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연구자 김서라가 쓴 새로운 도시를 위한 제안서
'5·18의 도시', '민주주의의 고장', '노잼 도시' 이야기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전남 광주를 생각하면 '5·18의 도시', '민주주의의 고장' 그리고 '노잼 도시'이자 소멸 위험의 지방 도시가 떠오른다. 광주는 또 매년 5월 정치인들이 찾는 곳이자 잊을 만하면 가짜 뉴스에 휘말리는 정치적인 도시이다. 1980년 있었던 5·18 민주화운동의 이미지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40년 전 항쟁의 이미지는 지금 젊은 세대의 고민과 잘 이어지지 않는다. 광주는 다른 지방 도시들처럼 '지방 소멸' 담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광주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이미지와 함께 걷기' 표지. [사진 = 민음사 제공] 2024.08.29 oks34@newspim.com |
광주에서 나고 자란 철학 연구자 김서라의 '이미지와 함께 걷기'는 광주를 둘러싼 이미지에 대한 비평이자, 광주에서 살며 쓰는 광주 이야기이다. 그래서 '길에서 수집한 광주의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저자는 광주를 둘러싼 익숙한 이미지들 사이에서 낯선 이미지들을 발견하고, 광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을 보여 준다. 김서라는 사진 비평가처럼, 도시사 연구자처럼, 인류학자처럼 도시 곳곳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보여 준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대로 "몸을 움직여 읽고, 제 삶을 섞어 읽는" 그의 글은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를 탐색하는 에세이이자 그가 선 삶의 자리를 바꾸는 비평이다.
서울과 지방으로 양분된 한국에서 한 지방 도시가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방'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는 지방에 대한 말을 지방의 말로 다시 쓴다. '지방 소멸'이라는, 이제는 익숙해진 단어는 지방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기약 없는 헤어짐의 반복을 의미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란 '유잼 도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건물들, 재개발과 도시재생이라는 이름하에 거주지에서 밀려나는 사람들과 사라지는 기억들로 나타난다.
김서라는 수도권 중심 개발의 역사에서 지방 도시가 어떤 모양으로 바뀌며 어떻게 적응했는지, 그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모양 지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도시의 기억을 담은 오래된 길과 건물들은 사라지고 사람들 사이의 우연한 마주침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김서라는 일상에서 출발해 새로운 도시의 몽타주를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지와 함께 걷기'는 이미지 비평인 동시에 새로운 도시를 그리려는 기획자의 제안서이다. 값 1만6천원.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