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연인이 필요했을까'
'숨김'과 '거리 둠'이라는 전략적 시쓰기를 통해 존재의 근원 탐구
[대구=뉴스핌] 김용락 기자=개성적인 시쓰기로 한국 여성시단의 주목받는 중견인 이규리 시인이 새 시집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연인이 필요했을까'(문학동네)를 펴냈다. 이 시집은 총 4부 59편의 시와 김소연 시인의 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규리 시인은 '숨김'과 '거리 둠'이라는 전략적 시쓰기를 통해 일상의 그늘에 가려진 사물과 존재의 근원을 맹렬히 탐구하는 지적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시집도 그의 이러한 시적 경향이 잘 드러나 있다.
"폭력은 자라지 않는 게 아니라 잘 잘라주는 거야/부추가 일러주었다/약한 사람은 거드리지 마,/그게 골목의 룰이잖아/그런데 왜 날이 새면/길 건너 여린 초록의 피 흘리는 소식이 오고/포탄더미를 들추는 손이 있는지/이거 초현대적이야/부추를 보고 생각이 많아지면"('부추 생각'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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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김용락 기자] 이규리 시인이 새 시집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연인이 필요했을까'를 출간했다.[사진=문학동네] 2025.07.31 yrk525@newspim.com |
주부들이 식탁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부추를 통해 시인은 전 지구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살상을 환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폭력의 악순환을 잘라주고 없애는 것은 인류의 당위이다. 그러나 그 당위가 비 당위로 흘러가는 게 현대적 인간의 삶이다.
부추의 여린 잎사귀 같은 손으로 포탄더미를 들추고 죽은 부모형제를 구하려는 울고 있는 어린소녀를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일상적으로 보고 있다. 그 어린이들이 흘리는 초록의 피를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 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시는 강렬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규리 시인은 상황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거리를 두고 이면으로 숨기는 시적 전략을 통해 자기 시의 부력을 극대화 하고 있다. 이 시인은 " '천강성이란 별은 길방을 비추기 위해 자신은 흉방에 위치한다'는 교리처럼 천강성이 위치한 곳이 불편의 자리이고, 그곳이 바로 시인의 처소라 여깁니다"('오늘의 문장들' 중)라고 밝힌 바 있다.
이규리 시인은 경북 문경 출생으로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당신은 첫눈입니까' 등과 산문집 '시의 인기척' '사랑의 다른 이름' 등 여러 권이 있다. 질마재문학상, 대구시인협회상, 시산맥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yrk5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