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 뉴스핌] 김범주 기자 =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의 힘겨루기가 결국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기초학력 보장 지원 조례의 적절성을 둔 기관간 충돌이 표면적 이유이지만, 학생이 아닌 정치적 신념이 바탕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이런 갈등은 지난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예견된 수순이었다. 앞서 2018년 6·13 지방선거와는 다르게 정권이 바뀐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서울 시의원의 3분의 2가량이 국민의힘 측에서 당선되면서 정치 지형에 지각변동이 있었다. 반면 진보진영의 상징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서울에서 유일하게 3선에 성공한 교육감이 됐다.
김범주 사회부 차장 |
지난해 8월 서울시교육청 2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는 갈등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추경안에는 코로나19 학교 방역 인건비, 무상급식 식품비 인상부,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학교운영비 등 학교 운영에 시급한 비용이 대거 포함됐다.
이에 대한 시의회의 의견은 달랐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이 처음 조성한 2조 7000억원 규모의 기금의 적절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기초학력 추가 해소방안 마련, 노후 교육환경에 대한 재정투자 확대, BTL 조기상환 계획 마련 등이 당시 요구 사항이었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이 수정안을 내면서 시의회에 추경안을 제출한 지 49일 만에 수정안이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학교 시설 정비 예산은 늘리고, 전자칠판 도입 등 디지털교육을 위한 예산은 깎는 수준에서 합의를 봤다. 기금전출금은 절반 이상 깍였다.
2023년 본예산과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도 가까스로 시의회 문턱을 넘었다. 본예산 심의 과정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역점사업이었던 '디벗' 사업 예산, 전자칠판 보급 사업, 혁신교육지구 사업 예산, 학교기본운영비가 모두 삭감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서울시의회 결정은 인공지능(AI) 교과서, 디지털교육 확대 등 현 정부의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결국 올해 본예산은 애초 계획보다 5600여억원이 줄었고, 1차 추경은 3500여억윈으로 확정됐다. 뒤늦게 정부의 디지털 교육 방향을 인식했는지 전자칠판 등 디지털 환경 구축을 위한 예산이 추경에서 가까스로 복구됐다.
법정 다툼을 예고한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 공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의회의 조례는 진단 결과 공개 등으로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기여한 학교 등에 포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의 모든 학교가 포상을 받기 위해 진단 결과를 앞다퉈 공개하고, 학교를 줄세워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것이 숨은 의도일까. 기초학력에 대한 보장은 필요하지만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는 사교육비에 초등학교 사교육비 증가율이 가장 높다는 것을 숙고하고 내린 결정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은 의회라는 정치성과 교육감의 전문성이 갈등을 빚으며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교육 자치를 실현하고 있는 미국도 교육청의 결정에 대해서는 의회가 인정하고, 이를 존중한다고 한다. 시도를 대표하는 역할도 의회의 몫이겠지만, 전문적 판단에 대한 존중도 필요한 것 아니겠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교육 지원을 위한 예산, 학력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지원 등 교육에 대한 논의와 고민 없이 '비즈니스적' 접근만 있었다는 의심도 든다. 기관간 '권한' 다툼이야 대법원에서 결판나겠지만, 향후 관계를 조정하는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강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탓에 관계없는 약한 사람만 피해를 입을 때 우리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을 쓴다. 두 기관의 권한 다툼에 애먼 학생들의 등이 터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wideope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