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R 검토로 글로벌 재평가 노려…투자 환경 개선 기대
자사주 소각 압박 커지는데…소각 대신 '활용 전략' 모색
소각 의무화 앞두고 대기업들 긴장…예외 규정 해석도 쟁점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미국 예탁증서(ADR) 상장을 검토하며 시장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국내 시장에 묶여 있는 기업가치를 글로벌 기준으로 재평가받기 위한 움직임이다. 경쟁사 마이크론과 벌어진 밸류에이션 격차가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해야 하는 규제가 추진되면서 기업들은 소각 대신 활용 전략을 찾는 데 속도를 내고 있고, SK하이닉스의 ADR 검토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소각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예외 규정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며 대기업들의 대응 전략이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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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하이닉스 이천 M14 전경 [사진=SK하이닉스] |
◆ADR 발행, SK하이닉스의 이득은
11일 관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보유 자사주를 활용해 ADR 상장을 검토하면서 기업가치 재평가 기대가 커지고 있다. ADR은 한국 주식을 미국 투자자가 달러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증서 형태의 상품이다. 기초 주식은 한국에 둔 채 미국 금융기관이 이를 예탁받고 증서를 발행하는 구조라 신규 주식 발행이 필요 없고 기존 지분 희석도 발생하지 않는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자본 접근성을 넓히기 위해 선택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SK하이닉스가 ADR 발행을 검토하게 된 배경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업가치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HBM 등 AI 메모리 시장에서 세계 1위다. 하지만 기업가치는 국내 시장의 평가에 묶여 있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경쟁사인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와 사업 모델과 실적 흐름이 거의 겹치는 기업이지만, 시장이 매기는 가치는 크게 다르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11배로, 미국에 상장된 마이크론의 31배와 뚜렷한 격차를 보인다. PER은 기업이 1원을 벌 때 시장이 얼마의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같은 이익을 내더라도 어떤 시장에 상장돼 있느냐에 따라 기업가치가 최대 3배까지 차이 날 수 있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의 이번 검토는 단순한 상장 방식 논의가 아니라 기업가치를 글로벌 기준으로 다시 평가받겠다는 전략적 시도로 해석된다. 미국에 상장할 경우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와 같은 글로벌 반도체 지수에 포함될 가능성도 생긴다. 지수에 따라 움직이는 펀드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도 커진다.
TSMC의 사례는 ADR 발행이 어떻게 기업의 투자 여력을 넓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TSMC는 지난 1997년 뉴욕증권거래소에 ADR을 상장한 뒤 글로벌 투자자 기반이 빠르게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대만 증시에 상장된 본주 가치까지 함께 상승했다. 뉴욕시장에서 거래된 ADR 가격이 본주보다 높은 수준을 형성하자, 시장에서는 TSMC의 기업가치를 미국 반도체 기업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본주 재평가로 이어졌으며, TSMC는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바탕으로 이후 대규모 설비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조달할 수 있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인정받은 기업가치가 투자재원 확보 능력을 높여준 셈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600조, 청주에 42조를 단계적으로 투입 중이지만 초대형 자금 조달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의 ADR 발행 등 적극적 주주환원이 현실화될 경우, 적정가치는 마이크론의 밸류에이션을 즉각적으로 초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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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사진=뉴스핌DB] |
◆그런데 왜 자사주를 활용한 ADR인가
SK하이닉스는 ADR에 상장하는 주식으로 자사주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논의되면서 기업이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 3차 개정안에는 신규 취득한 자사주는 1년 이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1년 6개월 이내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해당 개정안을 연내 처리한다는 방침으로, 기업들은 자사주 활용 전략을 서둘러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ADR 발행에 사용된 자사주도 소각 대상에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스톡옵션, 우리사주제도와 같은 임직원 보상이나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친 경우 등 사전에 주주총회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ADR 상장을 자사주 소각을 피하려는 우회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도 있다. 11일 열린 민주당과 경제8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자사주 소각 대상의) 예외를 얼마만큼 허용할 건지, 또 어떤 절차로 허용할 건지, 또 실제로 법에 담긴 그런 내용들이 현실적으로 작동할 건지. 이런 데 대해서는 같이 한번 또 머리를 맞대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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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민주당 코스피5000특위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와 경제8단체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
SK하이닉스 관계자는 "ADR 발행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중 거론된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며 "자사주를 활용을 비롯한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자사주를 5.15% 보유하고 있다. 다만 지난 2023년 발행한 교환사채(EB)의 교환 대상 물량이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활용 가능한 자사주는 2.4%로, 약 10조원 규모다.
10조원 규모의 ADR 발행으로는 연간 수십조가 넘는 SK하이닉스의 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실제로 의미있는 효과를 거두려면 자사주를 추가 매입한 뒤 ADR 발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yu@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