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14번째 팀 캔자스시티 유니폼 입고 출격
역대 두번째 최고령 선발... 5이닝 3실점 패전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가히 '투혼(投魂)'이었다. 20년 전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리글리필드 마운드에 올랐던 리치 힐(45·캔자스시티 로열스)이 다시 그곳에 섰다. 메이저리그(MLB) 통산 387번째 등판으로 등번호도 유니폼 색도 바뀌었다. 젊은 시절 만큼의 빠른 공은 던지지 못했지만 노장의 열정과 투지는 불꽃같았다.
1980년생 좌완 힐은 23일(한국시간) 미국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컵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6피안타 3실점(1자책)을 기록했다. 팀은 0-6으로 져 힐은 패전 투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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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리치 힐이 23일 메이저리그 컵스와의 원정 경기 1회 역투하고 있다. 2025.7.23 psoq1337@newspim.com |
경기 후 힐은 "2005년 이곳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다시 이 마운드에 설 줄은 몰랐다"며 "올해 스프링캠프에 참여하지 못할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훈련하며 내 안에 뭔가가 남아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은 항상 변하지만 나는 늘 다음 등판을 준비해왔다. 다시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힐은 이날 포심패스트볼(최고 147㎞) 35개, 커브 28개, 슬라이더 16개, 스위퍼 6개, 체인지업 5개를 던졌다. 구속은 줄었지만 브레이킹볼의 각은 여전히 예리했다. 특히 커브는 컵스 타자들의 타이밍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2회 실책 2개로 불운한 실점을 기록했다. 5회엔 피트 크로-암스트롱에게 적시 2루타를 허용했다. 실점 대부분은 운이 따르지 않다. 타선의 침묵 속에 힐은 패전을 떠안았지만 리글리필드에 모인 관중은 그가 돌아온 사실만으로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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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리치 힐이 23일 메이저리그 컵스와의 원정 경기 1회 역투하고 있다. 2025.7.23 psoq1337@newspim.com |
지난해 9월 5일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구원 등판한 것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사라졌던 힐은 약 10개월 만에 다시 빅리그 마운드에 복귀했다. 지난해 보스턴에서 방출당한 후 11월에 열린 미국 대표로 프리미어12에 출전했다. 올 5월 캔자스시티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생존을 도모했다. 퓨처스리그에서 11경기 4승 4패 평균자책점 5.22를 기록한 그는 캔자스시티 선발진 부상으로 콜업됐다.
'저니맨' 힐의 이력은 MLB에서도 유례없는 여정이다. 컵스를 시작으로 볼티모어, 클리블랜드, 다저스, 메츠, 트윈스, 파드리스, 보스턴 등 총 14개 구단을 거쳤다. 이는 에드윈 잭슨과 함께 메이저리그 최다 팀 소속 동률 기록이다. 이날로 그는 MLB 역사상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선발 투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MLB 역대 최고령 등판 기록은 니그로리그의 사첼 페이지가 갖고 있다. 그는 1965년 58세 나이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현 애슬레틱스)에서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 등판은 일회성 이벤트였다. 페이지가 마지막으로 풀타임 시즌을 보낸 것은 46세이던 1953년이었다.
힐의 공에는 20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시작했다. 수없이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마운드를 떠나지 않았다. 힐의 야구는 아직 진행형다.
psoq133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