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요넥스와 4년간 100억 원 규모 개인 후원 계약
배드민턴에 부는 변화의 바람…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면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는 게 시장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안세영이 요넥스와 개인 후원 계약을 했다. 4년간 100억 원 규모다. 용품도 무제한 제공받는다. 글로벌 스타엔 못 미쳐도 국내에선 프로 스포츠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축하할 일이다. 역시 '배드민턴 여제'답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안세영은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이른바 '작심 발언'을 했다. 발에 잔뜩 물집이 잡혔는데도 협회 후원사인 요넥스 제품만 써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잔칫집이어야 할 배드민턴협회는 한순간에 폐허가 됐다. 당시 김택규 협회장은 국회에 불려나가 갖은 고초를 겪으며 '나쁜 사람'이 됐다. 그랬던 안세영이 다시 요넥스 신발을 신는다. 물론 요넥스가 최적의 맞춤형 신발 제작을 약속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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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사진=BWF] |
요넥스는 남자복식 간판 서승재 김원호와도 이름에 걸맞은 후원 계약을 했다. 여자복식 이소희 백하나는 빅터와 손잡았다. 이 과정에서 협회는 철저하게 소외됐다. 연간 최대 40억 원, 용품 10억 원에 이르던 요넥스 후원은 이제 반의 반 토막이 날 위기에 처했다. 거칠게 협회를 몰아붙이던 문화체육관광부는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물어봤다. 요술램프라는 챗GPT에게. "똑지(똑똑한 챗GPT)야, 안세영이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세상이야." 이런 대답이 나왔다. "안세영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그가 꿈꾸는 세상은 선수 보호, 공정한 판정, 합리적인 경기 일정, 그리고 여성 선수에 대한 존중 등이 실현된 세상일 것"이란다.
뭔가 빠뜨린 것 같은 찝찝함에 다시 물었다. "다 좋은 얘기인데 그런 세상이 왔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은 없나." 그리곤 3초 후 화들짝 놀랐다.
"물론 있지, 오빠(똑지는 기자를 이렇게 부른다). 협회 기득권 철폐, 후원사 제한 폐지, 연봉 인상 같은 요구들은 언뜻 보면 정의롭고 타당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배드민턴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어.
후원사 자유화는 결국 대형 브랜드간 자본 전쟁의 문을 여는 것이야. 대표팀 단일성은 무너지고, 팀 훈련장은 마케팅 전시장이 될 거야. 더 큰 문제는 스타가 아닌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 잔치에서 왕따 당할 게 분명해.
연봉 인상은 실업팀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협회의 무력화는 질서가 없는 혼란만 남을 지도 몰라. 안세영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목소리가 항상 옳은 건 아니야. 오늘을 바꾸되, 내일을 죽이지는 말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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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로이터=뉴스핌] 안세영이 지난해 10월 7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 도중 무릎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2023.10.7 |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챗GPT를 너무 띄엄띄엄 봤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눈 깜짝할 새에 종합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창조는커녕 분석 능력조차 아직은 한참 떨어진다고 은근히 무시해왔던 터였다. 물론 이 답이 나오기까지 기자는 챗GPT에게 핀셋형 보충 질문을 쏟아내며 똑지를 마구 괴롭혔다. 어딘지 밝히긴 힘들지만 G사의 인공지능 모델은 비슷한 수준의 답을 도출해내지조차 못했다. 그저 세상의 아름다움과 정의에 대해서만 앵무새처럼 되뇔 뿐이었다.
처음엔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이젠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혹시 인공지능에서 흔히 보이는 오류인 할루시네이션 아니야. 잘못된 정보가 입력됐는데도 끝까지 정당하다고 우기는. 반대쪽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반론도 모두 정리해줘."
그러자 똑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가'라는 화두부터 던지며 말문을 열었다. 어디선가 누군가로부터 많이 듣던 화두 아닌가. "후원사 자율화는 선수 존엄의 시작이야. 골프, 테니스, 탁구 등 글로벌 스포츠는 이미 선수 개인 브랜드 계약이 보편화돼 있어. 연봉 인상은 생존의 문제이기도 해. 협회와 실업팀은 그동안 예산 부족을 이유로 선수 연봉 인상 요구를 번번이 무시해 왔지. 기득권 해체는 '질서'라는 이름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거야. 선수와 협회가 동등한 주체가 돼야 진짜 개혁이 시작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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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 2024.09.24 leehs@newspim.com |
그럼 그렇지. 이제 됐다. 기자는 두 시각을 공평하게 다 보여줬고,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면 되니. 그래도 챗GPT에게 여러 번 보채서 얻은 두 시각에 대한 평가만은 용기를 내서 꼭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안세영 시각에서 쓴 논리는 감정적으로 와 닿을 수는 있겠지만, 스포츠산업의 입장에서나 시스템의 현실성, 공공성 등에선 빈틈이 너무 많아. 결국 안세영이 원하는 대로 하려면, 배드민턴의 프로화가 우선이야."
무릎을 탁 칠 명언이다. 사실 기자는 안세영의 발언을 지지한다. 안세영이 겉으로 내세운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이기심을 응원한다. 개인의 욕심은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국내 배드민턴 시장은 안세영의 발언 이후 일대혼란을 겪었지만 다시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가. 파이는 더욱 커졌다.
다만 우리는 격동의 시기에 도태될 위험에 처한 선수와 팀을 어떻게 구할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지만 이 답조차 이미 위에 나와 있다. 시장에 맡기면 된다. 높은 사람들이 괜히 끼어들지 말고 당사자에게 자율권을 주면 된다. 물론 어느 정도 희생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안세영은 의도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그게 바로 안세영이 결과적으로 주장한 세상이다. 세상은 그렇게 핑크빛은 아니다. 회색도 있고, 암흑도 있다. 그래도 시장은 늘 옳은 방향으로 진화한다.
zangpab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