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제안에 판매 금융사 "법적 근거 없어"
올해만 16조원 만기, 예상 손실액 최대 8조원
재투자자 손실배상 기준, 전체 배상액 결정될 듯
8조 판매 국민은행 '주목', 3월초 조사결과 공개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와 관련, 전체 투자자 중 90%가 넘는 '재투자자'에 대한 손실배상 기준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판매 금융사들은 이들이 원금손실 가능성은 이미 알고 재투자를 결정했다는 주장이지만 금융당국은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잔액에 대한 손실액만 최대 8조원까지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사들은 선제적 손해배상안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 조사 결과가 공개되는 3월초 이후에야 구체적인 배상 논의가 가능할 전망이다.
◆올해만 16조원 만기 도래, 예상 손실액 8조원 넘어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에서 판매된 홍콩ELS는 총 19조3000억원에 달한다. 은행에서 15조9000억원, 증권사에서 3조4000억원을 판매했다. 현재는 대다수 금융사에서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2024.02.06 peterbreak22@newspim.com |
이중 올해 만기(3년)를 맞는 잔액은 15조4000억원. 이중 10조2000억원이 상반기에 몰려있다. 2021년 판매 당시 1만2000포인트까지 올랐던 H지수는 현재 5200선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로 인해 지난 2일 만기가 돌아온 5대 은행 판매 홍콩ELS의 손실률은 53%를 넘어섰다. 전체 7000억원 중 고객 상환액이 3300억원에 불과하다. H지수 반등이 어렵다는 글로벌 전망을 감안하면 올해 만기 도래 홍콩ELS의 손실액은 판매액의 절반이 넘는 7조원까지 예상된다.
손실액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다. 금융사들은 판매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손실과는 무관하다. 실제로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2021년부터 2023년 3분기까지 ELS 통해 얻은 수수료는 68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판매 과정에서 이른바 '불완전판매' 여부가 인정될 경우에만 투자자 손실을 판매 금융사가 배상한다. 기준이 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서는 '적합성·적정성·설명의무·불공정영업행위·부당권유행위금지·광고지침준수 등 6개 원칙 중 하나라도 어기면 불완전판매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투자자 손실배상 관건, 당국은 "금소법 위반 살펴봐야"
이중 핵심은 '설명의무'다. 특히 막대한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상품인지를 충분히 설명했는지가 불완전판매 여부를 결정할 핵심 사항이 될 전망이다. 피해를 본 대다수 피해자들은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금감원 역시 이 부분에 대한 집중 조사를 진행중이다.
반면 금융사들은 전체 투자자 중 최초투자자 비중이 8.6%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90%가 넘는 투자자가 과거에 1회 이상 ELS 상품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주가연계증권상품 특성상 원금손실 가능성을 인지하고 재투자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2024.02.06 peterbreak22@newspim.com |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ELS 상품에 대해 알고 다시 투자하는 고객이라면 판매 창구에서는 원금손실 위험성은 간략하게 핵심만 전달하고 넘어갔을 수 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제대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문제삼는 건 과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금융사 주장이 관철된다면 불완전판매 대상은 크게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원금소실 위험성 고지에 대한 기준점이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재투자 경우도 엄격한 기준으로 조사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재투자자라서 오히려 각종 설명이 제대로 안되고 넘어갔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금소법에 위배되는지 엄중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제적 자율배상 난색, 최다판매 국민은행 선택 주목
홍콩ELS 판매 금융사들은 금감원이 제안한 선제적 자율배상안 마련에도 난색을 표한다. 불법판매 정황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배상안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사 관계자는 "배상은 법적 책임이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 근거가 없으면 누구도 그럴 권한이 없다.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될 가능성이 없다. 배상안은 조사 결과에 따라 불완전판매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 등이 나온 이후에나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금감원이 설 연휴 이후 2차 현장조사를 예고한 가운데 업계 시선은 국민은행에게 모아진다. 가장 많은 홍콩 ELS 판매한 국민은행의 대처가 이번 사태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이 판매한 홍콩ELS는 8조원으로 은행권 판매 15조9000억원 중 절반을 넘어선다. 두 번째로 많이 판매한 신한은행(2조4000억원)보다 3배 이상 많다. 2차 현장조사가 사실상 국민은행을 타겟으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 홍콩ELS 자율배상안과 관련된 논의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당국 조사가 진행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다"고 밝혔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