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서열 2위 SK...대기업에 척지는 사건, 대형로펌은 '쉬쉬'
손 많이 가는 집단소송, 수익은 크게 안남아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SK텔레콤(SKT) 유심 해킹 관련 집단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SKT가 국내 1위 통신사업자인 만큼 피해 규모가 상당한데다, 유심 해킹 이후 SKT의 대응이 소극적이고 미흡했단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23일 법조계에선 SKT 해킹 사태와 관련해 집단소송 참여자 규모는 조만간 2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중소 로펌 중심으로 SKT에 대한 집단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곳들이 늘고 있다.
전날 법무법인 대륜은 SKT 유심 해킹 관련 피해자 1000여명을 모아 집단적 손해배상 청구 공동소송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1인당 위자료 규모는 100만원이다. 김국일 대륜 대표는 "SKT가 최소한의 보호 조치만 하다가 발전하는 해킹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중대한 과실"이라며 "수사기관은 SKT가 정보보호 투자비를 다른 영리적 목적을 위해 사용한 건 아닌지 폭넓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륜 이외에도 대건, 거북이, 로집사, 엘케이비(LKB) 등 중소형 로펌도 소송인단 모집에 나서고 있다. 또 법률사무소 노바, 로피드 등도 참여한다.
반면 대형 로펌들은 SKT 해킹 관련 집단소송에 무관심하거나 관련 사건에 엮이는 것을 쉬쉬하는 분위기다. SKT 해킹 피해 관련 취재 요청에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SK 계열사 사건을 하고 있어 취재에 협조하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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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SK텔레콤 T타워 SUPEX홀에서 열린 해킹 사태 관련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해킹 사고 이후 19일 만에 고개숙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양윤모 기자] |
◆ 대기업 사건 주로 담당하는 대형로펌, "SK와 척질 우려"
주로 기업 사건을 담당하는 대형로펌 입장에선, 재계서열 2위인 SK그룹에 소속된 SKT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피해자 측 대리인으로 발을 담갔다가 SK그룹에 척을 져 SK그룹 계열사 사건을 맡지 못할 우려가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대기업 말고 중소, 중견기업 사건이 70~80프로 정도 된다고 하면 이들 역시 법률 자문을 위해 대형 로펌을 찾게 되는데, 대형로펌 입장에선 중소 중견기업 사건을 잘못 맡았다가 본의 아니게 상대측 대기업과 척을 지는 경우가 있어 사건 수임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SKT 건 역시 집단소송을 해 버리면 SK그룹 계열사 사건을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과거 2012년 법무법인 화우는 '삼성가(家) 상속분쟁'에서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이 회장의 형 이맹희 씨와 누나 이숙희 씨의 소송을 모두 대리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통상 대형 로펌에게 국내 대기업은 잠재적 고객이어서 재계서열 1위인 삼성 오너가에 척을 지는 민감한 소송은 대형로펌이 잘 맡지 않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화우는 삼성자동차 부채 소송,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망 사건 등을 대리해 승소 또는 일부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바 있는데, 화우가 이 때문에 당시 삼성 계열사 사건을 몇 년간 맡지 못했단 얘기가 전해진다.
◆ 집단소송 로펌에 돈 될까? 손 많이 가지만 수익은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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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SK텔레콤 유심 해킹 피해자 9213명, 집단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법률 대리인 하희봉 변호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
집단 소송은 통상 사건에 손이 많이 가는 반면 수익이 크게 남지 않는다는 점 역시 B2B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대형로펌들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이유가 된다.
과거 KT는 2012년과 2013~2014년 해커 공격으로 각각 고객 870만명과 12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KT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두 건 모두 기각하고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2년도 소송에서 법원은 KT가 법이 규정한 기술적, 관리적 보호 조치를 다했음에도 고도의 해킹을 당한 것으로 봐 책임이 없단 판결을 내렸고, 두 번째 개인정보 유출 건과 관련해서도 동일한 판결이 났다.
법적으로 해킹을 통한 피해의 인과관계를 피해자 쪽에서 입증해야 하는데, 해커인 주범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 측이 인과관계를 입증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2018년 12월엔 대법원이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와 피해자 강모씨 등 112명이 국민카드와 코리아크레딧뷰로(KCB)를 상대로 낸 개인정보유출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민카드와 KCB가 공동으로 강 씨 등에 10만원을 배상하란 판결을 나기도 했다.
과거 집단소송을 여러 차례 경험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집단소송은 의뢰인에게 사건을 일일이 다 설명해야 하고 서류를 받아야 해 손이 많이 가는데 반해 홍보 단가가 일반 사건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면서 "만약 위자료 청구를 100만원을 해서 10만원만 인정돼 90% 패소한다면 상대편 변호사비를 물어줘야 해 사건대리를 해도 변호사비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abc12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