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 대한전선·안진회계법인 상대 57억원 손배소 제기
주식거래 범위와 손해 범위에 대한 판단시점 구분한 대법 최초 사례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분식회계로 허위 작성된 사업보고서를 보고 대한전선 주식을 취득했다가 손해를 본 주주들에 대한 배상금 책정 과정에서 원심의 손해 인과관계 판단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분식회계로 인한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주식거래의 범위와 손해의 범위에 대해 그 판단 시점을 일치시키지 않고 구분해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개인투자자들이 대한전선 주식회사와 안진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부분을 모두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원고들은 대한전선이 분식회계를 통해 허위의 내용을 담은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를 제출·공시한 것을 믿고 대한전선 주식을 대거 취득했다가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57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한 대한전선의 분식회계가 가능했던 것은 안진회계법인의 부실감사 때문이었다며 안진회계법인도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1심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회사는 3분기 보고서 당시 잔존하던 채권 2147억원 상당액을 대손충당금으로 설정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이 사건 분식회계를 모두 해소했다고 볼 수 없고 나아가 피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 회사가 사업보고서에 재무정보를 거짓 기재하여 분식회계 사실을 숨겨왔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주식거래 정지 이후 피고회사는 무상감자를 실시했기 때문에 거래가 재개된 당일 피고 회사의 주가는 6000원에서 3790원으로 폭락했고, 이후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다가 저점에 이른 후 반등한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 회사의 감자 전 기준 주가 479원을 정상주가로 봄이 타당하다"며 무상감자 실시 후 주가가 하락한 부분은 분식회계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회계감사는 피감사회사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하기 때문에 이 사건과 같이 피감사회사가 일부 조작된 자료를 제출할 경우 분식회계 등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대한전선의 손해배상책임은 60%, 안진회계법인의 손해배상책임은 30%로 각각 제한하는 것이 손해분담의 공평에 타당하다"며 원고들에게 각 인용금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심 재판부는 "일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에는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의 기재가 있으나 59기 3분기 보고서와 사업보고서 이후에는 거짓 기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주식거래에서 기업의 재무상태는 주가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고 기업의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는 기업의 재무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라며 "투자자로서는 대상 기업의 사업보고서와 이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정당하게 작성돼 공표된 것으로 믿고 주가가 그에 바탕을 두고 형성됐으리라는 생각 하에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피고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된다고 봤다.
다만 "59기 3분기 보고서가 중요사항에 대한 거짓 기재 없이 공시된 이상 해당 보고서를 반영한 주가가 형성된 이후 주가변동으로 인한 손해는 이 사건 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거짓 기재한 것과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해당 기간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59기 3분기 보고서에 거짓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증권선물위원회·한국거래소의 피고 회사에 대한 분식회계 적발 발표 및 주식거래 정지 등 조치를 통해 분식회계 사실이 공표되지 않은 상황 하에서는 곧바로 피고 회사의 전반적 신뢰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이 사건 주식가격에 온전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해당 보고서가 공시된 2013년 11월 14일부터 원심에서 정상주가가 형성됐다고 판단한 2013년 11월 20일까지 이 사건 주식의 종가는 주당 약 340원 가량 상승했다"며 "이 사건 주식가격의 변동 추이에 비춰보면 피고 회사가 이 사건 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과소 계상한 사실까지 모두 반영됐다거나 분식회계로 말미암아 부양된 부분이 모두 제거된 정상주가라는 점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부연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자본시장법상 손해액 추정을 깰 정도로 정상주가라는 점이 증명된 것인지 면밀히 살펴보았어야 함에도 피고 회사의 59기 3분기 보고서 공시에 거짓 기재가 없다는 사정만을 중시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자본시장법이 정한 손해의 인과관계 및 정상주가 형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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