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유명무실' 집시법 10조 개정 추진
집회·시위의 자유 위축 우려
전문가 "시간 외에도 장소·소음 규모 등 규정 필요"
[서울=뉴스핌] 박우진 기자 = 최근 경찰이 노동자들의 야간집회를 강제해산하면서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야간집회를 제재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야간집회 시간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논의되면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반면 집회와 시위로 인해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만큼 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집회, 시위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당정 중심 야간집회 제한 움직임...경찰, 시위 강제해산에 나서기도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야간집회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찰 역시 최근 야간집회에 대해 강제해산에 나서는 등 강경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달 24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야간 집회와 시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발의한 집회 시위를 제한하는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법안에는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2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집시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집시법 10조를 개정한 것으로 현행법에는 옥외집회와 시위 금지 시간을 해가 뜨기 전과 해가 진 후로 모호하게 규정한 것을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로 명확히 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노동·민생·민주·평화 파괴 윤석열 정권퇴진! 민주노총 총력투쟁대회가 열리고 있다. 2023.05.31 mironj19@newspim.com |
경찰은 지난 9일 오후 6시 30분부터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진행한 야간 문화제를 미신고 집회로 보고 강제해산했다.
문화제를 주최한 공동투쟁은 문화제를 강제로 해산시킨 것에 대해 문제 삼았다. 경찰은 이에 대해 집시법과 판례를 근거로 집회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집시법 1조를 보면 2인 이상 집단 의사표시하면 집회라고 규정하는데 의사표시 방법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는 법에 없다"면서 "플랭카드 게재하거나 정치적 구호 제창하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 '헌법불합치' 이후 유명무실한 집시법 10조...야간집회 논란 이어져
야간집회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는 것은 현재 관련법 조항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로 놓여져 있고 조항 자체 기준이 모호한 데 원인이 있다.
야간집회에 관한 규정은 집시법 10조에 명시돼 있다. 해당 조항에서는 해가 뜨기 전과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관할경찰서장에 미리 신고하고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지키는 경우에는 야간 집회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야간집회 금지 시간이 해가 뜨기 전과 진 후로 모호하게 정해진 데다 시간대를 지나치게 넓게 정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2009년과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양회동 열사 염원 실현, 윤석열 정권 퇴진'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2023.05.17 mironj19@newspim.com |
헌법재판소는 2009년 집시법 10조 조항에서 해가 뜨기 전이나 진 후 옥외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관들은 "헌법이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다"는 취지로 다수가 위헌 의견을 냈으나 6인 이상의 찬성이 나오지 않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날 경우 관련법 개정이 이뤄져야 했으나 국회에서 이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법률의 효력은 사라진 상태다.
이후 헌재는 2014년 같은 조항에서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야간의 일상적인 시간대인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과잉이라는 판단이었다.
야간집회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데에는 헌재 결정 이후 관련법 개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결정은 이전 규정이 과도하게 야간집회를 제한하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고 헌법불합치였던 만큼 새로운 입법이 필요했으나 시한을 넘겨 공백 상태가 되버렸다"면서 "이후 논의가 대부분 시간 제한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시간 외에도 다른 요소들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문가 "시민 불편 최소화하는 선에서 제한 필요"
전문가들은 야간집회를 전면 금지하거나 시간 제한에 초점을 두는 데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집회와 시위로 인해 시민들의 자유와 안전, 기본권이 침해되거나 불편을 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장소나 방법 등에서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 교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며 다른 기본권과 충돌시에는 제한할 수 있다"면서 "공공 질서를 지키면서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어느 선까지 야간집회를 허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간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헌재 결정과도 어긋나는 면이 있다"면서도 "현재 집시법은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되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구체적인 방법 등에 제한을 두는 방향으로 집시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야간집회 규제 논의가 집회 시간에만 집중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간 외에도 집회 장소나 소음 허용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시간을 정하는 방식의 규제는 적절치 않고 집회 상황과 장소, 점유 공간 규모, 소음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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