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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⑨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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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어찌보면 모두들 지쳤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많은 희생자들의 장례를 참석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아름다움을 새삼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일까. 피비린내 나는 아일랜드 분쟁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노선이 바라는 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것이란 판단을 내리게 됐다. 한 쪽에서는 무력 항쟁을 통한 나라의 통일을, 다른 한 쪽에서는 무력 진압을 통한 치안과 평화의 유지를 꿈꿨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느릿느릿하지만 그 벡터가 평화와 이해와 관용으로 지향되는 아일랜드 국민이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자신의 주장들을 포기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 때가 1990년대 초반이다.

목헌 트리니티대 교수

그리고 세계 여기 저기서 어쩌면 작은 발걸음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나 모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중요한 활동들이 벌어진다.

첫째는 폭탄 테러 및 북아일랜드의 국가 기관 전복을 위한 돈 줄을 끊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가장 큰 옹호 집단이자 결정적인 자금 지원을 해 주었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당시 4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도 200여년 전인 1776년에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사실에 그들이 너무도 감동해서 그런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아일랜드 디아스포라는 IRA의 재정적 지원이 곧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아일랜드의 민족 통일로 직결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는 아일랜드에게 지원을 주는 동포 단체들이 여럿 있는데 이 중 북아일랜드 구제 위원회인 노레이드(NORAID, Irish Northern Aid Committee)는 그들의 모금액 중의 대부분을 IRA (엄격히 말하면 당시의 명칭은 임시 IRA, Provisional IRA)에게 주어졌다. 노레이드는 심지어 미국 마피아 조직 범죄단의 도움으로 무기를 구입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밀수하기까지 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의 제재로 직접 밀수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리비아를 독재 통치하면서 반 외세를 표방하던 카다피의 도움을 받아 무기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90년대 부터 평화 프로세스가 강조됨에 따라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노레이드에 대한 지원은 끊어지기 시작한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의 기여가 컸다.

[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글싣는 순서

1. '감자농사' 빈국서 1인당 명목GDP 세계 2위로
2. 대기근으로 인구 3분의 1 잃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잘사는 비결
3. 더블린 산책과 함께 하는 역사 기행
4. 영국의 강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독립 투쟁
5. 아일랜드 글로벌 최저 법인세의 두 얼굴
6. 아일랜드의 세계 최고 기업들…기네스맥주에서 의료기기까지
7. 아일랜드 교육의 백미...중고생에 숨통 트여준 전환학년제
8.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上)
9.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下)
10. 한·아일랜드의 디아스포라와 재외동포 역량
11. 골칫덩이 국가에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위기극복 DNA 채워진 아일랜드 (끝)

급진노선 IRA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단이 주효 

둘째는 IRA 소속의 정치계파인 신 페인 (Sinn Fein)이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전폭적인 측면 지원이 있었다. IRA의 주류는 무력으로 영국의 통치를 거꾸러뜨리고 아일랜드 섬의 통일을 염원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점차 비록 그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계파가 생겨 IRA에서는 그들의 일부 활동을 허락하여 준다.

특히 이 새로운 노선을 강하게 피력한 IRA의 제리 아담스 (Gerry Adams)의 신선함에 많은 IRA 사람들이 호응을 하였으나 여전히 주류로 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던 상황에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많은 정부 관료들이 아담스를 음으로 양으로 격려를 주게 된다. 테러 조직으로 정의되어 미국내에서 그 활동이 금지된 IRA임에도 불구하고 제리 아담스에게는 특별히 미국 입국 비자를 허용하고 미국의 주요 정치 인사들을 만나도록 도와주며, 아이리쉬계 미국인들을 통하여 신 페인의 정치 자금 모금을 가능하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IRA 내부에서도 그의 위상이 높아지게 되고, IRA 주류들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게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협상에도 필수적으로 선결될 IRA의 테러 활동 종식을 1994년으로 앞당기게 되었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정부와 의회, 그리고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여 이의 필요성을 꾸준히 피력했던 아일랜드 정부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북아일랜드에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족주의 이상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회 민주 노동당 (SDLP, Social Democratic and Lbour Party) 이 있었는데 그들의 뛰어난 지도자 죤 휴움(John Hume) 덕분에 평화적인 프로세스를 위한 행보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점이다.

1998년 오마(Omagh) 시의 폭탄테러. [사진=목헌 교수 제공]

셋째는 아일랜드 공화국도 북아일랜드의 이슈를 함께 풀어주는 주체 중의 하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영국 정부는 IRA가 감행하는 갖가지 테러 활동을 북아일랜드 내부의 치안 문제로 간주하였으며, 미국이나 서방 세계가 이에 대하여 의견을 표현하면 이를 내정 간섭이라 여기며 비난을 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정보국에서도 IRA의 완벽한 진압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여기에 미국이 그 동안 북아일랜드에서의 인권 유린을 강력하게 비난하여 1985년에 영국-아일랜드 협정 (Anglo-Irish Agreement)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영국과 미국의 기여가 컸다.

넷째, 양 진영의 준군사조직(paramilitary organization)의 무장 해제를 가능하도록 하였다. 살상용 무기를 가까이 둔 상황에서 진정된 평화 프로세스의 추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이치였다. 그러나 이를 공식적으로 투명하게 그리고 형평성 있게 해체를 할 수 있는 기구도 전례도 없었다. 그러나 1995년 미국의 상원의원 죠지 미첼 (George Mitchell)을 위원장으로, 핀란드의 전임 총리 하리 홀케리 (Harri Holkerri), 그리고 캐나다의 전임 군 최고 사령관인 죤 드샤스틀레인 (John deChastelain)과 함꼐 구성된 무장 해제 위원회가 (예정보다 수 년 지연이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가능케 하였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영국·아일랜드 정부 당국이 큰 기여를 하였다.  

다섯째, 경제적인 협력을 통하여 삶의 질을 높여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1992년 미국 경제의 불황을 타개하겠다고 공약하여 선출된 클린턴 대통령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약속을 하게 된다. 즉,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아이리쉬 계통의 미국인 보다 좋은 예가 없으며 만약 평화를 되찾도록 온 민족이 노력을 하면 미국의 큰 투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 뿐만 아니라 EU 도 큰 기여를 했으니 미국은 아일랜드 국제기금(The International Fund for Ireland) 을 통하여 25여년에 걸쳐 9억 달러의 지원을 하고, EU 도 북아일랜드 평화와 화해를 위한 프로그램(Programme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in Northern Ireland) 을 통하여 20여년에 걸쳐 약 13억 유로를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실로 많은 나라의 수 많은 사람의 노력을 배경으로 드디어 1996년 6월 10일에 미국 상원의원 죠지 미첼을 의장으로 다자협의체가 구성되었으며, 미첼의 어록처럼 '700 여 번의 실망'을 모든 참여자들이 경험 하였다. 이 기간 중에 IRA 내의 소수 분파가 테러 활동을 재개하여 연방주의 준군사조직들이 이내 보복을 할 것으로 염려가 되었으나 다행하게도 자제를 하였고, 연방주의를 표방하는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연방당 (UUP, Ulster Unionist Party)은 당수 데이비드 트림블 (David Trimble)의 용감한 리더쉽이 아니었다면 언제라도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아일랜드 정부의 대 양보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헌법 틀은 1937년 제헌 때부터 존재해왔던 것으로 아일랜드 국가 영토에 (북아일랜드 영토를 포함하여) 아일랜드 섬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방주의자들의 북아일랜드 영토의 주권에 대한 염려를 십분 고려하여 아일랜드 헌법의 개정을 전격적으로 용인한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의 개정안은 아일랜드의 영토를 정의했던 기존의 제2조와 달리, 개정된 제2조는 아일랜드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였으며 개정된 제3조는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양 국가의 국민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에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진행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 체결을 위하여 자국 헌법의 가장 기조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새삼 묻게 된다. 그리고 이 헌법 개정안이야 말로 그간 700여일 서로를 부둥켜안고 머리 터지도록 대화에 임한 다자간 협의체의 진정성을 상징한다고 하여야 될 것이다. 또 이 협정의 성공 요인은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 주고 양보하는 정신(winning-by-giving-up)을 실천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평화 여정의 소중한 결실이 된 벨파스트 협정

이 눈물나고 감동적인 노력은 1998년 4월 10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협정 또는 성금요일 협정 (Belfast Agreement or Good Friday Agreement)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협정은 크게 세 가지의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와 정부의 구조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관계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과의 관계가 포함됐다. 새로 설립되는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는 권력 공동 책임제(power-sharing)를 기본 원칙으로 하여, 연방주의 대표와 민족주의 대표가 (의석 수에 비례하여) 북아일랜드 정부의 수상(First Minister) 또는 부수상(Deputy First Minister)을 맡도록 했다. 또한 모든 업무에 있어서 합의를 원칙으로 나라를 꾸려가도록 하였다.

1998년 4월 10일 벨파스트 협정에 서명하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버티 에이헌 아일랜드 총리. [사진=목헌 교수 제공]

항상 편파적으로 연방주의자들만을 위한다고 민족주의자들의 의심을 받아왔던 얼스터 왕립 경찰 (RUC, Royal Ulster Constabulary)은 완벽하게 새로이 개편하여 북아일랜드 경찰청(PSNI, Police Service of Northern Ireland)으로 개명되었다. 아울러 무장 해제를 완성하도록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IRA·UVF 등의 준군사조직 소속으로 실형을 살고 있었던 재소자들의 석방이 이루어졌다.

이토록 어렵게 살얼음을 걷듯 다자간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담은 벨파스트-성금요일 협정에는 한 가지 남은 숙제가 있었다. 이의 채택을 국민 투표로 결정할 필요가 있었고, 협정 체결 약 한 달 후인 1998년 5월 22일에 선거가 이뤄졌다. 예측이 가능한 부정적인 미래를 선택할지 또는 예측 불허의 잠재적으로 밝은 미래를 선택할지를 가르는 순간이었다. 이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까 아니면 자식의 앞날을 고려할까를 다루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었고 또한 용감한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결과는 채택을 압도적으로 선택하는 쪽으로 나왔다. 북아일랜드에서의 국민 투표에서는 81%의 투표율에 71.12%의 찬성을 받았으며, 아일랜드 공화국에서의 헌법 개정 투표에서는 56%의 투표에 94%의 찬성을 받았다. 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한 민족의 800년 역사의 숙명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결정을 아일랜드 백성들은 해냈던 것이다.  

협정의 세부 내용 중에는 그 실행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조항도 있었다. 또 IRA가 협정에 참여한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 '참 IRA(Real IRA)' 라는 분파가 1998년 8월 오마(Omagh)시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29명이 목숨을 잃는 대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하고도 놀라운 사실은 이 모두에 대한 반응이 일체의 극단적인 행동 없이 최대의 자제를 모두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민주적인 절차로 기획한 민족의 대 청사진에 공동 책임을 지겠다는 답을 전 세계에 알려준 것이다.  

이 협정이 체결된지 25주년이 되는 올해 짚어보야 할 대목도 있다.

우선 슬픈 사실이지만, 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희생이 너무도 컸다는 점이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경우 생명을 잃은 사람이 3532명, 부상을 입은 자들이 4만명 이상이었다. 통계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IRA 등 민족주의 진영에 의하여 목슴을 잃은 사람이 전체의 59%, 연방주의 진영에 의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이 29%, 영국군 또는 얼스터 경찰에 의하여 목슴을 잃은 자들이 10%였다. 다시 말해 약 90%의 희생이 공권력이 아닌 양 진영의 군사 조직 테러에 의하여 자행됐다.

둘째는 민중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시민의 권익을 개인의 권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 또는 단체가 참으로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저 당시의 세태와 상황과 감정이 북받치는 대로, 올곧게 서 있지 못하고 비참한 소용돌이 속에 모두가 함께 휘말려 있었던 긴 30년 기간의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공화국, 그리고 영국이었다.

앞서 16세기에는 종교의 차이를 명분으로 핍박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으나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계속하면서 20세기에 까지 종교를 잣대로 구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잘못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종교 제도권이 희생적인 사랑으로 계속되는 불의를 끊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본다. 

셋째는  흔히 북아일랜드의 분쟁을 우리나라의 남북 관계와 비교하는 신문 기사나 논문을 보게 된다. 하지만 유사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확연하게 다른 점들을 형평성 있게 다루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상대방도 그에 못지 않게 원 상태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에 공통적으로 의사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었다. 즉 폭력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3500 여명의 희생자들 중 90%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지 않고 합헌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성금요일 협정 당시의 다자간 대화 때에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테이블에 나온 사회민주노동당(SDLP) 와 얼스터 연방당 (UUP)이 있었으며 이들의 지도자인 죤 휴움과 데이비드 트림블은 1998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 받았다. 

너무도 많은 희생이란 대가를 치룬 북아일랜드의 소용돌이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함께 중지를 모아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지혜롭게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목헌 교수는 = 아일랜드에 2006년에 정착한 후 현재까지 트리니티 대학교 (Trinity College Dublin)의 생화학⋅면역학부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단백질 3차 구조 연구 및 항암제 개발을 수행하고, 신약 개발 회사인 해믈리트 파마 (HAMLET Pharma, 스웨덴)의 기술 고문을 맡고 있다. 또, EU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40여개국의 산업 기술 개발을 위하여 설립한 공동 연구개발 R&D네트워크인 유레카 (Eureka)의 전문 심사 위원, ICMRBS 의 이사 등을 지내고 있다. 목 교수는 서울 대학교 약학 계열 1학년 과정을 이수한 후 도미, 버클리 대학교 (UC Berkeley) 에서 학사, 퍼듀 대학교에서 (Purdue University) 박사, CJ제일제당 종합 연구소 선임 연구원, 그리고 영국 외무성 치브닝 Chevening 장학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교 (University of Oxford)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그 실천을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 하는 아름다운 분들을 벗삼으며, 더블린 한글 학교 발기위원장 그리고 아일랜드 한인회장을 역임하고, 수행하는 연구와 더불어 아일랜드에서의 재외 한국인의 위상 제고 및 그늘진 곳에 살며 탄식하는 아일랜드 인의 구제 활동에 몸과 마음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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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웨스팅하우스 지분투자 추진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설희 인턴기자= 정부가 미국 내 대형 원전 건설과 미국 원전 원천기술 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를 대미 전략투자 후속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국내 원전 상장사의 실제 사업 참여 범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율과 신규 원전 노형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시장에서는 지분 투자 자체보다 국내 업체가 설계와 설계·조달·시공(EPC), 주기기와 보조기기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사업권을 확보하는지가 향후 수주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 지분보다 사업권…韓 역할 명문화 관건 23일 산업통상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후속 대미 투자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은 미국 측과 5~10% 수준에서 협상 중이다. 미국 신규 원전 8기 가운데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와 한국이 개발한 APR1400 2기로 구성하는 방안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AI 일러스트=설희 기자] 증권가에서는 지분율 자체보다 향후 미국 원전 사업에서 국내 기업이 실제로 확보할 사업 범위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AP1000 사업에서는 과거 공급 이력과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존 협력관계가 신규 수주로 이어지는지가 상장사별 실적을 가를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업별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AP1000 핵심 주기기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에이치아이도 원전 보조기기(BOP) 공급 이력을 갖고 있다. 현대건설은 웨스팅하우스와 설계·조달·시공(EPC)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향후 미국 원전 사업 구체화 과정에서 실제 수주로 연결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2027년이 원전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구간"이라고 평가했다. 장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의 공급망 금융지원과 한국의 대미 원전 투자 구체화가 맞물리면서 미국 원전 관련 프로젝트의 진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두산에너빌리티, 美 AP1000 주기기 공급…추가 물량 기대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AP1000 공급망에서 직접적인 납품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를 공급한 경험이 있어 신규 미국 원전 사업에서도 기존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추가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태형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전력의 웨스팅하우스 인수 시 AP1000 사업에서도 원자로용기(RV)·증기발생기(SG) 외 추가 공급 범위(Scope) 발주를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미투자 자금 집행에 따라 공기 단축 위해 동사가 생산하는 장납기 품목에 대해 선발주를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본사 전경.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는 제작기간이 긴 핵심 주기기다. 미래에셋증권은 대미 원전 투자 과정에서 기존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뿐 아니라 추가 기자재까지 두산에너빌리티의 공급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도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지원으로 장납기 기자재 발주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봤다. 정 연구원은 "지난 6월 DOE가 발표한 장납기 기자재 조달 대출 프로그램에 따라 최종투자결정(FID) 이전 주요 기자재 발주가 가능해졌다"며 "AP1000 핵심 장납기 기자재 공급업체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가 당겨지면서 원전 기자재 생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특히 KB증권은 향후 가장 먼저 나올 대형원전 기자재 발주 대상으로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전력사업자가 구성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의 장납기 기자재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미국 신규 원전 사업이 구체화될 경우 두산에너빌리티가 다른 원전 밸류체인 업체보다 먼저 수주를 가시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현대건설, 웨스팅과 EPC 협력…美 사업 확대 기대 현대건설은 기자재가 아닌 EPC 분야에서 웨스팅하우스와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2년 웨스팅하우스와 AP1000 글로벌 사업 공동 참여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고 향후 프로젝트별 계약을 통해 EPC 분야 우선 참여 협상권을 확보했다. 이후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은 실제 해외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4년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설계계약을 시작으로 슬로베니아 원전 타당성조사, 핀란드 원전 사전업무착수 계약에 참여했으며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의 프로젝트 매터도어에서는 기본설계(FEED)를 수행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공동으로 글로벌 확대 추진 중인 대형원전 AP1000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파트너십을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진출 경쟁력으로 평가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웨스팅하우스 노형의 경우 벡텔과 함께 핵심 건설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원전 영역에서 실질적 수주와 착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 지원, 웨스팅하우스와 잠재적 파트너들과의 의향서(LOI), 그리고 한국의 대미투자 가능성 등을 감안 시 미국 내 원전 프로젝트가 조만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프로젝트 참여 가시성도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김도엽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형원전은 팀코리아 및 웨스팅하우스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며 "불가리아 AP1000 대형원전은 하반기 중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ESC) 2차 계약 체결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 BHI, 美 AP1000 복수기 공급…BOP 수주 주목 비에이치아이도 미국 AP1000 공급 실적을 갖고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발전용 설비를 설계·제작하는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주력 제품인 배열회수보일러(HRSG)와 함께 원자력발전 보조기기(BOP)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는 복수기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 원전 BOP는 아직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리딩투자증권이 제시한 올해 2분기 기준 매출 구성은 HRSG가 65%로 가장 높고 보일러 22%, BOP 5%, 기타 8% 순이다. 미국 신규 원전 발주가 본격화될 경우 현재 비중이 낮은 BOP 사업이 추가 성장 축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비에이치아이 로고. [사진=비에이치아이] 한제윤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에이치아이의 수주 흐름과 관련해 "연간 신규 수주는 올해도 1조원을 상회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올해 상반기 HRSG 신규 수주는 약 5000억원이며, 하반기에도 약 4000억원 이상의 프로젝트가 수주 대기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한 연구원은 미국 텍사스에서 추진되는 대미 투자 1호 가스복합화력발전 사업과 관련해서도 비에이치아이의 직접적인 수혜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HRSG 8~10기 발주를 가정할 경우 잠재 수주 규모를 약 4000억~5000억원으로 추정했으며 과거 미국 칼파인(Calpine)에 HRSG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는 점도 수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제시했다. 조재원 키움증권 연구원도 대미 투자에 따른 미국 사업 확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조 연구원은 "미국 시장 진입이 현실화될 경우, 추가적인 멀티플 확장을 기대한다"며 비에이치아이가 미국 사업에 진입할 경우 기존 국내와 아시아 중심의 사업 지역을 북미로 확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winter1004@newspim.com 2026-09-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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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은, 女공기권총 10m 금메달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사격의 에이스 추가은(임실군청)이 눈부신 총성을 울리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일곱 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한국 사격이 거둔 첫 번째 금메달이다. 세계랭킹 23위 추가은은 일본 도요타시 아이치 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여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246.3점을 쏴 셴이야오(중국)를 무려 5.0점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추가은은 고니시 유카리가 2017년 세운 결선 아시아 기록(245.3점)과 팔락(인도)이 항저우 대회에서 세운 아시안게임 기록(242.1점)을 모두 갈아치우는 기력을 발휘했다. 조라나 아루노비치가 세운 세계기록(246.9점)에도 불과 0.6점 모자란 엄청난 기록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앞서 열린 본선에서도 추가은의 활약은 빛났다. 추가은은 582점(엑스텐 19개)을 기록해 종전 아시안게임 본선 기록을 1점 경신하며 전체 1위로 결선에 올랐다. 김보미(부산시청), 오예진(IBK기업은행)과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도 1,730점을 합작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이 종목 단체전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은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다만 김보미와 오예진은 각각 574점(엑스텐 22개, 20개)으로 10위와 12위를 기록해 8위까지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아쉽게 놓쳤다. 두 선수 모두 8위와 1점 차에 불과해 아쉬움을 삼켰다. 홀로 결선 무대에 선 추가은은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결선 첫 번째 스테이지 첫 발을 10.1점으로 기분 좋게 출발한 그는 네 발을 모두 10점대 언저리에 맞추며 51.8점으로 단숨에 선두에 올랐다. 두 번째 시리즈 초반 주춤하기도 했으나 10.3점으로 마무리하며 청연칭, 셴이야오, 장란신 등을 제치고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본격적으로 한 명씩 탈락하는 엘리미네이션 스테이지에 접어들면서 추가은의 독주가 시작됐다. 10.1점과 10.7점을 연달아 꽂아 넣은 뒤,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10.8점과 10.7점에 적중하며 143.9점을 기록해 2위 셴이야오와의 격차를 벌렸다. 세 번째 시리즈가 끝난 뒤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다른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하는 사이 추가은은 더욱 달아났다. 셴이야오에 4.1점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마지막 시리즈에서도 10.6점과 9.8점에 적중하며 완벽하게 우승을 확정 지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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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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