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윤희 기자 = "500만 넘는 당원이 한 정당에 소속돼서 의견을 내는 것을 집단지성으로 보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집단 지성이라고 할 것이고, 누구를 중도층이라고 표현할 수 있나"
지난달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2대 국회 당선인 워크숍에서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당원권 확대' 논의가 중도층 이탈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이같이 일축했다. 이어 "500만 당원을 갖고 있는 플랫폼 정당에서 당원권을 확대하겠다는 게 중도층 의사를 반영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부연하기도 했다.
김윤희 정치부 기자 |
대의민주주의 정치에서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유권자의 의사가 곧 민심이라는 해석엔 얼핏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당심이 민심'이라며 국회의장 후보·원내대표 선출까지 당원 의사를 반영하겠다는 최근 민주당의 논의엔 어쩐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데, '당심(黨心)이 천심'이라는 명제에 선뜻 동의하기엔 500만과 5000만이라는 숫자 사이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의장 후보 경선 결과로 불만을 품은 당원들의 탈당 행렬이 2만여건에 임박했을 당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의원들은 '당의 주인은 당원'임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당선인 워크숍 분임토의를 통해 "당원 의사를 당 운영에 반영할 수 있도록 당원 민주주의를 실질화하겠다"는 총의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논의가 촉발된 지 약 3주가 지난 현재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 테스크포스(TF)는 국회의장 후보·원내대표 선거에 '당원 투표 20%'를 반영하는 개정 시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5일 의견 수렴을 위해 열린 비공개 지역위원장·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도 대다수가 여기 동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당원권 확대' 개정안은 최종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같은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해 마땅히 나왔어야 할 다양한 의견 개진이 최근 일련의 논의 과정에선 결여돼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지난 5일 연석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한민수 대변인은 "당원 중심의 대중 정당으로 가는 것에 (민주당의) 모두가 뜻을 모았다"며 "대표가 마무리 말씀을 할 때 모두가 박수쳤다. 이견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 참석자 206명 중 발언자는 7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지도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강성 지지층에게 '수박'이란 멸칭을 얻고, 문자 폭탄·현수막 훼손 등에 시달리며 홍역을 치른 몇몇 의원들의 선례가 현재의 민주당에 일종의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건 아닐지 의문이 드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전직 국회의원은 "이대로 가면 누가 더 크게 말하고 누가 더 세게 강성 지지층을 대변하느냐로 당내 권력이 좌우될 것"이라며 "사실 이미 지금도 진행 중인 것 같다"고 평했다.
'원조 친명'으로 분류되는 김영진 의원은 지난 6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선출하게끔 돼 있는데 꼬리가 몸통을 흔들면 되겠냐"며 당원권 확대 개정안에 "정치가 개판이 되고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 가감없이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정당이 당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국민 전체의 대의제 기구인 국회의장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총의를 모을 대표자인 원내대표 선출까지 당원 투표가 반영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일지는 더 치밀하고 첨예한 숙고가 필요하다.
지금의 당헌·당규 개정 논의가 수년, 수십년 뒤 민주당의 미래가 아닌 당장 다음의 대선만을 바라본 '로드맵'으로 수단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yunhu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