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악의 발현은 이제 디지털 세상으로 넓게 퍼져 나가고 있다. 성착취물의 제작과 배포, 가스라이팅, 그루밍 성착취 범죄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각종 피싱 사기, 온라인 도박 등은 다른 많은 범죄들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저자 권일용)
우리나라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가 펴낸 책의 한 내용이다. TV방송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는 권 교수는 형사와 과학수사요원을 거친 경찰 출신으로, 경찰 퇴직 전까지 1000여명의 연쇄살인범 등 중범죄자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을 읽었다.
수많은 범죄 가운데 우선 부각되는 점이 사이코패스다. '연쇄살인마' 강호순, '어금니아빠' 이영학, '또래 살인' 정유정 사건 등 범인이 사이코패스라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을 불러왔다. 이들은 정신적으로 정상인과 거리가 멀다. 우리가 잠재된 사이코패스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상인에 가까운(정상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벌이는 범죄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경제 상황이 안 좋을수록 사기 범죄가 늘어난다고 하는데, 최근 경제 상황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전세 사기, 보이스피싱, 불법사금융 등 범죄가 모두 '돈벌기'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지능적이고 2030세대 등 젊은 범죄자, 집단화 특성을 보인다.
사회부 김기락 차장 |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 범죄는 중국 등 해외에 본거지를 두지만 실제 범죄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휴대폰 대리점 등에서 가입 당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가 하면, 해킹 등을 통해서도 개인정보가 유통된다. 범죄 실행부터 완성이 매우 급속도로 이뤄지는 만큼, 일선 경찰 수사로는 검거하기 어렵고, 피해 금액 구제도 쉽지 않다. 뒤집어 보면 수사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범죄의 주와 부로 나눌 수 있다. ▲개인정보를 사고 파는 조직 ▲휴대폰 유심(USIM) 등을 복사해 계좌이체, 대출 등을 실행하는 조직 ▲대포 통장으로 돈세탁하는 조직 ▲범죄수익을 해외로 보내는 외화 송금업체 조직 등이다. 현금 수거책 등 부에 해당되는 범죄가 줄어든 대신 소규모 해외 송금 업체를 통한 범죄수익은닉이 늘어났다는 게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디지털을 비롯해 IT(정보통신), 금융, 외화 등 각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범죄를 완성하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리딩방 사기, 온라인 도박, 대포통장 유통, 금융사기 등을 검찰 표현으로 '제4세대 조직범죄'라고 한다. 민생 범죄는 사이코패스 및 단독성 흉악범과 같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조직범죄는 피해와 확산성, 유사 범죄 재발성 등이 아주 높다.
이처럼 '악의 발현'이 우리 생활 속에 빠르게 퍼져 가면서 수사기관은 엄단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최근 전국 조직범죄 전담검사들을 불러모아 "조직적·계획적으로 서민 재산을 강탈하는 자들은 반드시 획기적인 중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라"며 "범죄수익도 철저히 박탈해 '범죄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뿌리내리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도 관련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단적으로 법원은 '신림역 살인예고글'을 게시한 20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다. 그런가 하면, 대구지법 형사11부(이종길 부장판사)는 원룸에 사는 여성을 뒤따라가 성폭행을 시도하며 흉기를 휘두르고, 이를 제지하는 여성의 남자친구에게 영구적 상해를 입힌 20대에게 유기징역 최고 형량인 징역 50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30년보다 20년을 높여 사회적 경각심을 극대화시켰다는 평가다.
살인예고글, 흉기 소지죄 등 처벌을 강화한 공중협박죄 신설을 골자로 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은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지난 8월 발의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않았다. 앞서 같은당 유상범 의원이 4월에 발의한 특가법 개정안도 현재까지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국회가 쌓일대로 쌓인 각종 민생법안을 속히 처리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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