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지난 1일 조희대 대법원장의 한 마디에 유력 대선 후보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잔뜩 긴장한 채 대법원장이 읽어 내리는 판결문에 귀를 기울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하자 민주당은 곧바로 조 대법원장에 대해 탄핵을 검토하는 등 도마 위에 올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즉시 그를 청문회에 앉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의식했던 탓일까. 서울고법은 5월 15일로 예정됐던 이 후보의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했다. 사실상 이 후보의 대권 행보를 열어줬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판사의 손에 정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던 이 후보가 생환하자 민주당은 '조희대 특검법'을 상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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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박서영 기자 |
사법부에게 정치적 운명을 맡겼던 건 민주당뿐만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내부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을 찾았다. 김문수 후보는 당 지도부가 자신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려고 하자 법원에 후보자 취소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의 인용·기각 판단에 보수 정당의 최종 후보가 사실상 결정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사법부가 양당 대선 후보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 현실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치의 사법화'가 곧 '사법의 정치화'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두 권력 기관 서로가 서로를 옭아매는 관계로 전락했다는 성토가 터져 나온다.
한 정계 출신 법조인은 기자에게 "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달려와 정치의 옳고 그름을 따져 달라 할 땐 언제고, 막상 사법부가 결론을 내놓으면 정치 개입이란 프레임을 씌운다"며 속내를 토로하기도 했다.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건너뛰고 사법의 판단을 택하는 순간, 두 권력의 '불가근 불가원' 원칙은 깨지게 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정치와 사법은 가까워서도 안 되고 멀어서도 안 되는 어려운 줄타기의 연속이다. 이럴 때일수록 사법부는 더욱 법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상식적인 시각일 것이다.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빚어진 정치와 사법, 그리고 그 속에서 분열된 시민사회의 생채기가 깊다. 정치와 사법이 각자의 영역에서 건강한 견제 기능을 되찾길 바란다. 금명간 새로 선출될 국가 지도자가 부디 정치와 사법의 '불가근불가원'을 실현시켜 주기를.
seo0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