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운전치사·어린이보호구역치사죄 상상적 경합관계로 판단
"재범 위험성 낮고 혈액암 투병중인 점·거액 공탁한 점 고려"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음주운전을 하다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남성이 항소심에서 감형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규홍 부장판사)는 24일 도로교통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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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피고인은 사고현장으로부터 직선거리 16~21m 거리의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현장에 즉시 돌아왔으며, 사고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고 운전자라고 밝혔고,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현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한 도주의 범의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도주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은 정당하다고 봤다.
다만 원심에서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죄와 어린이 보호구역치사죄에 대해 실체적 경합관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데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한 번의 교통사고로 한 명의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고를 냈고 이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로 상상적 경합관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상상적 경합이란 하나의 동시에 여러 개의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해 정한 형으로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가 공소사실을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판단하면서 양형기준은 기존 징역 3~45년에서 징역 3~32년으로 줄어들었다.
A씨가 고액을 공탁한 점도 감형에 참작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1심 선고 직전 3억5000만원, 2심 선고 직전 1억5000만원을 공탁했다"며 "범행의 경위, 수사기관과 재판에서 보인 피고인의 태도, 합의를 위한 노력, 반성의 진지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공탁 사실을 제한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며 "다만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재범 위험성은 낮아보이는 점, 현재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판결 직후 B군의 아버지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취재진을 만난 그는 "저희 가족들은 어린이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기를 정말 바라고 있다"며 "그런데 오늘 판결을 보니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정말로 공탁금을 받을 의사가 없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결국은 선고 기일까지 미루고 공탁을 했다"며 "재판부가 현행 공탁제도의 한계를 지적하긴 했으나 결국은 받아들인 것 아니냐. 돈이 있으면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모르겠지만 매우 잘못된 것 같다"며 상고 의지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한 초등학교 후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학교 3학년 학생 B군을 차로 치고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군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로 면허취소 수준이었으며, 사고 당시 약 930m 구간을 만취 상태로 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해당 지역에서 상당기간 거주했고 사고 현장이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초등학생들의 통행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했다"며 "이 사건은 전방주시의무, 안전의무에 충실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고"라며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다만 "피고인에게 도주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도주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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