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에 "'바주카' 발동 준비하라" 압력… 지지 세력 결집도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 30% 관세 부과를 예고한 가운데 무역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EU 내 영향력이 가장 큰 독일과 프랑스가 강력한 보복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 나라는 협상을 이끌고 있는 EU 집행위에 보복 조치 준비를 압박하는 한편 다른 회원국들을 설득해 지지세를 규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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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로이터=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프리드리히 메르츠(왼쪽) 신임 독일 총리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트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전날 독일 연방의회에서 1차 총리 선출안이 부결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독일의 열 번째 총리에 올랐다. 2025.05.07. ihjang67@newspim.com |
이 같은 움직임에서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독일의 입장 변화였다. 독일은 이전까지는 협상을 통해 타협안을 만드는 전략을 지지했는데 최근에는 강경한 대응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조기총선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중도보수 기독민주당(CDU) 소속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에 대한 철저한 신봉자지만 무역 갈등 이슈에서는 미국과의 갈등 또는 대결 국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FT는 "프랑스는 그 동안 줄곧 보복 관세를 활용해 미국 업계에 고통을 줌으로써 트럼프에 대한 지렛대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이런 담론에 독일이 합류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마크 페라치 프랑스 산업부 장관은 독일 베를린에서 카테리나 라이헤 독일 산업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협상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보복할 수 있어야 하고, 협상의 균형을 바꿀 수 있는 모든 옵션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U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30%를 적시한 편지를 보낸 것이 상황을 크게 악화시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EU 관계자는 "이 편지로 인해 회원국들의 분위기가 강경해졌다"고 했고, 또 다른 인사는 "독일은 며칠 만에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고 했다.
관건은 EU가 소위 '무역 바주카'로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Anti-Coercion Instrument)'를 실행하는 수준까지 갈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ACI는 다른 나라가 통상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되면 수·출입과 서비스 제한, 외국인 직접투자와 금융시장 접근 기회 차단, 지적재산권 보호 배제 등 무역과 관련해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재량권을 EU 집행위에 부여하도록 한 제도이다.
ACI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다.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과의 협상이 불발되고, 미국이 실제로 30%의 상호 관세를 매길 경우 ACI를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EU 회원국은 트럼프와 미국의 반발을 우려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 집행위의 한 관계자는 "ACI 발동을 반대하는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ACI는 핵무기"라며 "상황이 너무 유동적이라서 회원국들이 이를 지지할지 확실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럽 외교가에서는 EU 집행위가 단계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1단계로 미국이 8월 1일 관세 부과를 시작하면 닭고기와 청바지 등을 포함한 210억 유로 규모의 미국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매기고, 이후 회원국들의 투표를 거쳐 2차 보복안이 가결되면 보잉 항공기와 버번 위스키를 포함한 연간 720억 유로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관세가 부과한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미국과의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바주카 발동이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로프 길 EU 집행위 무역 대변인은 이날 "8월 1일 이전에는 어떤 대응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때까지는 협상에 집중할 것이며, 당분간은 협상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