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비 반입 건별 허가 전환…첨단 공정 전환 제동
중국 생산 경쟁력 약화…글로벌 공급망 불안 가중
투자 축소 불가피…미국·동남아 거점 확대 압박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적용돼 온 포괄허가 제도(VEU)를 전격 취소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르면 내년부터 중국 내 생산거점에 미국산 장비를 들여올 때마다 일일이 상무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존 운영은 일부 허용되지만, 공장 증설이나 첨단 공정 업그레이드는 사실상 차단되는 셈이다. 첨단 공정 전환이 사실상 막히면서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3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다음달 2일 관보에 정식 게시되고, 이로부터 120일 후부터 실행된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부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 신규 장비 반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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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은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에서 핵심 거점이다. 시안 공장은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 가까이를 담당하며, 우시 공장은 전 세계 D램 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진다. 두 공장 모두 노광·식각·증착 등 핵심 공정에서 미국 장비업체 장비에 의존하고 있어 VEU 없이는 안정적 생산이 어려웠다.
VEU는 미국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기업에 부여해온 포괄허가 제도다. 이를 통해 지정 기업은 특정 품목을 중국 공장으로 반입할 때 건별 심사 없이 들여올 수 있었다. 삼성과 SK는 그동안 이 제도를 활용해 장비 교체나 라인 업그레이드를 신속하게 처리해 왔다. 그러나 이번 취소로 단순 유지·보수를 제외한 장비 반입은 허가 불확실성이 커졌다. 심사 기간이 길어질 뿐 아니라, 미세공정 전환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 등은 허가 자체가 불허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경우 시안 공장에서 고부가 낸드 생산 비중을 확대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중국 내 고객사 수요 대응에도 불안 요인이 커졌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우시 공장은 주력 제품인 D램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기지인데, 이번 조치로 차세대 공정 전환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내 생산 경쟁력이 흔들리면 글로벌 고객사의 주문을 한국이나 미국, 동남아 생산거점으로 돌려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용 부담은 급격히 늘어난다.
투자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삼성과 SK 모두 중국에서의 신규 투자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고, 대신 미국 내 공장 증설이나 동남아 거점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곧 자본 지출과 운영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이미 미국 내 공장 건설과 장비 반입에 상당한 금액이 투입되고 있어, 기업 재무 구조에 적지 않은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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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의 모습. [사진=SK하이닉스] |
글로벌 경쟁 구도 변화도 주목된다. 삼성과 SK가 중국 내 첨단 라인 전환에 제약을 받는 동안 중국 기업들은 자국 장비업체와 협력해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다. 특히 양쯔메모리(YMTC)나 SMIC 같은 중국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은 한국산 제품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미국 장비업체들은 대중국 매출 감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램리서치(Lam Research),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 KLA 등은 한국 기업 중국 공장에 장비를 공급해왔지만, 개별 허가 체제로 전환되면 매출 축소가 불가피하다. 다만 이는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감수하는 조치로,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자체를 늦추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생산 거점 전략을 재점검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업계 관계자는 "VEU 취소는 사실상 한국 기업의 중국 생산을 유지 수준에 묶어두겠다는 의미"라며 "삼성과 SK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더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게 됐다"고 말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