제외되면서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반도체 인재 확보를 위해 관련학과의 정원을 늘려 앞으로 10년간 1500명 이상을 추가 배출하는 하려던 것이 수도권 대학 집중화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는 빠졌다. 당장 반도체 업계의 인재 수요와 공급 미스매치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반도체연구개발 인력에 대해 주52시간 근로제 적용 면제 ▲화학물질 등록기준 완화 ▲공장부지 규제 완화 ▲시설투자비용 최대 50% 세액 공제 등의 요구도 모두 반영되지 않았다.
반도체 업계 특성상 투자 또는 정책효과가 눈에 보이기까지는 최소 3년 이상이 소요되는데, 이처럼 정부의 지원 대책이 지지부진한 탓에 당장 3년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도체 공급 불안 현상이 시작됐고 이에 맞춰 미국과 유럽이 막대한 부양책을 쏟아내는 등 공급망 재편에 나선 상황"이라며 "당장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각개격파로 활로를 모색 중이지만 이후에는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기업들과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