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양섭 기자 = "다시 개스피에 손대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가치투자'를 추구하는 한 주식 커뮤니티에서 반토막 난 계좌를 손절하고 시장을 떠난다는 한 개미(개인 투자자)의 불만섞인 한탄이 터져나왔다. 커뮤니티 회원들의 위로와 동조를 어느정도 바라고 글을 올렸겠지만, 반응들은 냉담했다. '잘가라'는 식의 말이 대다수다. 속으로 "바닥에서 나오는 인간지표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주식시장의 투자 난도가 1년 전과 비교해 월등히 높아졌다.
가장 쉬웠던 구간은 2020년 4월부터 작년 6월까지다. 쉬지 않고 오른 구간이다. 1600대에서 3300까지, 1년 2개월 만에 2배 올랐다. '코로나 수혜주'였던 종목들은 5배, 6배 정도는 쉽게 올랐다.어느 구간에 들어가든지 손실보고 나오기가 쉽지 않은 구간이었다. 코로나19로 시장이 폭락한 이후 처음으로 주식을 접한 투자자들도 아주 쉽게 수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시장이 준 수익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일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많이 하는 얘기는 "망할 회사가 아니면, 안팔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정말 버티면 되는걸까. 초우량 성장주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화장품 기업 L사를 보자. 작년 7월만 하더라도 170만원대였던 주가가 80만원대까지 하락했다. 불과 8개월 만이다.
조선업이 호황이었던 2007년에 조선사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국내 조선사들은 글로벌 톱티어(Top-tier, 일류)급들이다. 회사는 망하지 않았지만 주가는 대부분 1/10 토막이 난 상황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닷컴 버블때 기술주를 투자했었다면 어땠을까. 2000년 1월 찍었던 코스닥 지수의 고점은 2925다. 거의 20년 만에 찾아온 작년 코스닥 지수의 고점이 1062였으니 당시 얼마나 큰 버블이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투자기간을 길게 잡을수록 수익구간에 도달할 확률은 높아지지만, '장기 보유'가 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주식시장은 누구나 수익을 보던, 그런 시기는 완전히 끝났다. 난도가 높아지면서 이제 주식시장은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장이 된 것이다.
"물이 빠지면 누가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된다"
유동성 파티가 끝난 뒤의 시장 상황을 워렌버핏은 이렇게 표현했다.
최근 만나본 주식투자의 고수들은 시장이 급락하는 가운데서도 대부분 무덤덤했다. 물론 이미 벌어놓은 많은 자산이 있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들이 강조하는 공통점은 있다.
공통점은 '본인의 매수 근거가 흔들리면 판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익 여부와 상관이 없다. 손실 구간이라면 '손절(평가손실 구간에서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파는것)'을 의미한다. 투자 실패의 원인은 본인이 아닌 다른곳에서 찾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조언이기도 하다.
그 중 한명은 "최악은 시장이 안좋을 때 주식을 던지고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식으로 시장을 떠나면 더 떨어진 저점에서도, 아니면 반등한 초입에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게 될것"이라고 했다.
앞서 거론한 개미의 사례처럼 시장 탓을 하거나 제도 탓을 하면서 손실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 이들이 최근 많아졌다. 한국 시장을 떠나 미국 주식만 한다는 이들도 있다. 이건 '시장을 아예 떠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고수와 하수 구분을 떠나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시장의 제도 측면의 성숙도가 한국보다는 미국이 훨씬 높고, 지정학적 리스크나 외환 리스크 등의 안정성을 봐도 미국이 더 우수하다. 투자기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투자환경이 유리하다.
'개스피'란 코스피 시장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여러가지 공정의 룰을 벗어난 제도들이 버티고 있는 시장을 비꼰 말이기도 하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횡령 사건, 알짜 사업을 물적분할해 상장시키는 행위, 상장 직후 스톡옵션 먹튀,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접근성 차이 등이다.
이 외에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공통점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이다. '공정한 룰'을 세워야 한다는 상식으로 접근하면 대부분 일맥상통하는 것들이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투자자들은 더 합리적인 시장을 찾아 한국시장을 떠날지도 모른다. 대선 공약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이제 차기 정부에서 공약들을 실천해 가면서 '공정의 룰'을 견고하게 세워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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