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신용 첫 1800조 돌파
현 금융사이클 글로벌 금융위기 이상
전문가, 부채 규모‧속도 공통적 우려
[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우리 국민의 가계빚이 역대 최대치로 치솟으면서 금융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의 규모가 커지는 속도보다 빚이 더 빠르게 늘면서 금융시장이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보다 더 취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1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해 동안 134조1000억원이 늘어난 액수다. 잔액 기준으로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많았고, 증가폭은 이전의 최대 기록인 2016년 139조4000억원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여기에 최근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금융과 실물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우리나라의 빚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발표한 '최근 우리나라 금융 사이클의 상황·특징 평가'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금융사이클은 2018년 이후부터 제7순환 확장국면에 진입했으며, 코로나19 이후 빠른 상승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금융사이클 심도(진폭)을 가늠하는 실질신용갭률이 코로나19 이후 단기간 내 빠르게 확대되면서 일부 산출방식에 따라서는 지난해 3분기 말 5.1%로 신용카드 사태(2002년 4분기 3.4%)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4분기 4.9%)를 상회했다.
또한 금융사이클 심도 변화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비교해본 결과 두 사이클 간의 괴리가 커지며 금융불균형 위험이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금융사이클과 실물사이클의 동조화 지수를 분석한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진 비슷한 흐름을 나타내다가 팬데믹 이후 0.69에서 0.49로 크게 하락했다. 통상 수치가 0.6을 웃돌 경우 지표가 동조관계에 있다고 판단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정연 한은 금융안정국 관리총괄담당 팀장은 "민간신용의 총량이나 증가율이 과거 위기보다 높다고 해서 당장 위기라는 것은 아니다"며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 상황에서 대내외 충격이 가해지면 위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취약성을 줄일 수 있는 정책과 금융 사이클 모니터링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금융당국에 따르면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조기 시행되고, 제2금융권의 DSR 기준이 더 엄격해진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총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할 경우 DSR이 적용되고 내년 7월부터는 총대출액 1억원 초과로 DSR 규제가 확대되며 DSR 산정 때 카드론도 포함된다. 2021.10.26 mironj19@newspim.com |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부채 규모와 속도에 대해 공통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당장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차이를 드러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위기가 생길 수 있는 확률적인 면에서는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당장 금융위기가 된다는 것에서는 알기 어렵다"면서 "문제는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냐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 피해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유예 조치는 이번에 필요했다고 본다"며 "유예에 대한 대책은 차기 정부가 대안을 내놔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는 극단적인 상황이고 기업부채, 국가채무 등 모든 주체가 빚더미에 있어서 금융위기가 언제 터진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며 "금리는 올리고 있는데 시중 통화량은 역대 최고치다. 빚을 진 사람이 자기조정을 하지 않고 머물러 있고 정책이 그 상황을 뒷받침 해준다면 빚도 없는 엉뚱한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중기‧소상공인 대출 유예 관련해 양 교수는 "유예 1년이 지나면 유동성 위기로 봐야 한다"며 "금리인상 전에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일부 구조조정을 해나가는 등 연착륙 방안을 제시했는데 선거 때문에 연장을 해줬다. 이미 이 부분은 실기를 했고, 결국 문 정부가 차기 정부에 빚더미를 그대로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착륙 방안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지정학적 위기, 글로벌 긴축 기조, 부동산 정체 국면 진입, 해외 인플레이션 등 사이클 상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이 됐다"며 "결국은 펀더멘털이 받쳐주냐의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수출 등 거시적인 측면은 괜찮지만 부채 부문이 굉장히 약해 언제라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내외 거시적인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어느 한쪽의 트리거(방아쇠)가 발생하면 금융위기로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