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청소년들이 이를 규탄하는 시국언선문을 온라인에 게시하는 것을 두고 학교 측이 학칙을 이유로 제지하려 하자 교육 당국이 학칙 전수조사에 나섰다.
현행법상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보장돼 있는 만큼 이 같은 학칙이 사실상 문제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핌 DB] |
고등학생의 정치참여는 현행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2020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연령이 19살에서 18살로 낮아지고, 2022년 정치관계법 개정으로 16살부터 정당에 가입할 수 있다. 정당 가입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 행위다.
반면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A고교에서는 학생회가 비상계엄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게시하자, 학교 측이 학칙을 근거로 글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해당 시국선언문에는 '모든 정치적 행위와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겠다는 포고령 등은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와는 맞지 않는 내용'이라며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민주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후대에 전달한 불꽃이 더 당당히 타오를 수 있도록, 연대의 촛불로서 지켜낼 것'이라고 적혀 있다.
A고교 학생 168명의 실명도 포함됐다.
A고교 교장은 학생회에 "탄핵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에 학생 개개인이 공격받을 수 있다"며 실명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이후 개인 실명이 없는 시국선언문이 총학생회 이름으로 SNS에 올라갔지만, A교장은 학생회에 "정치참여 금지 조항이 있는 학칙을 근거로 외부에서 공격할 수 있다"라며 "시국선언문을 내려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A고교 학칙에는 정치 관여 행위를 한 학생에 대해 출석정지·퇴학 등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돼 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청소년의 정치적 의사 표시를 억압한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학생들이 원치 않는 연락을 받는 등 피해를 볼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장학을 실시하고 학칙을 바꾸도록 현장지도를 하겠다고 했다.
또 학생의 정치참여를 막는 학칙이 있는지 서울시내 고등학교 전체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학교 측은 총학생회 명의의 시국 선언문을 다시 SNS에 올릴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뒤늦게 밝혔다.
또 서울시교육청 지침에 맞춰 관련 학칙 내용을 모두 삭제하겠다고 덧붙였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난다씨는 "학교에서 민주주의, 민주시민에 대해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는 '공부나 해',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건 굉장한 모순"이라며 "배운 대로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다면 왜 가르치냐는 저항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 활동가 수영씨는 "정치 참여는 민주공화국을 구성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고 청소년도 당연히 배제될 수 없다"며 "청소년도 지금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시민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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