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문란 논란…대통령 결재 전 발표 관행 문제
공식 결재 전 경찰·행안부 등 사전 협의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치안감 인사 정정 문제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경찰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이전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경찰 인사 발표 과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불호령을 내린 것이다.
경찰은 행정안전부(행안부)의 경찰 통제 논란과 관련해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했지만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24일 경찰에 따르면 치안감 인사는 경찰청과 행안부, 대통령실 간 협의를 거쳐 인사안이 마련된다. 경찰공무원법상 총경 이상 경찰은 경찰청장이 추천하고 행안부 장관이 제청,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하도록 돼 있다.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경찰 인사는 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경찰청장) 등이다.
◆ 경찰·행안부·대통령실 사전 협의…최종안 나오면 공식 결재 절차 밟아
경찰과 행안부 설명을 종합하면 경찰청장 추천, 행안부 장관 제청, 대통령 재가라는 공식적인 인사 절차를 밟기 전에 사전 협의를 한다. 대통령에게 최종본을 올리기 전까지 경찰과 행안부, 대통령실이 협의하는 것이다. 경찰이 희망하는 인사안을 올리고 행안부, 대통령실 의견을 반영해 이를 수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사진 제공=대통령실] |
최종안이 나오면 경찰은 행안부로부터 인사안을 받아 공식적으로 결재 기안을 만들어 경찰청장 추천안을 올린다. 행안부 장관이 이를 제청하고 대통령이 재가한다.
이번 논란의 경우 경찰은 지난 21일 오후 7시 10분쯤 치안감 보직 인사안을 내부망에 올렸고 언론에 발표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 이후 행안부에서 보도되는 인사안은 최종안이 아니라며 정정했다. 경찰은 약 2시간 뒤인 오후 9시 30분쯤 치안감 보직 인사 28명 중 7명이 바뀐 정정안을 발표했다.
이 과정을 보면 행안부에서 경찰로 인사 최종안이 넘어오는 과정에서 소위 배달 사고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최종안이) 바뀐 게 아니다"라며 "그 전 버전, 최종안이 아닌 버전을 (행안부에서) 보내줬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이번 사안은 중간 검토 단계 인사자료가 외부에 미리 공지돼 발생한 혼선"이라고 설명했다.
◆ 대통령 재가는 오후 10시…결재 전 발표 관행 논란
치안감 인사 정정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말하며 논란이 더 커졌다. 대통령이 결재하지 않은 인사안을 경찰이 발표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았고 행안부가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밖으로 유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상민 장관은 지난 22일 "경찰이 희한하게 대통령 결재 나기 전 자체적으로 먼저 공지해서 이 사달이 났다"며 "대통령은 (21일 오후) 10시에 딱 한 번 결재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 사전 면담으로 '경찰 길들이기' 논란에 휩싸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오후 김창룡 경찰청장과의 면담을 위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도착해 김 청장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2022.06.09 yooksa@newspim.com |
경찰은 그동안 인사 관례는 내정으로 먼저 발표하고 사후 대통령 결재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행안부 등과 협의했고 행안부로부터 최종안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낸 치안감 바로 위 계급인 치안정감 승진·보직 인사도 이번 치안감 인사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결재 전 내정 단계로 발표됐다.
경찰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간부 인사를 행안부와 대통령실 사전 협의 없이 경찰이 냈겠냐"며 "그동안에는 문제가 안 됐는데 이번에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 행안부 '경찰 통제' 논란 대응 흔들
윤 대통령이 경찰에 이번 논란에 책임이 있다고 질책하자 경찰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경찰은 행안부 자문기구인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 경찰 통제를 담은 권고안을 발표하자 전문가와 시민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려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번 인사 논란으로 '국기문란' 경찰을 행안부가 통제해야 한다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됐다. 이에 따라 행안부가 추진하는 경찰 통제 논란과 관련한 대응도 흔들리고 있다. 임기가 약 한 달 남은 김창룡 경찰청장 사퇴론도 대두되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행안부 경찰 통제 얘기는 사라지고 치안감 인사만 부각되고 있다"며 답답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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