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 |
노사관계의 대전환, 4차산업시대의 노조, 기업, 정부의 역할
말뫼의 눈물 뒤에 숨은 진짜 말뫼의 얼굴
말뫼의 눈물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크레인이 한국으로 떠나기 위해 해체된 해는 2002년이다. 1999년 말뫼를 방문했을 때 크레인은 주인을 찾지 못해 외롭게 혼자 서 있었다. 조선소 도크에 남아 있는 기름 때, 철판조각, 그리고 쓰레기들만 바닷바람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에는 코펜하겐과 연결되는 다리를 짓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말뫼의 눈물은 한국적 시각에서 스웨덴을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말뫼는 사실 회심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한국으로 떠난 크레인이 있던 자리는 지금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 되었다. 옛 조선소 자리에 신도시가 세워졌다. 해양대학과 말뫼대학 등 2개의 대학과 바이오제약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메디콘벨리가 들어섰고, 친환경 주거시설, 그리고 문화와 휴식이 있는 최고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내가 한국 참가자들과 말뫼시를 방문했을 때 정치인들은 크레인이 노동력을 중심으로 한 산업의 마지막 상징이라고 했다.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글싣는 순서
1. 글을 시작하며
2. 영국, 미국 그리고 스웨덴 3국의 숨겨진 비밀
3. 노조가 존중받는 사회, 스웨덴 노조의 대변신
4.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5. 만연했던 부패 어떻게 청산했나, 스웨덴 해법의 블랙박스
6. 특권을 걷어낸 정치, 국가경쟁력
7.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8.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9. 정당 내 계파가 없는 이유
10. 성차별이 없는 사회
11.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12.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13. 지방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
14. 서로의 선을 지키는 사람들
15.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16. 4차산업시대 노사관계의 대전환
17. 새로운 정치패러다임, K-Politics 전제조건
18. 우리 사회의 대전환, 두 개의 관문
19. 국민 의식의 대전환, 긍정 인자를 깨우자
20.글을 맺으며, 대한민국 패러다임 전환 (끝)
스웨덴은 조선소 대신 새로운 신산업을 꿈 꿨다. 바이오산업, 관광, 휴식, 문화, 친환경 아파트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 그리고 대학이 어우러지는 현대적 도시로 탄생시켰다. 말뫼에서 코펜하겐까지 연결되는 외레순드 다리(Öresundsbron)는 1995년 착공되어 2000년에 완공되었다. 코펜하겐에서 사는 사람들을 끌어 들여 국제적 도시로 거듭났고 스웨덴에서 가장 생활수준이 높은 친환경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말뫼의 눈물은 사실 왜곡된 것이고 말뫼는 뒤에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말뫼시의 정치인들은 다 계획이 있었던 셈이다. 자기 돈 한 푼 안들이고 해체해 치워줬으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단 돈 1크로네, 백 원에 넘겼지만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노사합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코쿰스 조선소가 선박 주문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자 과감하게 칼스크로나 조선소에 매각을 결정했다. 노사가 함께 합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코쿰스 조선소가 합병된다고 했을 때 노동자 시위나 파업은 없었다. 노사합의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고 코쿰스를 떠난 노동자들은 재취업교육과 업종전환을 위한 직업교육, 혹은 대학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 갈 수 있었다. 국가의 사회안전망 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퇴사 후 직업교육과 창업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국가차원에서는 실업급여를 1년 동안 지급하면서 코칭과 직업훈련 등의 활동지원, 대학 재교육을 택한 노동자들에게는 CSN을 통한 학업지원금을 제공해 주었다. 말뫼의 웃음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코쿰스 해고 노동자를 위한 기업의 재취업과 재교육 지원, 그리고 정부의 재고용 지원책과 사회안전망의 합작품이다.
노사 간의 평화적 관계는 국가의 핵심 경쟁력이다. 산업구조 개편은 기술의 발전, 국제경쟁력, 국제경제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신흥 경제도상국이 낮은 임금이라는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내 주력산업의 미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 노사 간의 공통의 인식과 협력은 성공을 위한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경쟁력이 없는 조선사들을 통폐합시키면서 마지막 단계에서는 국가가 인수해 국방산업 생산시설만 남기고 정리하는 수순을 밟았다. 군함과 잠수함 등 국방산업 부분은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생산시설을 스웨덴 기업 SAAB에게 생산권을 최종적으로 넘겨주었다.
이 산업재편 과정에서 고용 보호법(LAS, Lagen om anställningsskydd)의 LCFG(Last come, first go) 원칙에 따라 장기근속 노동자를 먼저 보호해 주었고, 최근 신규 채용자들은 재취업 교육 제공, 창업지원, 업종변경 대학교육 등의 정책수단으로 재취업이 가능하도록 기업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국가는 특별지원금을 투입해 노동자의 재취업을 적극 지원해 주었다.
[출처=게티이미지] |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부의 역할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 노사관계다. 너무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할수록 자생적 노사관계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웨덴에는 최저임금에 관한 법이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임금정책은 노사 간의 협의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너무 높게 요구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기업은 너무 낮게 책정해 노동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동인식이 맞아 떨어져 적정선에서 매년 합의를 이끌어 낸다. 이 정적선은 한꺼번에 수직 상승할 걱정이 없다. 노사 간의 합의에 맡겨 놓았기 때문이다. 노사문제는 노사 간에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성공적 모델이 바로 1938년 스웨덴의 살트쉐바덴 협약이다.
협약 체결 전까지 완전 적대적 관계였던 스웨덴의 평화적 노사관계 구축 경험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사가 협상하지 않으면 파업금지법과 직장폐쇄금지법을 제정해 노사의 힘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평화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판을 깔아 준 것이 정부였다. 또 다른 정부의 역할은 불법파업에는 법에 따라 엄정대처하고, 노조 활동 방해, 고용과 해고, 그리고 임금을 무기로 노동자에게 폐해를 끼칠 때는 법에 따라 기업을 제재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친노조 정권이나 친기업 정권 모두 건강한 노사문화를 위해서는 중립을 지켜 주는 것이 좋다.
살트쉐바덴 협약은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지 3년간의 노력 끝에 성사될 수 있었다. 고용, 노동환경, 임금에 관한 사안은 오로지 노사 간의 협의로 해결하고 상시 대화 체제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진 것이 주효했다. 상반기와 하반기 정례모임과 수시 임시 모임을 가동해 양자 간의 의견 차이를 줄여 나갔고, 이 전통은 1984년까지 유지되었다. 1960년대 철광석 금속노조의 파업 등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46년간 무난하게 노사 간 평화체제가 유지된 전례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자기금법 제정으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대화 채널은 1991년 기금법 폐지로 1997년부터 다시 복귀될 수 있었다. 이후 25년간 평화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이 노사평화 체제는 스웨덴의 복지모델과 함께 스웨덴 모델(The Swedish Model)의 핵심적 요소를 이룬다.
스웨덴 평화적 노사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전제조건이 존재한다. 사민당 정부가 노조에게 오로지 노동 문제만 가지고 협상에 임하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었다는 점이다. 노조의 정치화와 폭력화는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조건이었다. 친노조 노선인 사민당 정권은 이점을 분명히 했다. 사민당 내에서는 노동자의 교육이 노조의 능력배양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고, 사민당 주도로 노동자 교육을 위한 노동자 지도자 학교인 브룬스빅 직업고등학교(Brunsvik folkhögskola)를 1906년 설립했고, 이어 노동자교육협회(Arbetarnas bildningsförbund, ABF)도 1912년 설립해 노동자의 교육에 집중했다. 브룬스빅 학교의 교육을 잘 알고 있는 ABF 학교의 교육담당자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경제, 무역, 기업, 세계사 등을 모르면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되고 기업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강성노선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협상법을 알지 못하면 억지 논리만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과 타협, 그리고 레토릭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켰다고 한다. 1920년대부터 이때부터 의식개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투쟁 위주의 노동운동에서 협상과 대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전국노총 LO는 스스로 노동자의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과 국제연대를 통한 국제 공조를 통해 국가의 중요한 권력기관으로 부상하면서 사회적 책임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살트쉐바덴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기업들도 노조의 불인정과 고자세 일변도에서 노조의 인정과 협상이 장기적으로 서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사민당의 중간자적 노력에 답하기 위해 노조와의 대화에 나섰다. 이것이 좌파계열 정당들의 역할이다. 불법파업이나 폭력 점거, 파업 비참여자 활동방해, 산업현장 일자리 편취, 관행적 뒷돈 요구, 출근 도장만 찍고 퇴근 등은 좌파 정당들이 이들에게 페어플레이를 하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계열 정당들의 당대표, 의원들이 노조의 비리와 문제를 지적해 시정해야 한다고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 하나 없다. 하지만 진보계열 정치인들과 이야기 해 보면 한결같이 문제가 있거나 시정을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 표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친분관계와 배신프레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정당과 정부도 기업에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쓴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근무환경개선, 장애인 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에 버금가는 처우 등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 우파 정부의 노사 간 중립적 모습이다. 또한 어떤 정부든 기업인의 일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기업 CEO를 모아 놓고 수시로 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고용대책을 요구하고, 해외순방에 함께 대동하고, 올림픽, 박람회, 월드컵 유치에 동원시키는 것은 자제해야 된다. 기업회장들이 각 스포츠 단체장을 역임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모든 기업을 동원해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무리다. 미국(트럼프는 제외),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스웨덴에서 기업회장들을 모아 놓고 경제진작 회의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기업인들을 단체로 만나는 대통령을 볼 때마다 일을 잘한다는 생각보다 권위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비록 나만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필요하면 각 기업체를 방문해, 혹은 저녁시간에 따로 식사와 함께 만나는 것이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 올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다. 기업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이다. '기업인들 손을 보고 왔다'고 하는 정치인을 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기업인이 경영능력을 발휘해 이윤을 내고, 그 이윤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구개발을 통해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존경해 주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관리감독을 통해 적발되면 사법적 책임과 판단은 사법기관에 맡겨 놓으면 된다.
스웨덴에서 노조가 먼저 연대임금제를 주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2차 대전 때 독일에서 스웨덴으로 이주해 온 루돌프 마이드너(Rudolf Meidner)라는 걸출한 노조 수석 경제연구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국 노총회의에서 채택될 수 있을 정도로 노조대의원들의 의식개혁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당시 스웨덴 고소득 노조였던 금속노조가 대폭 양보해 저임금 노조의 임금인상을 위해 스스로 임금인상을 양보해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열린 인식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제안 자체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1950-60년대 빠른 경제성장의 열매는 노동자의 연대임금제가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것을 기업이 모를 리 없었다. 연대임금제를 통해 노동자간의 임금격차가 빠르게 줄어 들 수 있었고, 주력 수출 기업들의 산업경쟁력도 금속노조의 임금인상 양보로 빠르게 강화되었다. 전형적인 win-win 모델인 셈이다.
노사 패러다임의 전환
스웨덴 노동운동의 핵심적 메시지는 노동운동이 더 이상 좌파정치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으로 전환되는 순간, 순수 노동운동의 성격은 상실되고 정치적 행위가 된다. 파업은 순수하게 노동자의 권익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정치파업 자체가 불법이다.
이제 파업구호와 전투적 머리띠, 삭발식을 벗어 던지고, 일상적 모습으로 노사 간의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단체들이 스웨덴 노조를 방문해 토론하면서 받은 영감 그대로 한국에서 한번 멋지게 펼쳐 보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나라의 노조들도 국민적 지지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날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고용주들도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를 존경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임금을 매개로 한 계약의 주종 관계로 매출을 높여주는 기계부품이 아니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좋은 서비스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갖아야 한다. 직장을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역할은 고용주의 역할이다. 나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본다. 직업상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나이가 드니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화면의 작은 글씨를 읽는 것이 힘들어 교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학과장에게 이야기 했다. 위 아래로 높이가 조절되는 책상, 허리 통증에 효과가 있는 특수 의자, 그리고 28인치 모니터를 원한다고 했다. 학과장은 나의 사정을 다 들어 주더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며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우리 학과에 젊은 교수들, 그리고 신임 행정 직원들, 장애가 있는 직원, 출산 직전에 있는 직원들의 책상과 의자, 컴퓨터, 모니터 등을 우선 배정하다 보니 올해 예산이 고갈되었어요. 내후년에는 꼭 예산을 배정해서 교체해 드리도록 할게요." 학과장실을 나와 새로 입사한 행정직원의 열린 사무실을 지나가며 본다. 최신의 기능을 가진 의자와 높낮이 조절 책상, 32인치 커브드 모니터, 아주 작고 가벼운 랩탑, 활모양으로 휜 컴퓨터 자판으로 커피를 마시며 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노동환경법에 따라 고용주는 피고용자의 최적의 노동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의무다.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과 장애인, 그리고 여성, 특히 산모와 임산부에게 먼저 예산을 배정한다. 하지만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고용주들은 피고용자들이 하는 일에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생산성에도 좋고 회사에도 좋다. 스웨덴의 직장에서는 매년 직원만족도를 조사해 부족한 부분을 더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스파가 있는 고급 숙박시설에서 1박 2일 머물며 갖는 연말 회의에서 직원만족도 결과를 평가하고 또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직원이 행복해야 직장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 매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해보고 싶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작든 크든, 노동현장이든 사무실이든 이런 직장문화를 어디든 제공할 수 있다면 세계적 기업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직장에서는 노조도 머리띠 두르고, 삭발식을 치르고, 구호를 외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스웨덴에서 신임교수로 채용되었을 비정규직으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채용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인사팀 직원이 정규직 교수 평균 임금자료를 보여 주면서 정규직에 준하는 초임을 설정했고, 정규직 교수가 받는 여름휴가 33일(나이별로 책정되지만 최소 29일을 받는다. 주말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5주에서 7주가 1년 유급 휴가기간이 된다), 정규직에게 주어지는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 제공(봉급의 20%로 자유 연구, 융통적 사용 가능)이 주어진다고 했다. 정규직과 차이가 없는 임금과 휴가 적용, 그리고 자기 계발 인센티브 등이 적용되었다. 아플 때도 정규직과 똑 같이 병가급여가 지급되었다. 3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을 때 근무 연수 증가에 따라 봉급이 조금 더 오른 것 빼고는 비정규직과 차이가 없었다. 스웨덴의 모든 직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이 불가능한 것은 노사 간의 협약에 준하기 때문이다. 이 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간제노동자(Part-time workers)의 임금적용, 직원복지와 사회복지 적용에 있어 차이가 없으니 정규직과 비정규간의 미묘한 갈등이나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한국의 노사 대전환을 위하여
이제 변해야 할 때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경영하기 좋은 나라 뿐 아니라 모든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노동환경, 직원의 복지를 챙겨주는 노동자의 복지를 위한 노사중립적 자세를 취할 것을 권한다. 노조는 노동문제에만 국한한 노조활동을 할 것을 국민 앞에 천명하고, 연대임금제를 실천할 것을 선언해 중장기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 직종 노조 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 그리고 임금협상도 스웨덴 노사의 협상방식처럼, 물가상승률, 매출, 연구투자, 국제적 환경 등을 고려한 타협안 제시를 통한 평화적 협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변화지 않으면 국민적 대저항과 쇠퇴 밖에 퇴로가 없다. 새로운 MZ세대의 노조가 설립되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동자를 파트너로 진심으로 대하고 사원들의 근무환경을 피고용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에게 성과급을 더 주는 것은 자유시장 기업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노동환경을 신입사원, 장애인, 임산부들 우선으로 챙겨주고, 노동조건과 환경을 팀워크와 화합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너지 효과가 분명 나타난다. 구조 조정시 재취업을 완벽하게 책임져 줄 수는 없지만 스웨덴의 예에서 보듯 해고 후 1년간 재취업 교육, 창업기금 보조 등으로 해고 후에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부는 4차산업혁명의 도래로 산업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양산업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을 퍼붓지 말고, 신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노동유연성이 가능하게 하려면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실업기금, 재취업교육지원, 창업교육지원, 필요할 경우 2년제 전문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종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개인 코칭을 통한 직업매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유연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스웨덴에서 구조조정 시 노조의 반발이나 노동자의 시위가 없는 이유는 꼼꼼한 사회안전망과 기업과 연계한 재취업 프로그램이 탄탄해 다른 직종이나 직장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 폐지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스웨덴 기업이 높은 복지기여와 세금에도 불구하고 높은 기업경쟁력과 스웨덴 시장에서 남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배경은 기업들의 경영권 보장과 기업환경이 세계에서 최고로 잘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적용하고 있는 의결권을 가진 주식과 비의결권 주식으로 구분해 창업주들이 공격적 해외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제도도 검토해 볼 만 하다.
노조가 사회적으로 존중 받고,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기업들이 많아 나와 줄 때 국민들은 살 맛이 난다. 사양 산업이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 노사협약에 따라 평화적으로 산업재편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도 거듭나야 한다. 새로운 발상과 체제전환이 요구된다. 모두가 바뀌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서로에게 미루지 말고 함께 무릎을 맞대고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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