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가처분이나 민·형사소송 등 정당한 권리행사를 포기하고 권리행사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액까지 지급하기로 약정한 것은 위법한 해악의 고지로 말미암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사가 B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사진=뉴스핌DB] |
A사는 자동차 제조사인 C사에 차체 등을 공급하는 1차 협력업체이며, 2차 협력업체인 B사와 금형 등 도구를 대여해주고 부품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부품 단가 조정 등 문제로 2018년 9월 A사와 B사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고, A사는 B사에 부품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하면서 빌려준 금형 등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B사가 정산금 지급을 요구하며 반환을 거부했다.
이에 A사는 같은 해 12월 B사를 상대로 금형 등에 대해 동산인도단행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B사가 오히려 A사에 대한 부품 공급을 중단해 A사는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A사는 B사의 요구에 따라 어떠한 법률적인 행위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고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
A사는 2019년 1월 B사에게 투자금과 손실비용 24억2000만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하고 금형 등을 반환받았다. 이후 A사는 이 사건 합의가 B사의 협박에 의해 체결된 것으로 합의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B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강박행위가 위법하다고 하기 위해서는 행위 당시의 거래 관념과 제반 사정에 비춰 해악의 고지로써 추구하는 이익이 정당하지 않거나 강박의 수단으로 상대방에게 고지하는 해악의 내용이 법질서에 위배된 경우 또는 어떤 해악의 고지가 거래 관념상 그 해악의 고지로써 추구하는 이익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부적당한 경우 등에 해당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거나 계약을 해제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만으로는 '위법한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A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B사가 불법으로 어떤 해악을 고지해 A사가 공포를 느끼고 합의를 했다거나, 합의 과정에서 법질서에 위배될 정도의 강박 수단이 사용됐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으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B사가 A사의 부품 생산에 필요한 금형 등을 반환하지 않은 채 부품 공급을 지연하거나 중단하면서 A사는 정산금 세부내역에 대해 검토하지 못한 채 합의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합의금을 지급하고 가처분이나 민·형사소송 등 정당한 권리행사를 포기하며 권리행사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액까지 지급하기로 약정한 것은 위법한 해악의 고지로 말미암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 합의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한 1·2심의 판단에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