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로 수십조 재정 투입돼야 하는 '한 표 위한 공약'
유권자, 오히려 공약 실행 않길 바라는 '역설적 상황'
"공짜 점심은 없다"…투표 전 공약 꼼꼼히 살펴 봐야
[서울=뉴스핌] 온종훈 정책전문기자 = 4·10 총선이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거대 양당이 경쟁하듯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것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돈 퍼주기' 공약이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확히 얼마큼의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지 가늠이 안될 뿐더러 최소로 잡더라도 수십조 원의 나랏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어느 쪽이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공약(公約)이 실제 실행되어 경제나 나라살림에 재난적 상황이 발생하게 하기보다 선거 후 유야무야 하면서 실현되지 않는 공약(空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서는 '역설적 상황'이다.
1일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선거가 불과 열흘 안쪽으로 다가오면서 선심성 공약 경쟁은 여야를 안 가리고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선거운동 시작 전날인 지난 27일 충북 청주시에서 이재명 대표 주재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기본사회 5대 공약'을 발표했다. 출생 기본소득, 기본주택, 대학 무상교육,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어르신 하루 한 끼 지원 등이 골자다.
민주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정책공약집에는 결혼·출산·양육 패키지 정책(출생기본소득)과 요양병원 간병비 건보 적용, 경로당 점심 제공, 기본주택 100만호 등 정책이 개별적으로 담겨 있다. 하지만 기본사회 공약이라는 이름을 달고 한 데 묶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이목을 잡아끌기 위해 이 대표의 '기본 시리즈' 브랜드를 달고 확대해 새롭게 내놓은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공약집에는 없던 '대학 무상교육'이 포함 됐으며 이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국립대·전문대 전액 무상, 4년제 사립대 반값등록금 실현 등을 기본사회 공약에 포함시켰다.
이 대표는 앞서 지난 24일 "민생경제 비상사태 해결을 위해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 원, 가구당 평균 100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치러진 4년전 총선에서 나온 긴급생계지원금을 이름만 바꿔 다시 반복한 셈이다.
문제는 고물가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민생경제 회복을 지원한다는 명분이지만 돈을 풀어 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힘든 발상이다. 이 때문에 "눈속임 공약"이라는 비판이 여권 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가구당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원할 경우 최소 13조원의 돈(재정)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진=뉴스핌] 이형석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사진)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2일 충남 당진전통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4.03.22 leehs@newspim.com |
국민의힘도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식선거운동 시작일인 지난 28일 육아용품·가공식품 등 생활 밀접 분야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한시적으로 10%에서 5%로 낮춰주겠다고 공약했다.
대상품목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100대 생활용품을 기준으로 1년 시행할 경우 1조원의 세수 결함은 불가피하다. 급등하고 있는 서민 생활 물가를 잡기 위한 방편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위한 수단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살이에서 세율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위원장은 여기에 이날 "내년 5세부터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3∼4세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하겠다"고 밝혔다. 이도 국민의힘 공약집에 포함돼 있지 않은 내용이다.
오히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비슷하다. 지난해 1월 교육부는 만 3~5세 교육비를 전액 무료화 하는 방침을 담은 업무추진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한 위원장이 이날 함께 발표한 '초등학생 예체능 학원비 세액공제'는 지난달 민주당이 총선 공약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크게 보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선심성 공약으로 치고 나가니 소수 여당인 국민의 힘도 비슷한 방향 이지만 상대적으로 재정 투입규모가 낮은 정책들을 모아 선거 막판 공약으로 내놓고 맞대응하는 양상이다. 개혁신당 등 중도 진영의 정당들이 "정책들이 닮아가고 있다. 그럴 거면 민주당과 단일화 하라"고 비꼬는 논평을 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심성 공약의 부담은 선거후 유권자인 국민이 오롯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선택의 결과에 대한 부담과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투표장에 가기 전에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겠다. 낡은 얘기 같지만 "돈(경제)의 문제에 공짜점심은 없다"는 원칙에는 예외가 없다.
ojh11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