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급격한 사회변화와 극심한 갈등, 승자독식 논리에 맞닥뜨린 20~30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정병국 예술위 위원장은 2일 방송된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KYD(Korea Youth Dream) '셀럽에 길을 묻다'에서 청년들에게 '인생의 지혜'에 대한 조언 등을 남겼다. 대담은 김용석 뉴스핌 문화스포츠 부장이 맡았다.
'셀럽에 길을 묻다' 코너는 '대한민국 청년을 꿈꾸게 하자'라는 뉴스핌 KYD의 일환으로, 이를 통해 이 시대의 명사들을 초대해 그들의 인생에서 얻은 소중한 지혜와 경험 등을 청년들에게 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핌DB] 2024.08.01 jyyang@newspim.com |
정병국 위원장은 "문화예술을 하려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는 데서 싸움이 시작된다"면서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정치에서도 문화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정치인 출신으로서 문화예술계에도 다양한 현안들과 장르의 차이를 인정하고 정책을 조율해나가는 부분에서 정치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모든 분야에서의 생각의 차이, 갭 이런 거를 좁혀가고 그걸 조정해내는 힘이 정치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문화예술계에서도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는 "길게 보시라. 길게 보고 미래를 좀 봤으면 좋겠다. 지금 현실이 어렵지만 어려운 시대에 제일 성공한 사람들은 뭐가 되고 이게 아니라 내 삶에 대해 후회 없는 삶을 사느냐 하는 부분"이라며 "그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정병국 위원장과의 대담 전문.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린다.
▲(정병국 위원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973년도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 출발을 했다. 참 저는 놀라운 게 1973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찾아봤더니 321불이다. 지금 아프리카 어느 나라보다도 더 못 살았던 거다. 원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먹는 것 자체도 해결이 안 됐던 그 시대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또 예술진흥기금을 걷기 시작했다. 이게 오늘날 문화강국으로 가는 큰 힘의 밑바탕이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금 1년에 약 4000억 정도의 예산을 쓴다. 그 정부 예산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양질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끔 할 거냐 하는 의미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문화예술 향유를 할 수 없는 계층에 있는 분들,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 계층에 있는 한 250만 명 정도 되시는 분들께 그 계층의 6세 이상이 되시는 분들에게는 연간 13만 원짜리 문화누리카드를 발급을 해서 그 카드를 가지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또 창작자들인 예술인들에게는 모든 그러니까 순수 예술 쪽,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또 전통 예술, 문학 이쪽 분야에는 예산을 가지고 그분들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지원을 하는 이런 기관이다.
- 5선 국회의원을 역임하신 후 지금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을 맡고 계신다. 굵직한 정치 인생을 사셨고 문체부 장관과 국회 상임위를 역임하셨다. 평소 문화는 사회통합의 기제다라고 말씀하시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문화가 사회통합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여하고 있다고 보시나.
▲ 제가 국회의원 5선을 하면서 3선까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위원장을 했고 오랫동안 문화예술을 다루게 됐다. 정치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게 소통이더라. 우리가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실행하기 쉽지 않다. 문화예술을 다루다보니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문화 예술을 인정할 수가 없고 문화 예술을 우리가 감상할 수가 없는 거다. 다름이 굉장히 중요하다. 살다 보면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의견도 다 다를 수가 있는 거고 근데 정치에서는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고 한다. 서로를 틀렸다고 규정을 짓다 보니까 결국은 싸움이 된다.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대화를 하다 보면은 나하고 생각이 다른데도 다른 거를 틀렸다고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왜 그런가 보면 우리 교육의 맹점이라고 보는 거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정답 찾는 교육만 시키다 보니까 결국은 이 다르다라고 하는 것,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상황 속에서는 결국 대화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문화 예술을 우리가 인정하고 감상하고 하는 과정 속에서 그 다르다라고 하는 걸 전제로 하게 되니까 작가의 작가 정신을 존중하게 되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 다르게 보지만 그걸 중심으로 해서 공감력을 끌어낸다. 문화예술 우리가 많이 감상하고 많이 접하게 되면 다름을 인정할 수 있겠구나. 지금 우리가 명실공히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데 지금 필요한 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문화 리더십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문화, 소통과 공감의 코드'라는 책도 제가 장관을 마무리하면서 썼던 기억이 있다.
- 문화적 리더십을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 말씀드린 대로 문화적 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예술은 서로 달라야 하고, 다름을 인정하게 되고 그럼 존중하게 된다. 그럼 이 정치라고 하는 것,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좁혀갈 건가 예를 들어서 여당 의원이라면 야당 의원들하고 대화할 때에 내 생각하고 다르다 하더라도 야당이니까 그럴 수 있지, 또 야당 의원은 여당이니까 그럴 수가 있지 그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갈 건가 대화하는 과정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게 되면 지금과 같이 극한적인 투쟁을 해야 될 이유가 없다. 그게 저는 문화적 리더십이라고 생각을 한다.
-소통을 중시하시고, 예술위 내에서도 소통을 위해서 직원들과 프리젠테이션, 공청회, 매주 월요일에는 예술인을 만나 2시간가량 현안을 직접 논의하신다고 들었다. 이를 통해 달라진 점과 성과가 있었는지.
▲작년 1월에 문화예술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취임을 하게 됐는데 가서 보니까 10여 년 전에 저희가 국회에서 만들어놨던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시대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고 또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여러 가지 불평, 불만들이 많았다. 고치겠다고 얘기해도 실무자들도 쉽지가 않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 위원들도 단계적으로 하면 어떻겠느냐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러면 못바꿀 것 같고 제 의견이나 위원회 의견으로 바꾸기보다. 현장에 있는 예술인들이 무엇을 바라는가 들어보고 그분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고쳐주는 방식으로 제가 제안했다. 그래서 사업별 현장 업무보고회를 14차례를 했었다. 온·오프라인상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참여하고 올 1년 동안의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설계를 해서 어떻게 할 겁니다 라고 정책 고객들한테 보고를 했다. 이후 전문가 토론을 하고 결과를 가지고 의견을 듣고, 그중 가장 공백이 크고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전문가들하고 또 논의를 해가지고 정리했다. 그 내용으로 또 4차례 공청회를 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문제 제기든 반발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단 한 건도 없었다. 결국은 민주주의는 절차이고 과정이지 결과를 가지고 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의견 좋은 정책도 결국은 과정에서 그 정책 고객들하고 충분한 논의를 하고 의견을 듣게 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지만 가장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또 한 번 터득하게 됐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핌DB] 2024.08.01 jyyang@newspim.com |
-그렇게 토론을 해서 산출된 결과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예를 들어 심사 제도가 있다. 모든 사업을 공모를 통해서 하는데 심사위원 풀이 2000명이 넘었다. 10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다 보니까 이제 거기에 활동하지 않는 분들도 있고 자격이 없는 분도 있고 불신이나 문제점들이 있었다. 그 심사위원 풀을 전체적으로 다 폐기를 하고 다시 시작하자 해서 응모, 공모를 해서 검증위원회를 거쳤다. 2000여 명이 넘던 풀을 660여 명으로 압축을 했다. 또 무한정으로 기한을 두는 게 아니라 3년이라고 하는 기한을 두고 계속 그것을 3년마다 바꾸는 조건을 뒀다. 사업도 근본적인 개선 없이 늘려가다 보니 무려 44개의 사업이 있었다. 예술인들은 사업 수가 많다 보니까 어디에 응모를 해야할지도 모르거나 어떤 측면에서 너무 세분화되고 쪼개지다 보니까 창작 훨동을 거기에 다 맞춰야 되는, 관제화되는 것 같다는 부정적 의견이 있었다.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끔 44개의 사업을 17개로 줄이고 우리 조직도 바뀌었다. 4본부 22개 부서로 돼 있던 거를 3본부 17개 팀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대변혁을 하게 됐다.
-지난 7월 24일에는 소극장 '학전'의 별이었던 김민기 대표의 발인식이 있었다. 위원장님도 참석하셨는데 학전이 이제 아르코 꿈밭극장으로 재탄생됐다. 예술위에서 운영하게 됐는데 그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린다.
▲김민기 선생님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정말 굉장한 감동을 주신 분이다.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를 위해서 직접 몸소 투쟁을 하셨던 분이고 그야말로 예술로 승화해서 투쟁을 하셨던 분이다. 그분이 만들어낸 그 많은 창작물 특히 노래가 투쟁을 하는데 힘을 하나로 묶는 어떤 촉매제가 되기도 했고 '아침이슬' '상록수'의 가사가 참 아름답다. 처음부터 현장 투쟁의 투쟁가로 만들어진 게 아닌데 80년대에 엄청나게 군사독재에 반발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게 되다 보니까 앞장서서 계속 투쟁을 하던 투쟁가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나왔는데 투쟁가를 따라 부를 수가 없으니 '아침이슬'을 부르니까 누구나 다 같이 부를 수 있어서 그게 운동가의 중심이 됐던 거다. 저도 그 80년대에 학생이었고 학생 운동을 앞장섰고 어떻게 보면 영웅과 같은 존재였던 분이다.
민주화가 되고 나서는 그야말로 문화 예술 활동을 하셨고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특히 어린이 청소년 극에 중점을 두셨고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일찌감치 아셨고 거기에 중점을 두셨는데 돈 되는 사업이 아니지 않나. 계속 빚도 지시고 어렵고 딴 데서 돈 벌어서 거기다 투자를 또 하시고 33년을 유지를 하시다가 학전 극장을 결국은 이제 몸도 망가지시고 더 이상 못하게 되신 거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보면 공공기관 국가가 해야 될 사업을 개인이 하셨다. 이제 우리가 공공적으로 해야 될 사업이다 해서 우리가 그걸 이어받아 계속해야 되겠다는 뜻으로 김민기 선생님께 학전 이름도 계속 쓰고 싶고 대표적인 레파토리 어린이 극인 '고추장 떡볶이'라든가 또는 '지하철 1호선' 뮤지컬 이런 부분은 정기적으로 매년 정례적으로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김민기 선생님께서 '제가 펼쳐놨던 일들은 저로서 그냥 정리를 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충분히 그 뜻도 이해가 돼서 받들기로 했다.
학전 대신에 그럼 김민기 선생님께서 지향했던 그런 정신의 맥을 이을 수 있는 이름은 무엇일까 공모했더니 한 2400건이 들어왔다. 그 중 3건을 전문가들하고 토론해서 고르고 그 걸 갖고 온라인 투표를 해서 선정된 것이 아르코 꿈밭극장이다. 아이들의 꿈을 일궈내는 밭이다 이런 의미로 학전이 배움을 일궈내는 밭이라는 걸 어린이를 중심으로 해서 꿈을, 상상력을 키워내는 밭으로 명명을 했다. 지난 7월 17일 날 정식 오픈을 했는데 일주일도 채 안돼서 김민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그래도 걱정하셨던 학전 그 맥을 이어서 꿈박극장이 간다라고 하는 것을 알고 돌아가셔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앞으로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고 그 뜻을 기릴 수 있는 극장으로서 어린 아이들에게 청소년들에게 무한한 꿈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런 밭이 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우리 시대는 승자 독식의 시대라고도 한다. 위원장께서도 흙수저론을 말씀하시며 구도를 지적하신 적이 있는데 청년들이 가장 크게 실망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 부분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린다.
▲어렵다. 이 문제는 참으로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과거에는 국가는 국가대로의 영역이 있었고 지역은 지역대로의 영역이 있었고 문화가 있는데 지금은 기술 발달로 인 3개가 하나가 됐다. 시장이 나눠져 있는 게 아니고 어떤 물건이 하나 만들어져서 히트를 치면 전 세계에 동시에 히트를 치게 되고 유사한 다른 상품이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 가면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는데 억지로 바꿀 수는 없다고 본다. 그 시스템을 어떻게 보완할 거냐 우리가 고민을 해야 한다. 기술이 변화하고 발달하고 지금 명실공히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는데 그 이전의 3차 산업혁명와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뭐 사람과 사람 간의 경쟁이 아니라 사람과 기계와의 경쟁이 시작된 거고 거기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되는 게 정치다. 세상은 지금 21세기를 달리고 있고 22세기를 향해서 가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정치는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기술 발달은 이만큼 와 있는데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법 규정 이런 부분들은 아직까지도 머물러 있다. 결국 보완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제도 개선이라고 본다. 정치하시는 분들이 시대의 흐름을 좀 더 공부하면서 빨리 캐치를 하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제 경험을 통해서 보면 우리나라가 방송통신 융합이 기술적으로 2004년도에 이루어졌다. 그럼 방송통신융합법을 만들어야 되겠구나 해서 그 문제를 논의했다. 근데 서로 잘 모르고 여야 간에 합의점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벤치마킹하러 가자 두 팀으로 나눠서 갔다 왔는데 가는 곳마다 한국이 여길 왜 왔냐고 했다. 거기선 한국이 지금 어떻게 하느냐 지켜보고 있는 제일 우리가 기술적으로 빨랐으니까. 자부심을 갖고 돌아와왔지만 오히려 우리끼리 싸우다가 겨우 2007년도에 가서야 법을 만들게 됐다. 그러고나니 다른 나라들은 이미 만들어진 나라가 한 서너 나라가 있다. 그러면서 뒤처지기 시작한 거다.
또 대표적인 게 지금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스마트폰이 애플에서 2007년도에 만들어졌다.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거를 들여와야 된다라고 했더니 이 하드웨어를 만드는 전자회사에서 그걸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래서 통신사들이 그걸 못 들여오더라. 계속 저는 이제 통신사에 압박을 했는데 결국은 KT가 2009년도에서야 들여왔다. 만약에 그때 들어오지 않았다라고 하면은 애플하고 LG든 삼성이든 더 격차는 더 벌어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측면들을 정치권이 근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빨리빨리 변한다.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걸 따라가더라도 관련된 제도를 만드는 데 2~3년이 뒤처지고 있는데 근데 지금은 그거에 대해서 거의 뭐 손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분이 있다. 승자 독식 이것을 탓하고 문제만 자꾸만 제기를 하지 이 문제가 왜 어디로부터 야기가 됐는지 어떻게 풀어가야 될 건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들을 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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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을 말씀하셨는데 5차례 국회의원 경험을 바탕삼아 AI 시대를 맞아 우리 나라 시스템 상 가져가야 할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제가 마지막 국회에서 4차 산업혁명특위 위원장을 했다. 특위는 이전서부터 있었는데 그 뒤에 맞고 보니까 엄청 격차가 벌어져 있더라. 잠시 외통위 있다가 돌아와서 그걸 하는데 순간이더라. 몇 년 사이에 엄청난 공부를 하지 않으며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런 부분은 공부 모임을 해서라도 아주 진짜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된다고 본다. 지금 보면 하루에도 수십 건의 세미나가 이루어지고 있고 아젠다들은 다 설정을 해서 가는데 진정성이라고 할까 보여주기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몇 건의 세미나를 했다 이런 식으로 흐르지 좀 더 더 심도 있는 토론 논의 그래서 어떤 결과물까지 끄집어내는 이런 작업들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가 않다.
처음엔 저도 세미나를 통해서 관심을 갖고 보다가 서로 다 워낙에 세미나 수가 많아지니까 다 의원들이 품앗이하는 형식으로 돌다가 보면 형식적으로 끝난다. 안되겠다 해서 비공개로 라운드 테이블을 해봤다. 오히려 훨씬 더 효과적이고 언론에 공표가 안 됐지만 나중에 결과물을 가지고 공표를 하니까 훨씬 더 관심도 있더라. 언론에 공표가 되면 거기 전문가 토론을 하러 온 사람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못한다. 이해관계가 늘 상충이 되니까. 그래서 비공개 라운드 테이블을 해서 민간, 관, 국회 다 같이 하니까 해결책도 나오더라. 그런 방식으로 좀 한번 방법들을 바꿔가면서 해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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