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채색화가 오용길 '봄의 기운'등 청작화랑서 전시
맑은 채색과 정돈된 필치로 대상을 유려하게 표현
"유명한 명승지 보다 조촐한 둘레길에 더 끌려"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맑은 채색과 정돈된 필치로 대상을 유려하게 표현해온 화가 오용길(76)이 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화신을 전한다. 오 화백은 맑고 화사한 수묵풍경화 25점으로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대표 손성례)에서 작품전을 개막했다.
[서울 뉴스핌] 신작 '봄의 기운-전망대 가는 길' 앞에서 포즈를 취한 화가 오용길.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9 art29@newspim.com |
오는 5월10일까지 계속되는 개인전에 오용길은 노란 유채꽃이 화폭을 가득 덮은 작품에서부터 청보리밭이 넘실대는 봄 풍경, 그리고 짙은 녹음의 한여름 풍경까지 다양한 수묵풍경화를 출품했다. 또 주홍빛 홍시들이 빼곡히 매달린 가을풍경도 내걸었다.
그러나 역시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단아하면서도 경쾌하게 담아낸 벚꽃 그림들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눈부시도록 하얗거나, 매혹적인 연분홍빛의 벚꽃을 뽀얀 화선지 위에 탐스럽게 표현한 '봄의 기운' 시리즈에 더욱 눈길이 간다. 때 이르게 만개했다가, 한순간에 떨어져버린 벚꽃이 화폭 속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니 끌릴 수 밖에 없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오용길 '봄의 기운'. 2023. 화선지에 먹과 채색. 46x53cm. [이미지 제공= 청작화랑] 2023.04.29 |
오용길 화백은 팬이 많은 작가다. 그의 산수유 그림과 유채꽃 풍경은 미술애호가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한국화 전시가 요즘들어 뜸해지고 있지만 오용길만은 예외다. 언제나 부지런히 사생을 다니고, 그 감흥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성실히 이어간다.
근래들어 작가는 빼어난 명승 보다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곳들을 즐겨 그린다. 안동의 병산서원과 청암정, 예천의 도정서원 같은 유적지도 그리지만 요즘은 너무나 잘 알려진 누각 보다는 서원 주변의 소박한 민가에 더 끌리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며 뒷산 둘레길이나 천변 같은 편안한 곳, 조촐한 곳에 마음이 더 간다고 작가는 귀뜸했다.
오용길 수묵풍경의 특징은 한국화이면서도 고루하지 않다는 점이다. 동양화 전통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작업하나 서양화 감각도 적극 받아들이려 한다. 담묵으로 바탕을 만든 뒤 수채화 물감으로 점을 찍으며 인상파적 요소를 도입하는 등 수묵화에 서양회화의 요소를 끌어들여 융합을 꾀한다.
오용길은 "수묵화는 부드럽게 스며들면서, 푸근하게 받아주는 것이 매력이죠. 그런데 유화에서 오는 강렬하고 톡톡 튀는 '현대적 맛'도 매력이 있거든요. 그래서 수채화 물감으로 그 맛을 더하면 그림에 좀더 살아 움직입니다"라고 했다. 고여있는 물처럼 전통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동시대 감성과 호흡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다 보니 '오용길의 수묵채색은 세련되어서 현대 공간에도 잘 어울린다'는 평이 나온다.
[서울 뉴스핌] 오용길 '4월-yellow' 2022. 화선지에 먹과 채색, 52x126cm [이미지 제공=청작화랑] 2023.04.29 |
오용길은 27세이던 1973년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선미술상, 월전미술상을 휩쓸며 유명작가가 된 그는 전통 산수화를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수십 번, 수백 번 끈질기게 '붓 놀림'을 이어가며 오랜 시간 성실하고, 진득하게 공을 들이는 과정만은 여전하다.
섬세한 필치로 대상을 객관화하던 오용길의 화면은 최근들어 단순화되고 있다. 보다 자유로와지고 있는 셈이다. 미술평론가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는 "이전 작업들이 화면 바깥에서 그가 포착하고 표현한 자연의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었다면, 근작들은 보는 이들을 스스로 참여케 하여 보는 이에게 스스로 그 속에서 거닐며 감상하고 해석할 여지를 주고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