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홍우리 기자 = 12일 중국 증시서 반도체 섹터가 급등했다. 정측전자그룹(精測電子·300567)이 11% 이상 급등한 것 외에 상하이브라이트파워세미컨덕터(晶豐明源·688368), 심천명미전자과기(明微電子·688699) 등 다수 종목이 상승했다. 앞서 2거래일 연속 큰 폭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을 증폭시켰던 가운데 '급반전'을 실현한 것이다.
국경절 연휴 뒤 10일 개장한 중국 증시에서 반도체 섹터는 우울한 흐름을 보였다. 5% 넘게 하락하면서 최대 낙폭을 기록한 업종이 됐다. 상하이종합지수가 오랜만에 상승 마감한 11일에도 반도체 섹터는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지수 상승폭을 제한했다.
중국 증시 이달 첫 2거래일 반도체 섹터에 영향을 준 것은 미국발 악재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중국 반도체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한 것이 직격탄이 됐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미국 기업이 특정 수준 이상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판매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출 통제조치를 발표헸다.
[사진=바이두(百度)] |
구체적으로는 ▲18nm(나도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D램 ▲128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14nm 이하 로직칩 등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미국 업체가 기술이나 부품, 제조 장비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결국 미국 기업의 중국 기업에 대한 관련 기술 및 장비 수출이 사실상 봉쇄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유행 기간 급증했던 가전제품 수요가 급격히 둔화하면서 '코로나 특수'가 사라진 점,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가중 속 IT 기업들이 반도체 주문을 취소하거나 재고를 줄이고 있는 점도 섹터 전망을 어둡게 했다. 업계 기업 실적이 악화하게 되면 주가 또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인 마이크론이 시장 예상에 못 미친 2022회계연도 4분기(6~8월) 실적을 발표하면서 7일 미국 증시 반도체 관련주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 "반도체 반등 시점 멀지 않았다"
다만 중국 내부에서는 A주 반도체 섹터의 반등 시점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미 큰 폭의 조정을 받은 만큼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린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중국 금융정보제공업체 초이스(Choice) 자료에 따르면 이달 10일까지 최근 1개월 간 칩·반도체 테마의 상장지수펀드(ETF)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A주에서 거래 중인 8개 반도체 관련 ETF 좌수가 34억 6500만 좌 증가한 가운데 2개 펀드의 좌수는 10억 좌 이상 증가했다.
홍콩 증시를 통해 중국 본토의 상하이·선전 증시에 투자하는 북향자금(北向資金)도 상당 부분 반도체 섹터로 흘러들어갔다. 9월 이후 반도체 섹터로 유입된 북향자금이 23억 5900만 위안(약 4688억 7484만 원)에 달했고, 특히 13개 종목에는 1억 위안 이상의 북향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원타이과기(聞泰科技·600745), 항주SILAN전자(士蘭微·600460), 가흔사달반도체(斯達半導·603290), 조역창신(兆易創新·603986), 몬타지테크놀로지(瀾起科技·688008) 등이 대표적이다.
탄탄한 실적 역시 주가 반등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취안스바오에 따르면 '중국판 나스닥' 커촹반(科創板)에 상장 중인 70여 개 반도체 테마주들은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 매출과 순익 면에서 플러스 성장을 나타냈다. 이들 70여 개 상장사들의 상반기 매출 총액과 순익 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4%, 23%씩 증가한 782억 위안, 152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한편 외부에서는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강화가 중국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미국의 이같은 조치가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더욱 자극할 것이란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중 간 기술 경쟁이 격화하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제외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이 단기적으로는 중국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결국 이것이 '국산 반도체로의 대체' 속도를 높임으로써 중국의 반도체 자립 실현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란 논리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 조치를 발표할 때마다 중국 증시에서는 '국산 반도체 테마주'들이 오름세를 연출하곤 했었다.
화샤(華夏)펀드 자오쭝팅(趙宗庭) 반도체 ETF 펀드매니저는 "반도체 섹터의 장기 투자 기회는 여전히 '국산화'에 있다"며 이러한 논리가 최근 더욱 힘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7일 나온 미 상무부의 최신 조치와 관련, "미국이 중국 첨단기술기업을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것은 오랜 수법으로 제제효과가 점차 약화하고 있다"며 "향후 반도체 업계 결쟁이 더욱 백열화함에 따라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제제 수위가 더욱 높아질 수 있지만 그만큼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자체 공급망 구축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신(安信)증권 마량(馬良) 애널리스트 역시 '국산 대체'를 반도체 섹터의 장기 투자 키워드로 꼽았다. 그는 "부품 부족 등으로 해외 설비 업체들의 제품 납품 주기가 늘어나고 있고 미국이 또 한 번 반도체 장비 수출 문턱을 높인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 설비의 국산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hongwoori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