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장기CP 발행, "대기업 CP쏠림→중소社 CP 소외"
문제는 '투심'...'돈맥경화' 장기화되면 수출기업 타격
[서울=뉴스핌] 김지나 이지민 기자 = 레고랜드발(發) 자금시장 경색이 심화된 가운데 5대 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올 상반기 현금과 단기 차입금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돈맥경화(돈이 회전하는 속도가 떨어지는 현상)'에 몸살을 앓고 있는 자금시장에서 대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이다.
◆유동성 확보 나선 5대그룹...SK 주요계열사 단기차입 3배↑
15일 뉴스핌이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5대그룹 주요계열사(그룹별 매출 상위 3개 계열사)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집계한 결과, 총 15개 계열사의 상반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3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현대차그룹이었다. 현대차그룹 주요계열사(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53% 늘었고, 이어 SK그룹(SK·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는 46%, 삼성(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 26%, 롯데그룹(롯데케미칼·롯데쇼핑·롯데지주) 8.8%, LG(LG전자·LG화학·LG디스플레이) 3.7% 순으로 늘었다.
1년 내에 갚아야 하는 채무인 단기차입금 역시 3개 기업을 제외하고 12개 기업 모두가 늘었다. 단기차입금 증가가 가장 눈에 띄는 곳은 SK그룹이었다. SK의 단기 차입금은 6조3492억원에서 15조912억원으로 1년만에 차입규모가 138% 늘었고, SK이노베이션은 7371억원에서 5조4098억원으로 634%, SK하이닉스는 1470억원에서 9034억원으로 515% 증가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SK그룹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예전부터 있었던 얘기"라며 "SK 입장에선 SK온에 대한 투자가 계속 필요한 상황인데, IPO 시장이 좋지 않아 상장이 쉽지 않고, 다행인 점은 최근 1조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SK온은 작년 10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 분할해 설립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법인이고, 현재 SK이노베이션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 CP 발행 불러온 자금경색...중소기업 CP발행에 불똥
대기업들이 현금을 비축하고 있는 이유는 불안한 자금시장 상황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미리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요즘 기업들 사이에선 내년까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서 "갑자기 자금이 필요한데 돈줄이 막히면 안되니, 어려운 시기에 재무건전성을 우선하기 보단 유동성을 확보하는데 방점을 찍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근 ㈜SK가 장기 기업어음(CP)을 발행한 것 역시 그 일환이다. 통상 신용등급이 높은 대기업들은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수혈하는데, 최근 레고랜드발로 자금시장이 경색돼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자 ㈜SK는 처음으로 장기 CP를 통해 자금을 수혈했다. 그리고 ㈜SK 장기CP는 완판됐다.
조성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 팀장은 "대기업 입장에선 시장에 유동성이 줄고 있어 회사채를 발행했다 안 되면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만 가중돼 차라리 그 리스크를 안기 보단 CP쪽으로 선회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다"면서 "기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자금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CP쪽으로 대기업들이 이동하는 것은 일종의 풍선 효과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기업의 CP 발행이 많아질 경우, 중소·중견기업의 CP 발행이 어려워져 자금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CP 물량이 많아 공급 과잉이 되다 보니 CP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이라며 "CP를 발행할 때 금리가 높지 않으면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투자자 입장에선 굳이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중소·중견기업 CP를 살 이유가 없으니 이들 기업의 CP가 시장에서 소외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돈맥경화' 장기화? 수출기업 타격多
현재로선 자금경색 상황이 대기업 재무건전성에 큰 타격을 주고 있지 않은 모습이지만, 만약 이 상황이 장기간으로 이어질 경우 대기업들 타격 역시 불가피하다. 특히 우려되는 곳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은 "우리나라 대기업은 수출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현재 미국 경제 성장률이 1%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중국 경제 성장도 둔화되고 있다"면서 "내년 수출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수출기업에 대한 자금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수입액이 수출액을 크게 웃돌며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67억달러 적자를 내 7개월째 적자를 이어갔다. 이는 지난 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긴 적자 기간이다.
조성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 팀장은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돌아야 될 곳에 돈이 안돌면 기업들이 어려워질수밖에 없다"면서 "현금이 부족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곳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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