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올림픽. 그러나 현실은 점점 더 정치의 한복판을 향해 끌려 들어가고 있다. 밀라노·코르티나의 빙상과 설원도 예외는 아니다.
AP통신의 10일(한국시간) 보도에 따르면, 출발점은 미국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헌터 헤스의 짧은 발언이었다. 이민자 단속 강화 과정에서 시위자가 숨지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그는 "성조기를 달고 뛴다고 해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국가 정책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선 긋기였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섰다. 그는 SNS를 통해 헤스를 "진짜 패배자(Real Loser)"라고 지칭하며 "올림픽에서 그를 응원하기 힘들 것"이라고 공개 저격했다.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이민 2세 올림픽 스타들이었다. 한국인 부모를 둔 스노보드 여제 클로이 김은 "부모님도 이민자라 남의 일 같지 않다"며 헤스의 처지에 공감했다. 그는 "미국이 나와 가족에게 준 기회에는 감사하지만, 사랑과 연민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을 낼 자유도 있다"고 했다. 국가대표로서 자부심과,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 국적을 택한 구아이링 역시 헤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국적 선택을 둘러싸고 양국에서 십자포화를 맞아온 그는 직접 전화를 걸어 위로하며 지금 상황을 "이길 수 없는 언론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말을 해도 한 쪽에선 비난이 쏟아지고, 침묵해도 비겁하다는 낙인이 찍히는 시대라는 것이다. 구아이링은 "올림픽 정신과 무관한 표제가 대회를 가리고 있어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와 스포츠의 충돌은 슬라이딩 경기장에서도 나타난다.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선수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는 러시아 침공으로 숨진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얼굴을 헬멧에 새겨 연습 주행을 했다. 역도, 권투, 아이스하키, 다이빙, 무용 등 다양한 종목의 동료들 얼굴이었다. 그는 "올림픽을 통해 전쟁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헬멧은 정식 경기에서 금지됐다. 올림픽 헌장 제50조 2항, 경기장과 시설에서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전 금지' 조항을 위반한다는 이유였다. 피해국 입장에선 "전쟁으로 숨진 동료를 기억하는 것까지 정치인가"라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런 그를 향해 "우리 투쟁의 대가를 세계에 알렸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민 정책과 전쟁은 선수들의 가족과 친구, 동료의 삶과 맞닿아 있는 현실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정치권이 여전히 "정치는 밖으로, 스포츠는 안으로"라는 경계를 만들 때, 선수들은 이미 선을 허물기 시작했다. 동료를 향한 연대와 희생자에 대한 기억만큼은, 어떤 규정과 비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나아갔다.
zangpabo@newspim.com












