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 정부가 반도체 부활의 기치를 내걸고 집중 육성하는 차세대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혼다·캐논·교세라 등 20곳이 넘는 신규 기업이 출자한다고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소니그룹 등 기존 주주도 자금을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어서, 라피더스는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목표였던 1300억엔(약 1조2300억원) 규모의 민간 자금 조달에 사실상 청신호를 켠 상태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 재건' 구상이 본격적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주요 기업 총출동...일본식 '반도체 연합' 확대
라피더스는 올해 안에 각 기업과 공식 합의를 맺고, 2026년 3월까지 출자를 받는다. 출자액은 기업별로 5억~200억엔 규모다. 협상이 진행 중인 기업도 있어 출자 기업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새롭게 출자하는 기업에는 캐논·교세라·후지필름HD·우시오전기, 세이코엡손, 닛폰익스프레스홀딩스, 노비보사이, 알고그래픽스, 나가세산업, 홋카이도전력 등 일본 제조·물류·소재 기업이 대거 포함됐다.
기존 주주 중 후지쓰·소니그룹은 각각 최대 200억엔 출자를 조정 중이며, 금융권에서는 3대 메가뱅크와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이 최대 250억엔을 출자한다. 지방은행들도 공장 위치가 있는 홋카이도 중심으로 참여를 확대했다.
또한 메가뱅크 3곳은 출자와 별개로 2027년 이후 최대 2조엔 규모의 대출을 제공할 계획이다.
◆ 라피더스는 어떤 기업인가
라피더스는 2022년 8월 토요타·NTT·소프트뱅크·소니·NEC·덴소 등 일본 대표 제조기업들이 공동 설립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이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쇠퇴하며 메모리·파운드리 시장에서 세계 경쟁력을 잃은 상황을 되돌리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다.
현재 라피더스는 홋카이도 치토세시에서 회로 선폭 2나노미터(nm) 반도체의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TSMC·삼성전자 등 글로벌 선두 기업이 경쟁 중인 최첨단 공정이다.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 지원에 누적 2조9000억엔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2026~27년에 1조엔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라피더스는 2031년까지 총 7조엔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추산하며, 이 중 민간 출자 1조엔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 왜 일본은 반도체에 다시 거대한 돈을 쏟아붓나
1980~90년대 일본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반도체 왕국'이었다. NEC·히타치·도시바 등은 세계 시장 점유율 50%를 넘겼다.
그러나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수출이 제한되고 한국·대만 업체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급부상하면서, 제조 장비·EUV(극자외선)·파운드리 전환에 대한 대응이 늦었던 일본 기업은 빠르게 경쟁력을 잃었다.
최근 일본이 다시 반도체 육성에 나선 이유 중 하나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다.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에 일본이 중요한 파트너로 포함되면서, 첨단 공정 확보가 국가 안보 이슈로 격상했다.
일본의 주요 수출 산업인 자동차 업계도 반도체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자동차 산업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토요타나 덴소 등 자동차 기업이 대규모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전력·토지·보조금 등에서 지원을 아까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 규모에서 이미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본은 자체 기술 기반의 차세대 파운드리를 확보하기 위해 라피더스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 日, 다시 파운드리 경쟁의 본무대에
라피더스는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EUV 노광 기술 및 양산 공정 완성도 ▲고객 확보 문제 ▲주주 급증에 따른 의사 결정 지연 가능성 ▲7조엔 조달의 장기 로드맵 불확실성 등 여러 난관이 지적된다.
그럼에도 일본 내부에서는 "산업 재건을 위한 마지막 기회" "정부·대기업·금융권이 동시에 움직이는 드문 프로젝트"라는 평가와 함께 라피더스를 통해 반도체 부활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고 있다.
만약 라피더스가 계획대로 2나노 양산에 성공할 경우, 일본은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와 함께 다시 파운드리 경쟁의 본무대에 올라선다.
goldendo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