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문제에서 자신들의 결정 의사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평화 중재 구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요르단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서방이 러시아를 배제한 채 집단안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결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현실성 없는 유토피아, 갈 곳 없는 길(a road to nowhere)"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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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사진=로이터 뉴스핌] |
이는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 수뇌부가 화상 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방안을 논의한 데 대한 반응이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평화협정 체결 시 다국적군을 국경 인근에 배치해 완충지대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나토 헌장 제5조(집단방위조항)를 근거로 러시아의 추가 공격을 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일정한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지상군 파병에는 선을 긋고 있다. 대신 공중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유럽이 주된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탈리아 일간 라 스탐파 등 유럽 매체들은 이 같은 구조가 '유럽군 주둔 + 미국의 무기·기술 지원' 형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안전보장의 세부 내용이 향후 열흘 안에 마련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문제의 핵심이 '미국 주도의 서방'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는 진정으로 신뢰할 만한 안전보장에는 찬성한다"며 2022년 전쟁 초기 이스탄불 협상에서 논의된 초안을 다시 언급했다. 당시 초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하는 대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에 사실상 '거부권(veto)'이 주어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이를 거부했다.
앞서 18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회담을 가진 뒤 트럼프 대통령은 러·우크라이나 양자 정상회담에 이어 미국이 포함된 3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회담이 이르면 2주 안에 열릴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러시아가 안전보장 문제에서 결정권을 요구하면서 실제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국과 유럽이 종전 구상을 서두르는 가운데,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가 협상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