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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차이나] <13>이사갈 수 없는 이웃, 한중간 반가운 봄비 기대 , 변용섭 코트라 청두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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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1994년 톈진(天津)에서 어학연수 하던 학창시절이다. 인천과 톈진을 오가는 항공과 선박이 한중간의 유일한 교통편이었던 그 시절, 그리고 베이징도 아닌 약간 시골스럽기까지 한 톈진에서의 1년 유학생 생활은 이후 나의 캐리어와 중국을 배경으로한 인연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때 톈진 사범대 교정에서 많은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배웠던 중국어는 지금까지 나의 직장 생활과 중국 생활을 영위하는 큰 밑천이 되고 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하지만 감수성이 풍요로웠던 시절 배우는 언어는 마치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느낌이었다. 현지인(老百姓, 일반 국민) 언어를 배우고 싶었던 나는 과감하게 유학생 기숙사에서도 나왔다.

 

변용섭 코트라 청두무역관 관장 

당시에는 외국인에게 쉽지 허락되지 않았던 톈진 현지인 노부부의 집에서 거처를 하면서 그들 가족과 먹고 지내고 온전히 6개월을 중국인들처럼 지냈다. 특히 이혼하고 나서 부모님을 모시며 요리를 담당했던 아들이 해놓는 생선 요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톈진 방언까지 배우며 익힌 중국과 인연이 오늘의 자양분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에 사귀었던 톈진 난카이대학(南开大学) 철학과의 수재형 친구 왕강(王刚)은 고향이 항저우인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좋은 친구다. 그를 통해 중국을 알고 중국사정(国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또한 톈진 사범대에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았다.

기회 땅 중국 요인 적극 활용해야

중국 문학을 가르친 가오슈구이(高书贵) 선생을 통해 배운 쭈즈칭(朱自清)의 산문 '베이잉(背影)'은 일찍 부친을 떠나 보낸 청년에게 한국과 중국과의 부자(父子)의 정서적 관계가 다르지 않음을 문학적인 언어를 통해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그가 1995년 모든 졸업생들에게 남긴 속어인 '活到老学到老(It's never too old to learn)'는 이후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세대가 배워야 살아 남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한 예언적인 가르침이었다.

중국과 한국은 비슷하면서도 정말 다른 국가이다. 이사갈 수 없는 이웃임에도 성격차이도 심하다. 잘 알고 지내는 사이 같지만 그 낯설음 때문에 수교 30여년간 굴곡을 걷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

다만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양 국간의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많은 경제, 문화, 교육 등의 분야에 포진해 있는 많은 민간 우호 대사들의 역할이 크다. 나는 민간 친선 대사를 자처하면서 한중간을 부지런히 다니며 선린의 관계를 만들어 온 많은 분들을 알고 있다.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톈진 시내 텐진사범대학 유학생 센터.  2023.11.09 chk@newspim.com

마찬가지로 수교 무렵 시작한 나의 중국 인연도 매우 가까워졌다가도 멀어지고 또 가까워지고 있다.

중국에 다시 발을 딛게 된 것은 베이징에 근무 차 처음 방문한 지난 2011년이다. 아직도 2011년의 베이징은 기억에 뚜렷하다. 당시에 베이징 하늘은 매일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었다. 결혼을 하고 KOTRA(大韩贸易投资振兴公社)의 직원으로 세 명의 어린 자녀와 함께 들어온 베이징의 물리적인 환경은 내가 15년 전에 톈진에서 느끼던 그것이 아니었다. 중국이 고도 성장을 걸으면서 그 훈장처럼 전국을 뒤덮던 미세먼지는 외지인에게 중국의 어려워진 환경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다만 한중간의 관계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활발하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전체가 중국과 그 시장에 매달렸던 시기였다. 한중간에도 허니문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중국을 좀 가보겠다고 하는 기업들과 정부 인사들은 베이징을 거의 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베이징 KOTRA 무역관은 늘 방문객이 넘쳐났다. 당시에 셔우두(首都) 국제공항을 일주일에 서너번씩 손님 마중과 배웅 차 오고갔다. 그야 말로 깃발만 꽂으면 중국 수출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잘 되던 시기였다.

성장 일로에 있던 중국은 한국에게 생산력과 노동력의 보고였다. 모든 분야가 활발했지만 특히 전자·전기 및 ICT 분야는 한중간의 소재부품과 중간재 공급, 생산기지 및 막대한 중국 현지 시장 상황을 등에 업고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간 분담을 통해 양국이 같이 발전 해나가는 모습이었다.

특히 지체를 겪고 있던 유선전화의 보급보다는 모바일로 신속하게 발전 방향을 잡았던 중국에게 CDMA 1등, 스마트폰 1등을 보유한 '모바일코리아(Mobile Korea)'는 좋은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일례로 당시 남다른 품질의 삼성 휴대폰은 중국인들에게 '부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중국 광저우와 선전에서는 새로운 휴대폰 기업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또한 중국판 실리콘밸리였던 베이징의 중관춘(中关村)은 최고의 ICT 비즈니스 현장이었다.

IT굴기, 현상에서 겪은 '대륙의 반란'

2011년 베이징 무역관에 부임하면서 나의 주된 업무는 중국의 ICT기업들과의 사업 개발 및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 지원이었다. 많은 전기 전자 기업들이 중국에 들어왔다. 나는 당시의 중국의 내로라하는 전기 전자 분야 기업들과 우리나라 부품소재 및 SW솔루션 기업들과 사업을 연결하기 위해 베이징 뿐 아니라 광저우, 선전까지 다녔다.

많은 기업들의 본사를 방문하고 엔지니어들을 만나고 사업 관계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고 업체들의 협력 성사에 매달렸다. 당시 중국 기업들도 한국의 제품과 솔루션이 매력적이었고 우리 기업들에게도 중국 고객은 어느 국가 보다 가깝고 전망 좋은 시장이었다.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화웨이, ZTE 등과 가진 중국 IT글로벌 기업 좌담회. 2023.11.09 chk@newspim.com

당시 Huawei(华为), ZTE(中兴), 샤오미(小米), BBK, CEC, BOE, 바이두(百度), 텐센트(腾讯)를 베이징 중관춘과 광동성 선전에서 쉽게 만났다. 모두들 한국의 우수 업체를 데리고 가면 기꺼이 문을 열어줬다. 이후 ICT 분야에서 무섭게 성장한 중국 기업들과 글로벌 시장을 두고 다투는 경쟁사로 변하거나 또는 한중간의 관계보다 이제 미국과의 3각 관계에 영향을 받게 된 산업으로 변모되었지만 양국 산업 발전의 과정에서 양국의 ICT 기업들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업무를 하면서 중국의 ICT 업체들과의 다양한 일화들이 있지만 나는 샤오미와의 인연을 매우 귀하게 여겼다.

내가 처음 샤오미 본사를 2011년 5월 방문했을 때는 한국 휴대폰 부품을 소싱하고 싶다는 샤오미의 요청을 받고서 였다. 당시 샤오미의 본사는 베이징 왕징(望京)의 빌딩(卷石天地大厦) 몇개 층을 쓰고 있었다. 나는 샤오미를 방문하기 전 베이징에서 열리는 베이징 국가회의 중심에서 열린 GIMIC이라는 포럼에서 30대 후반의 레이쥔(雷军) 회장을 한번 만났다.

소프트웨어 기업 진산(金山)의 동사장이자 앤젤 투자가 정도로만 알려진 그는 우한(武汉)에서 올라온 신흥 사업가처럼 보였고 한국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였다. 아마도 당시 스마트폰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한국은 그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짧은 만남 이후 그의 주선에 따라 다시 린빈(林斌) CTO를 만난 것도 베이징 왕징 본사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연구원들만 모여있다는 이 스타트업 기운이 풀풀 나는 기업이 이후 중국 최고의 ICT 기업이 되고 레이쥔은 중국판 스티브 잡스가 될 것이다라고 우리 중에 아무도 생각 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점심 심사를 대접한 후 린빈은 그들의 스마트폰 개발 계획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샤오미는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IBM, MS, Motorola 등에서 활동하던 중국인 개발자들을 모아 회사를 세우고 MIUI라는 스마트폰 운영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목표는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넘어 스마트폰을 직접 만들고 ICT 생태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기존 일본 샤프의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처 외에 한국산도 포함하고 싶으니 삼성과 LG의 디스플레이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면서 사업계획서 PPT자료를 건넸다. 그게 다였다.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2011년 샤오미 본사가 입주해 있던 베이징 왕징 쥐엔스텐디 빌딩. 2023.11.09 chk@newspim.com

나는 바로 직원들과 함께 샤오미 폰에 들어갈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선을 알아봤다. 당시 한국은 삼성과 LG가 세계 최고의 휴대폰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있었고 휴대폰 제조사를 골라 가며 패널을 공급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국내 업체들에게 사업계획서 PPT를 보내면서 공급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그야말로 '듣보잡'의 중국 기업에게 패널을 공급할 정도로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샤오미를 통해 체험한 꽌시의 의미

나도 샤오미의 사업계획서로만으로 설득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우리 대기업들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이후 한국의 두 기업의 본사와 컨퍼런스콜이 우리가 같이 참석한 가운데 샤오미 본사애서 이뤄졌다. 태도는 극명했다. 신제품 출현을 못 믿겠다는 반응과 어쩔 수 없이 공급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는 반응에 샤오미는 실망했다.

다행히도 이후 진행된 절차를 통해 국내 모기업의 패널이 샤오미 신규 모델에 채용되기는 했으나 중국의 신생 휴대폰 업체를 등한시 했던 업체는 눈앞의 오더를 놓치고 마는 상황이었다. 이후 휴대폰 패널 디스플레이가 LCD를 넘어서고 OLED 시대가 열리면서 샤오미도 부품 공급망 확보를 위해 다시 합종연횡하는 상황이 펼쳐졌지만 사업 초기 샤오미와 맺은 인연은 훗날 빛을 발했다.

지금도 내가 애독하고 있는 레이쥔의 샤오미 초기 열혈 10년을 기록한 책 "용감하게 매진하다(一往无前, 范海涛著,中信出版集团, 2020.8)"에는 당시의 부품 공급상으로부터 산짜이(山寨)로 취급받으며 애플과 삼성의 공급상이 80%가 겹치는 상황에서 물량이 작다는 이유로 홀대를 받던 눈물겨운 생생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레이쥔은 초반 자신을 믿지 않고 산짜이로 부르는 이들 앞에서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지는 모습을 연출했다고 나온다. 또한 산짜이로 취급 받는 것보다 납품 약속을 깨는 공급상 등의 문제로 그 스트레스가 태산에서 내려 누르는 정도라고 표현하고 있다("一种泰山压顶般的压力向他袭来"). 그날의 상황들이 눈에 보듯 선했다.

중국은 꽌시(关系)의 나라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렇게 샤오미 경영진과 인연을 가지게 되었고 이 꽌시의 힘이 발휘된 것은 2014년 12월이었다. 2014년이 되자 샤오미의 위상은 2011년의 그것이 아니었다. 불과 3년 만에 샤오미는 중국에서 스마트폰 1위 스타 기업으로 발돋움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샤오미 바람을 일으키면서 유명기업이 되었다. 그러자 중국을 방문하는 인사들이 앞다퉈 샤오미 본사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레이쥔 회장을 만나고자 줄을 섰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동일한 요청이 외교라인을 통해 접수됐다. 하지만 아무리 대사관 공문과 공적 및 사적 연락을 취해도 샤오미측에서는 답변이 없었다. 장관의 중국 방문을 준비하던 팀에서는 몸이 달아 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 주요 IT기업가 인맥이 좋을 것 같다며 ICT행사를 준비중이던 KOTRA 팀에게 레이쥔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이때 2011년부터 샤오미와 인연의 고리였던 중국 과기부의 친구 쟈오강(赵刚)에게 연락을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과거에 패널 공급선을 찾아주기 위해 KOTRA가 노력했던 인연을 강조했다. 나와 통화를 마친 그는 바로 레이쥔측에 연락을 넣었고 연락이 간지 한 시간도 안되어 접견 시간과 장소가 날아왔다. 그리고 장관 방문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2011년 신생기업이었을 때의 인연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중국 기업가들 중에 기업 설립 초창기, 즉 미약한 존재였을 때 도와준 인연(꽌시,关系)을 소중히 여기고 성장한 이후에도 그때의 인연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레이쥔 평전에서도 보는것과 같이 어렸웠을 당시 신의를 저버린 공급상과는 두 번 다시 관계를 갖지 않게다고 쓸만큼 중국에서 네트워크(꽌시, 关系)는 비즈니스에서 생명줄과 같다.

혁신도시로 명패 바꾼 내륙 신성장 거점 청두

나는 2023년 2월, 8년만에 중국 근무를 위해 중국 서부 내륙 쓰촨성 청두(成都)에 왔다. 세 번째 찾아온 중국에 온라인과 SNS의 도움으로 과거에 맺었던 많은 기업이나 정부의 귀한 인연들이 빠른 시간 내에 연락이 닿았다. 중국 생활의 총알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이런 경험은 호주 등 선진국 근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관계를 해치는 경우가 많았을 텐데 다행히 나를 기억해주는 중국 인연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중국 서남부 실리콘밸리로 떠오른 쓰촨성 청두 고신구(高新区, 첨단 기술개발구)2023.11.09 chk@newspim.com

청두는 중국 서남부의 중심도시이자 신일선(新一线) 도시 가운데 선두 도시로 변모해 있었다. 14년 연속 행복감을 주는 도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아름다운 공원도시다. 이 도시의 잠재력은 또한 중국 어느 도시에 못지않은 SW 및 하이테크 발전 수준이다. 알리바바(阿里巴巴), 바이두(百度), 텐센트(腾讯) 등의 개발센터가 자리잡고 있으며, 온라인게임, VR 분야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즐비하게 포진해있다.

청두의 고신구의 소프트에어 단지를 방문할 때 마다 10여년전 베이징의 중관춘을 방문했던 기억과 오버랩이 많이 된다. 도시 곳곳에 포진한 창업기지와 청년 창업가들을 보면 2010년 베이징 중관촌 처쿠카페(车库咖啡)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묘한 흥분을 여전히 느끼게 한다. 고신구의 젊은 개발자들과 청년 창업가들은 도시를 더 젊고 활기차게 만들어 가고 있다.

중국 쓰촨성 청두에는 중국의 시성(诗圣)으로 알려진 두보(杜甫)가 안사의 난을 피해 지내며 240여수 의 시를 남긴 두보초당(杜甫草堂)이 있다. 두보가 남긴 시 가운데에서도 나는 춘야희우(春夜喜雨)의 한 구절을 좋아한다. 好雨知时节,当春乃发生(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나니, 봄이 되어 이내 싹이 트고 돋아나네).

시인은 봄이 되어 내리는 비의 소중함을 노래했는데 30년이 된 한중간의 관계는 새로운 봄날의 비(喜雨)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한중관계에 새로운 봄날 즉 양국간 새로운 협력관계와 산업 분야 협력의 업그레이드를 기다리고 있다.

양국간에 새로운 싹이 나게 하는 봄비와 같은 관계 발전은 오랜 시간 쌓여온 이사갈 수 없는 이웃(搬不走的邻居)으로서의 아름다운 인연을 확인하면서 앞으로도 오래 오래 지속될 것 이다.

글쓴이 = 변용섭 코트라 청두무역관 관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문 근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입사
KOTRA 베이징무역관 근무
2017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세계엑스포 한국관장
KOTRA 호주 멜버른무역관 관장
KOTRA ICT융복합산업팀장
KOTRA 청두무역관 관장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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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다시 청와대…낙수효과 기대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지난 22일부터 언론 브리핑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되면서, 용산 대통령실 시대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말부터 청와대에서 집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시 청와대 시대가 오는 것이다.  2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부근의 효자동과 통의동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을 방문해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기대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기자와 취재원들의 만남이 무작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전체 상인과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23일 효자로 남단에서 청와대 방향을 바라본 모습. 우측으로 경복궁 영추문이 눈에 들어온다. 2025.12.23 calebcao@newspim.com ◆ "낙수 효과로 장사 잘 될 것 기대 중" 이날 오전 자하문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A씨는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돌아왔다니까 기대하는게 크다"면서 "아무래도 직원들도 돌아오고 하니 매출이 늘어나지 않겠어요?"라고 예측했다. A씨는 장사를 시작한지 3개월 가량 지났다고 밝혔다. 점심 무렵인 오전 11시쯤 효자동에서 5년째 음식 장사 중인 김광재 청기와집 사장(62)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移轉) 전후를 설명했다. 김 사장은 "용산으로 가기 전에는 점심 장사로만 60~70명 정도를 받았고, 청와대 외곽을 경비서는 경찰 인력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서 "그러다가 청와대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나서는 5~6개월간 관광객이 몰려들며 300명씩 받는 '특수'를 누렸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후에 거의 다 관람하고 나서 청와대 신비감이 떨어졌고 2년 가까이 장사가 엄청 안됐다"면서 "용산으로 가기 전에 비하면 반 토막 정도 떨어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대통령실이 돌아온다니까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김 사장과 대화하는 중간에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 직원 7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김 사장이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님들의 자리 안내를 한 후 다시 돌아와 인터뷰를 계속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들어오잖아요. 저분들은 기동대인데, 낙수효과지. 근무하는 인원이 몇 천은 될 테니까. 그 안에서 식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밖으로 나와서 먹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도시락을 맞출 수도 있으니까 우리에겐 기회지." 집회나 시위에 대한 걱정이 없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시위 걱정? 시위대가 온다고 식당을 부수진 않으니까, 왔으면 밥이라도 한 그릇 먹겠지 우리 손해는 아닐 겁니다"라면서도 "다만 주민들은 피해를 볼 수도 있겠네요. 막 욕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할 테니까"라고 내다봤다. ◆ "별 체감 안 되는데" 시큰둥한 반응...임대료 증가 걱정도 효자동에서 남쪽에 인접한 경복궁 옆 통의동 골목에서 25년째 한식당을 하고 있는 60대 여성 B씨는 "솔직히 (장사가 잘 되는)체감이 아직은 안가요. 뭐 돌아오면 나아지겠지?"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우리 집은 경찰이나 직원들이 오는 집은 아니에요. 그 전에도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고. 주로 경복궁에 놀러 온 사람들이 찾아와요"라며 "(이전에 청와대 사람들이)오더라도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룸을 찾는지, 음식 맛보러 오는 게 아니라 대화하려고 오는거야. 그래서 대통령실 돌아왔다고 해도 그냥 그래"라며 얼버무렸다. 경복궁과 통의동을 가르는 효자로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76세 남성 C씨도 대통령실 복귀가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상권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원래 12월은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체감이 안 가는 걸 수도 있는데, 여기서 15년 장사를 했는데, 그 전에도 대통령실 직원들이나 경찰들이 우리 가게에는 오지 않았어요." C씨의 가게는 커피콩을 직접 볶는 '로스팅' 전문점이다. 과거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커피콩을 사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은 경복궁을 찾는 관광객들이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가기 전에 이 안쪽 골목에는 비싼 한식집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었겠죠. 그런데 용산으로 가버리니까, 그 집들이 다 카페로 바뀌었어요. 옛날엔 이 근방에 카페가 5~6곳이었는데, 올해만 20곳 넘게 생겼어요." C씨의 설명에 따르면 청와대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며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한다. C씨의 추측으로는 올해 들어 주변 상점들의 임대차 계약 만료일이 겹쳤는지, 전체적으로 월세가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 부근 월세가 보통 30평에 500만원을 내는데, 다른 카페들 보면 더 큰 평수겠지만 1000만~1500만원 내는 곳도 있습니다. 근데 보시면 알겠지만 장사가 안돼요. 내 나이에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월세만 내면 버티지만 다른 곳들은 걱정입니다"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시위도 두 종류가 있다"며 "무슨 노조들이 하는 시위는 매출과 관계 하나도 없고 시끄럽지만, 여러 시민단체나 각 개인이 와서 하는 시위는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옆 무궁화동산에서 만난 산책 중이던 동네 주민 D씨는 "원래 여기가 조용하기도 하고 시끄러운 곳"이라며 "용산으로 갔을 때도 큼지막한 시위는 항상 광화문에서 했기 때문에 별 차이는 못 느꼈다"고 얘기했다. D씨는 "옛날 2008년에 광우병 시위를 크게 할 때는 집에 가는 길도 시위대랑 경찰에 막혀서 불편한 게 많았다"면서 "그런 것만 제외하면 동네 사는 게 나쁘진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선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와 관련해 수백억원의 혈세가 낭비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용산에서 다시 청와대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269억원, 그 자리에 국방부가 다시 들어오는 데 238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길 때 든 비용 800억원을 합산하면 총 1300억원의 비용이 낭비된 셈이다. calebcao@newspim.com 2025-12-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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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 19만명 정보 유출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신한카드에서 가맹점 대표자 약 19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신한카드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하고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신한카드는 23일 가맹점 대표자의 휴대전화번호를 포함한 총 19만2088건의 개인정보가 신규 카드 모집 과정에서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신한카드 본사 전경[ 사진=신한카드] 2025.06.18 yunyun@newspim.com 유출된 정보는 ▲휴대전화번호 18만1585건 ▲휴대전화번호와 성명 812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성별 231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월일 73건 등이다. 신한카드는 조사 결과 주민등록번호, 카드번호, 계좌번호 등 민감한 신용정보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가맹점 대표자 정보 외 일반 고객 정보와도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해킹 등 외부 침투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며 조사 결과 일부 내부 직원의 신규 카드 모집을 위한 일탈로 밝혀진 만큼 유출된 정보가 다른 곳으로 추가 확산될 염려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현재까지 해당 정보로 인한 실제 피해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향후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으로 보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고 사실과 사과문을 게시하고, 가맹점 대표자가 본인의 정보 포함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조회 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아울러 개별 안내도 병행하고 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객 보호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안이 '목적 외 개인정보 이용'인지, '정보 유출'인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으나, 적극적인 고객 보호를 위해 '정보 유출'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yunyun@newspim.com 2025-12-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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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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