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유럽 8개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던 기존 발표를 철회하면서 그 이유로 이 섬에 '전면적 접근권'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미 75년 전부터 이런 권리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오래된 와인을 새 병에 담는 수준"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2일(현지 시간) "그린란드의 미래를 둘러싼 협상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둔 확대, 적대 세력 저지, 섬 일부 지역에 대한 미국의 주권 주장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는 기존 합의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유럽의 관계자들, 동맹국들은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문을 제기한다"고 했다.
미국과 덴마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1년 임시 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유럽의 덴마크는 독일 나치에 점령돼 있었는데 미국 워싱턴 D.C.에 주재하고 있던 덴마크 대사가 본국과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미국 정부와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이 그린란드에 군사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이후 적극적인 군사 작전을 벌여 독일군을 그린란드에서 쫓아냈다.
미국과 덴마크는 1951년 정식으로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은 그린란드 전역에 군사 기지를 건설·설치·유지·운영하고, 인원을 수용하며, 선박·항공기의 착륙·이륙·정박·이동·운용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미군은 냉전 때 그린란드에 12개 이상의 군사 기지를 설치했고, 1만명이 넘는 병력을 주둔시켰다. 이후 안보 위협이 줄면서 미사일 조기경보 시스템을 운용하는 피투피크 우주기지만 제외하고 나머지 기지는 모두 폐쇄했다. 피투피크 기지는 북극을 가로지르는 탄도미사일을 추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100여명의 병력이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국방부 북극 및 지구 복원력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아이리스 퍼거슨은 "(1951년) 협정은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안보 이익을 파악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엄청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 위협 때문에 그린란드를 반드시 병합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은 그동안 이전에도 제기됐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7일 "냉전 시절 체결된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그린란드에서 폭넓은 군사적 접근권을 갖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내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짐 타운젠드 전 미 국방부 나토·유럽 담당 차관보는 "(지금 논의되고 있다는 내용의) 대부분은 오래된 와인을 새 병에 담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전 세계 모든 미군 기지는 주권에 대해 협상한다. 그린란드에서만 특별히 새 권리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을 가진 뒤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극권 전역을 아우르는 안보 합의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며 다음달 1일로 예고했던 유럽 8개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취소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2일에는 폭스뉴스 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그린란드에 대해 전면적 접근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현재 세부 사항을 협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면적 접근권에 대해 "끝도 없고, 시간 제한도 없다(no end, no time limit)"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