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분야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청구서' 예상
동맹 현대화·국방비 증액·관세협상 후속조치 등 망라
'가치 공유하는 동맹'에서 '거래하는 동맹'으로 변화
동맹 유지 위해 '새로운 협력 모델' 조속히 찾아야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미국 워싱턴DC에서 25일(현지 시간)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정상회담은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으로 한·미 동맹은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협력 모델을 조속히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안보 동맹에 경제 동맹을 더하고 글로벌 이슈를 같이 고민하는 가치 동맹으로 진화했던 한·미 관계는 이제 거래의 균형점을 맞춰야 유지될 수 있는 현실적 관계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에게 보여줄 모습은 '70년 동맹 역사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미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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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뉴스핌] 김학선 기자 = 한일·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해외 순방길에 오른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23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2025.08.23 yooksa@newspim.com |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제·통상·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조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이 대통령 방미 일정보다 먼저 워싱턴DC를 방문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 조 장관이 의제 조율을 위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동한 결과를 보면 미국의 압박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외교부는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료에서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미래지향적 의제와 안보, 경제,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성과 사업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 국무부가 공개한 자료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다. 국무부는 "루비오 장관과 조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억지력을 강화하고, 공동 부담 분담을 증대하며, 미국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무역 관계의 공정성과 상호성을 회복하는 미래 지향적인 의제 중심으로 한·미 동맹을 발전시키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측 자료에 나온 '인·태 지역 억지력 강화'는 주한미군을 중국을 견제하는 데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 공동 부담의 분담 증대는 한국의 국방예산 증액과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더 많은 분담을 뜻한다. 미국 제조업 활성화와 무역 공정성 회복은 지난달 타결된 관세 협상의 후속 조치를 구체적으로 확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같은 미국의 거센 압박에 대응하는 정부의 전략은 수세적이다. 지키는데 주력하고 내줄 수밖에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것을 최대한 얻어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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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방미 일정에 앞서 한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미국에 먼저 도착한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3일(현지 시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백악관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2025.08.23 |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목표로 '한·미 경제, 통상 안정과 안보 측면에서 한·미 동맹 현대화, 한·미 간 새로운 협력 분야 개척' 등 3가지를 제시했다. 미국의 관세·투자·구매 요구를 적정한 수준에서 막고 주한미군의 성격과 역할 변화가 한국의 안보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정하고, 첨단 기술 협력 분야에서 새로운 한·미 협력 모델을 찾겠다는 의미다.
특히 정부는 첨단기술 협력에 원자력 분야를 포함시켜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여기에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핵연료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권한을 얻겠다는 목표도 포함돼 있다.
미국의 핵비확산정책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농축·재처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는 것은 정상적 관점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로 여겨지던 것"이라면서 "정부가 지금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한·미 동맹 재조정을 통해 한국에 요구하는 수준과 규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끝날 때까지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가변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한·미 관계가 이번 정상회담 이전과 이후로 구별되고 한국민은 한·미 동맹이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open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